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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피컬 박 Nov 24. 2020

5화 평화를 좀 주세요. 안들려요?

버리니까, 이너피스!





내게 '평화'는 비행기가 연착이라도 되었는지
좀처럼 도착하지 못했다.
어느 종교에서는 평화가 강같다더니....







미사 중에도, 집에서 기도를 할때도, 나는 늘 평화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내게 오는 비행기 티켓이 연착이라도 되었는지 평화는 좀처럼 오지않았다. 아니 구경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마음의 평화를 보내지 않는 신은 언제나 잘못이 없었다. 천주교에서 신은 원래 잘못이 없는 존재니까. 다만 자유의지를 가진 내 잘못된 선택만이 나를 이 자리에 만든 것이라고 스스로를 탓해야만 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평화를 간절히 원해도 돌아오는 것은 ‘내 탓’. 무기력해졌다. 그런데 지금, 종교를 버리려고 하니 내 마음의 평화가 왔다. 마치 불임부부가 임신을 포기하고 나니 아이가 덜컥 들어서는 것처럼. 







왜 성당에 다닐 때는 평화가 오지 않았는지 돌이켜봤다. 답은 간단했다. 성당에 가고 기도모임을 할 때면 나는 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잘못까지 끌어내야만 했다. 얄미운 누군가를 노려봤던 것, 사소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것 등 어쩌면 잊어버린 아주 작고 사소한 잘못들까지 전부 꺼내어 나를 옥죄었다. 




'내 탓이오'를 외치며 가슴을 때리는 미사의 한 과정.
누군가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왜 나는 스스로를 때려야만 했는가.





‘내 탓이오’를 외치며 가슴을 치는 미사의 한 과정에서도 가슴을 친 횟수만큼이나 나의 화는 점점 커졌다. ‘응어리’라고 해야할까. 남의 잘못과 가족의 잘못까지 모두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물론 모두를 용서하겠다는 것과는 별개로 가슴 속에 모두의 잘못을 삭혀야 하는 그 무언의 과정은 내게 ‘응어리’를 남겼다. 성당에서도 그 과정을 나같이 응어리를 남기라고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내가 성당이라는 바둑판에 맞는 바둑돌이 아닌, 짱돌이어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어쨌든 종교를 버림으로서 날 탓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가슴을 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내 모든 선택은 조금씩 가벼워졌다. 꼬이는 인생, 외로운 현실, 억울한 결과들이 내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고 내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거라 믿게된 것이다.  

종교를 버리며 내가 얻은 것은 또 있다. 과거의 나 자신에게서 멀어지며 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것.  마치 동력이 생긴 것 같다. 무언가를 버리며 가벼워진만큼 더 쉽게 내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은 동력 말이다.





글. 박경

그림. 딩사장 

소속. 우아 스튜디오 

버리니까, 이너피스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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