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17
기자 생활을 시작하고 꽤 오랫동안 스타들의 일상 혹은 사생활 보호는 안중에도 없었다.
논리는 그랬다. '스타들이 누리고 얻는 인기와 돈은 대중의 환호와 호주머니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스타들은 대중의 사생활 공개 요구를 응당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공개를 꺼린다면 의무 방기다.'
얼핏 그럴듯했다. 살짝 죄의식을 느낄 때면 황색 저널리즘의 본가(本家)나 다름없는 영국과 미국,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사례를 핑계 삼기도 했다.
실제로 한류 스타들에게 전해 들은 일본과 중국 기자들의 취재 행태는 섬뜩할 정도였다. 모 배우는 사석에서 "중국 프로모션 활동 기간 중 묵는 현지 호텔에서 체크 아웃할 때면 귀찮지만 방안의 쓰레기를 모두 싸 들고 나온다"면서 "퇴실 후 중국 기자들이 쓰레기를 몰래 수거해 가는데, 심지어는 쓰고 버린 여성용품까지 가져가 임신 여부를 확인한다는 얘기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얘기를 듣곤 내심 '그래도 우리나라 기자들은 양반이구먼. 더 세게 해도 되겠네'란 생각도 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위험한 착각이었다.
솔직히 유혹도 가끔 느낀다. 스타라는 지위를 앞세워 일반인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상을 대 놓고(?) 즐기는 몇몇을 볼 때면 보호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스타들의 일상을 침범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들을 소비하면서 지불하는 비용에 있다.
대중이 스타들을 소비한다는 것은 그들이 참여한 드라마 영화 노래 CF 등 다양한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서 콘텐츠란 단어에 홑 따옴표를 붙인 까닭은 비용을 지불하는 항목에 스타들의 일상까지는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돈을 내고 구입하는 콘텐츠에 포함돼 있지 않은 일상마저 함께 하길 강요하는 행위는 어쩌면 비용을 지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동자에게 지나친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용자의 갑질이나 다름없을 듯싶다.
물론 요즘은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공개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스타들이 많아졌다.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은 순수한 팬서비스와 새로운 수익 창출 통로의 개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인 경우, 상업적 의도가 너무나 뚜렷해 보이는데 아닌 척하면 솔직히 꼴불견이다. 이를 위해 있는 사진 없는 사진 다 올리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일상까지 공개하면서, 'SNS는 사적 공간' '기사화는 하지 말아 달라'라고 당당히(?) 주장하고 주문하는 이들을 상대로 우리가 일상 보호의 원칙을 지켜줘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병헌이 심야에 택시운전사로 잠시나마 일탈을 즐겼던 15년 전에 비해 스타들의 일상을 알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구는 훨씬 강해졌다.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미운 우리 새끼' 등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수년 전부터 방송계의 주요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방송은 방송일 뿐, 일상을 방해받지 않고 싶어 하는 스타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그 같은 추세는 어떤 관계로 만났든 서로가 서로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 변화와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적당한 휴식이 노동의 질 높은 성과를 보장한다.
스타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중의 시선에서 잠깐씩 벗어나 영위하는 일상이 절실할 것이다. 특히나 '전 국민의 연예기자화(化)'가 급속도로 이뤄진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모 예능 프로그램 제목처럼 '온앤오프'의 시선으로 스타들을 대할 때, 그들로부터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제공받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