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2) 서로 키우고 자란다.

엄마 노릇 자식 노릇

by 엄민정 새벽소리

은유는 해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자라고 있다.

자식이 커도 다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돌이 한참 지나도록 모유를 먹이면서 자연스레 아이의 욕구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 엄마 역할이다. 그 후로 지금껏 나의 생활과 생각의 중심에 아이를 두는 것은 습관이 되고 일부가 돼버린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따라 하는 아이의 총명함에 감탄하며 더 잘 키워 보겠다는 의지와 욕구는 날로 짙어진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기도하던 출산 즈음의 초심은 조금씩 이기적 욕심이 더해져 걱정과 두려움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한다며 하는 말과 행동이 문득문득 아이를 조종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때, 아이가 겪을 심적 압박감에 내 마음 또한 괴로웠다.

유리잔을 깨뜨리고 음식을 흘리고 쏟는 중에도 아이는 배우고 자란다. 깨진 유리를 치우고, 흘린 음식을 닦는 수고로움에 질색해 아이를 나무라기만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다시 한번 질색한다. 아는 것과 실천의 사이에는 길고 긴 수양이 필요한 이유다. 나도 유리를 깨뜨리고 음식을 흘린다. 아이는 엄마가 괜찮은지를 제일 먼저 살피며 휴지를 가져와 그 작고 여린 손으로 바닥을 닦는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땅이 꺼지게 한숨 쉬었던 나의 모습과 아이의 날쌔고 태연한 태도가 눈앞에 겹쳐 마음이 쓰리다.

"미안하다 엄마가."

"괜찮아. 익숙해."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엄마 육아를 하고 있다.




"은유는 꿈이 뭐야?"

"엄마는 바람도 되고 싶고 새도 되고 싶은데."

"엄마 나도 바람. 그리고 새."

"와~ 그럼 우리 바람 부는 날 멀리까지 함께 날아가 볼 수 있겠구나."


그 시절 우리의 동화 같고 순수한 대화는 현실과 공부와 시험을 거치며 미래의 직업을 이야기하는 대화로 변질, 발전했다.


"딸은 커서 뭐가 될 거니?"

"엄마 나는 외교관이 될 거야. 나는 친구들 사이에 복잡 미묘한 사건들을 잘 캐치하거든?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그 사건들을 잘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은유가 의사가 된다면 슈바이처가 될 거고, 화가가 된다면 피카소가 될 거야. 은유는 외교관이 되면 UN사무총장도 할 수 있을 거야."


'바람'이고 '바다'였던 꿈은 넓은 세상의 국경을 오가는 '바람을 닮은 꿈'이 되었다.

부모의 말이 아이의 마음속에 생각과 노력의 씨앗이 되는 강력한 힘을 믿는다. 그 바람 안에 내가 못 이룬 나의 꿈이 있음을 나는 조용히 알고 있다.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자랑스러운 자녀로부터 오는 대리 만족으로 점철되고 있는 모양새다. 은유는 곧 중학교에 간다. 앞으로 자신의 앞날과 꿈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마주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혼자 사색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조언은 짧고 굵게, 수다는 가볍고 길게. 앞으로 다가올 너의 사춘기를 대비하는 나의 자세다. 무게 있는 한마디로 엄마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다가올 시간을 우리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시간으로 채울 것이다. 부정적인 말일랑 한마디도 얹지 않는다. 긍정의 힘으로 온전히 딸의 꿈을 지지할 것이다.




얼마 전 폐막한 파리 올림픽에서 사격으로 은메달을 딴 김예지 선수는 출산 후 아이에게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더 자주 책상에 앉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덩달아 아이의 책상 시간이 길어진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최재천 박사님이 어느 기자와 한 인터뷰가 생각난다. 왜 인간의 교육은 그 노력에 비해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운지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최박사님은 동물의 교육방식을 인용하신다. 인류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동물은 자신이 행동함으로써 자식을 교육한다. 오직 인간만이 입으로 교육을 하니 그게 될 리가 없다는 첨언이다. 당장 입을 닫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엄마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본다.

엄마들에게는 나이 든 자식도 평생 아기 같아서 돌보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엄마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을 일차원적인 보호의 역할에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 자식이 커갈수록 부모도 그에 맞는 존중을 보여야 맞다. 굿모닝 키스로 시작하는 아침이 싫어지는 나이가 되면 머리를 한번 쓰다듬는 굿모닝으로 바꿔야 한다. 자식이 장성하여 독립하면 한 인격체로서의 자녀와 교류해야 한다. 티브이 예능에서 미혼의 자식을 두고 아이를 대하듯 말하고 행동하는 부모를 쉽게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현실의 가정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주변을 통해 본다. 김치를 날라다 주고 냉장고에 반찬을 채워주는 등의 일은 더 이상 엄마의 역할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아들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엄마 역할에서 제발 벗어나길 바란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식의 잘못이 아니라 어쩌면 부모의 빗나간 노력이 미운 오리가 되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눈에 넣으면 이제 아프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습관적인 늦은 취침에 아침잠이 무척 많아진 은유를 보며 다가오는 개학이 막막했다. 가만히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과연 자녀의 아침 기상은 본인의 몫인가 엄마의 몫인가. 진짜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절대 깨울 수 없다. 몇 번이고 울린 알람에 은유는 눈만 감고 있을 뿐 잠은 깬 상태다. 비몽사몽의 경계에서 오랜 시간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한다. 참을 인(忍)을 새기며 어금니를 문다.

다시, 네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도돌이표가 진행 중이다.


오늘 아침도 여전히 도돌이표가 진행 중이다. 6시 반을 넘기며 내 마음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깨울까 말까, 내면의 갈등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의 깊이 잠든 귀여운 얼굴을 다시 보며 솟구치는 화를 가라앉힌다. 그리곤 티브이를 크게 튼다. 엊저녁 식사 후 밀린 설거지를 하며 의도적으로 그릇을 세게 부딪친다.


그리고 은유는 6시 45분에 기상했다. 겨우 지각은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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