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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씨네 WeeCine May 03. 2018

고난속에서 희망을 그리는 영화

비정성시(1989, 허우 샤오시엔)


삶과 죽음그리고 다시 삶 영화 비정성시(1889, 감독 : 허우 샤오시엔 /  주연 : 양조위)

영화 비정성시의 포스터




총을 든 일본 군인들. 영화 난징!난징!(2009)의 한 장면


대만은 저희처럼 일본이 강점하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같이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며,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찬 미래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의 정치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대륙에서 이주해온 본토인(외성인)들과 친일 부패관료들이 국민당 정부 체제 하에서 관직을 차지하면서, 일반 대만인(내성인)에게는 일제만큼이나 힘든 시기가 되었습니다. 영화 비정성시는, 바로 그 시대 대만의 암울한 역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입니다. 한 가정이 수난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그 암울한 역사를 상징합니다. 이는 마치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을 생각나게 하는데요. 암울한 시대가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었던 그 모습이 제게는 겹쳐 보입니다.     


유현목 감독의 영화 오발탄.  6·25 직후 한 가정을 배경으로 빈곤한 현실과 정신적인 불안을 주제로 삼고 있다.


영화의 중심이 되는 가족은 임씨 집안으로, 첫째와 셋째는 건달입니다. 둘째는 의사였지만 중국 본토에 잡혀가 소식이 없습니다. 넷째는 어린 시절 청각을 잃어버린 벙어리입니다. 대만의 역사와 함께 이 가정은 철저히 파괴되는데요. 첫째는 조직 싸움에 휘말려 죽게 되고, 둘째는 피가 묻은 흰 천으로 가족에게 돌아옵니다. 셋째는 친일파라는 모함을 받고 경찰에 끌려가 금방 석방되지만, 이미 모진 고문으로 제정신이 아닙니다. 넷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반정부활동을 하는 관영을 지원하다가 체포당해 행방불명이 됩니다. 무겁게, 그렇지만 격렬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결국 임씨 집안 형제 네 명은 시대의 희생양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임문청의 모습. 사진사이다. 양조위가 연기하였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대만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정의 파괴를 통해 역사의 비극을 상징한 것처럼, 그 가정의 재생과 견디어 살아가는 모습을 짧게나마 보여준 것을 통해 대만의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아이의 탄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었는데요. 생명이 탄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씨 가문 남자들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넷째의 아들이 태어나는 장명을 통해, 또다시 생명이 이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삶-죽음-삶의 순환적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것을 역사적 흐름에 대입시켜 생각해보면. 처음의 삶은 일본으로 부터의 해방, 죽음은 외성인과 내성인의 갈등, 다시 돌아오는 삶은 고난이 지난 후에 돌아올 (감독이 꿈꾸는)평화에 대한 기대로 볼 수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도, 남자들은 죽고 여자들은 역사의 증언자가 되어 고통을 받아도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주 화자는, 넷째 아들의 아내이며. 일기의 형식으로 사건들을 설명한다. 영화의 끝에서 임씨 집안의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남자들은 대부분 죽고 집 안에는 노인과 제정신이 아닌 셋째, 아이만이 남아있다. 집안 구성원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고난과 슬픔에 대한 증언을 이어나간다.)


첫째 임문웅이 죽고, 장례를 치르는 가족들의 모습.


서사가 아닌 영화의 이미지에서도, 그러한 기대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맨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는 비슷하지만 완연히 다른 이미지가 대비됩니다. 바로 ‘전등’이 그것인데요. 첫 장면에서는 첫째의 아들이 태어나고 일제로부터 대만이 독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옴과 동시에 전등에 불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휘청거리며 흔들리고 있습니다.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족끼리 밥을 먹는 모습 위로 밝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의 전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의 슬픈 역사를 종결하고 새로운 대만의 역사가 시작되리라는, 대만의 미래에 대한 기대심의 상징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슬픈 대만의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놓지 말자는 감독의 메시지가 담겨 있던 것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전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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