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속도위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임신은 ‘덜컥’이었습니다. 너무 놀랐거든요. 머리로 수만 번을 생각했건만 임신, 출산, 육아는 현실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난임이셨어요. 그래서 저희 남매간 나이 차이가 상당합니다. 언니와 저는 5살 차이이고 남동생과 저는 8살이나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13살 많은 큰누나가 엄마로 소문이 나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어머니는 제게 결혼하자마자 아이부터 가지라고 신신당부를 하셨습니다. 난임으로 마음고생한 것을 딸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셨겠지요. 막연히 아기 귀엽지 생각하며 저도 별 거부감은 없었어요. 어머니는 너무 걱정되셨나 봐요. 청첩장이 나오자 지금부터는 결혼한 것과 마찬가지니까 노력해보라(?)고 하셨죠.
저는 1월에 결혼해서 같은 해 10월에 예쁜 딸을 낳았습니다. 정말 신혼을 1일도 누리지 못했죠. 너무도 정확하게 결혼 날짜 이후부터 엄마가 되었으니까요.
덩치는 작은 편인데 양수는 많고 아이 무게도 평균 이상이니 배는 곧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임신 7개월 때부터 당장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남편한테 서운한 일이 있어서 아파트 벤치에 나와 있으면 동네 할머니들이 꼭 한 마디씩 하셨어요. 곧 애가 나올 것 같으니 큰일 내지 말고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못이기는 척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가는 곳마다 시선을 끌어서 혼자 어디 다닐 수도 없었고요.
배가 불러오고 손발이 퉁퉁 붓고 아이가 조종하는 대로 식욕이 왕성해졌죠. 모든 임산부들이 경험하는 평범하고 고된 여정을 거쳐 출산을 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남에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지요. 그렇지만 마음이 이상했어요. 아직 내가 누군가의 엄마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기계 버튼 누르듯이 쉽게 ‘조수연’ 모드에서 ‘도영이 엄마’ 모드로 당장 바뀌지 않았어요. 친구의 축하 전화를 받았습니다.
“축하해! 그렇게 아이 좋아하더니 우리 친구들 중에 제일 먼저 엄마가 되네”
“...내가 아이를 좋아했다고?”
“그래, 기억 안 나? 너 우리 20살 때 그 얘기했잖아. 남자는 없어도 되는데 자기 닮은 애는 꼭 하나 낳을 거라고. 이제는 남편도 있고 아이까지 낳았네. 소원성취했다야. 축하해,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죠. 그렇게 말한 20살의 저도 분명 저인데 말이죠. 소원성취까지 했다고 축하를 받았는데...... 울고 있었습니다. 눈물의 이유를 모른다는 것에 또 눈물이 났죠. 그냥 창밖을 보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그랬어요. 친정엄마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해주셨고 아이도 매우 순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랬어요.
‘이렇게 순한 애가 어디 있어~그지?’
남편의 그 한 마디가 왜 그렇게 서운할까요? 남편의 속마음도 읽히는 것 같고요.
‘아니, 장모님이 일은 죄다 해주시고, 애는 우유만 먹으면 잘 자고 보채지도 않는데,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거지?’
첫째 딸 도영이는 남편과 정말 얼굴이 똑같아서 남편 미니미 같았죠. 가끔은 출근한 남편이 침대에서 저를 보는 것 같아 깜짝깜짝 놀랄 때도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감정이 안 좋을 때는 괜시리 애한테까지 서운한 마음이 든 적이 있었고요.
이런 적도 있었습니다. 도영이가 이유식을 이제 막 시작했을 때였죠. 그날따라 죽을 한 입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쳐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이유일까. 걱정되고 초조해서 남편에게 연락했더니 같이 걱정을 했습니다. 남편이 퇴근해와서 아이에게 죽을 먹였고 갑자기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하루종일 밥도 안 챙겨준 것처럼 말이죠. 남편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아유, 우리 딸 잘 먹는다, 이렇게 잘 먹는데, 그지~”
그 얘기를 듣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인생 첫아이와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죠. 남편은 딸과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라 좀 들떴나봐요. 크리스마스 직전 금요일에 유난히 퇴근이 늦는 겁니다.
전화를 하니 차가 막힌다고만 얘기하고 다왔다 다왔다 하면서 시간이 꽤 흘렸습니다. 슬슬 약이 올랐죠. 차라리 솔직하게 몇 시쯤 도착할 것 같다고 얘기하면 화가 덜 날 것 같은데(그래도 화는 냈을 것 같긴 해요, 조금 약하게) 계속 다와간다고만 하고 사람이 안 오니 얼마나 화가 나겠어요.
부글부글 끓다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는데 현관문이 열리더니 웬걸, 세상 환한 미소로 ‘짜잔~’하면서 아기 장난감을 내미는 것입니다.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왜 그렇게 서러운지. 이제 아기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조바심도 나고, 그게 그렇게까지 서운하면 안 되는 일인지 알면서도 서운한 것입니다. 정돈된 말로 설명도 안 되고요. 사실은 아기 챙기는 남편에게 질투하는 내가 유치하고 들키기 싫었던 것이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집안일이 많아서, 아이가 예민하고 별나서’ 눈물이 나는 게 아닙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날 수 있어요. 아니죠,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수십 개를 나열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라면 그 정도는 모두 묵묵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죄책감에 들리지 않는 소리로 혼자서만 나열할 뿐이었죠.
‘나는 반강제로 집에 들어앉은 느낌인데 사실은 일을 너무 하고 싶어. 다시 일하면 잘할 수 있을까? 몸 곳곳에 터져 있는 살들은 원상복구가 되는 걸까? 아직 축 늘어진 뱃살은 얼마 뒤면 돌아올까? 매운 것도, 찬 것도 먹지 말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나는 시간이 되면 아이에게 우유를 공급하는 기계인가? 다른 엄마들은 이 정도 희생은 각오하고 아이를 낳은 건가?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문제는 ‘엄마’여야 거뜬히 해내는 몫을 아직 ‘엄마’ 모드로 전환하지 못한 내가 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