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

실랑이는 그만하자 우리

by 엄민정 새벽소리

아침에 아이를 절대 깨우지 않는다. 내 일과 네 일을 철저히 구분하기 위함이다.

아이 학교는 집에서 14km 거리에 있다. 늦어도 7시에는 현관문을 나가야 등교 시간에 맞출 수 있다.

나는 기사다.

아침마다 교문까지 라이드 해주고 돌아오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이 일은 철저한 팀워크이다. 우리 협업의 목표는 단순히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닌, 제시간에 학교에 가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가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아니 제시간까지 준비되지 않으면, 그러니까 제 일을 완수하지 않으면 나는 업무에 돌입할 수가 없다. 가차 없이 파업이다. 늦은 밤까지 잠을 참는 아이에게 여러 번 날린 파업 포고다.

오늘은 최초 파업의 날이었다.


7시 정각, 아이는 아직 침대 위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침대 모서리에 걸쳐서 용케 떨어지지도 않는다. 아이에게 시선을 거두고 주저 없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힙쌕과 선캡을 장착한다. 운동화에 대충 발을 욱여넣고 문을 나서며 급격한 온도차에 흠칫 놀란다. 쓰고 나온 선캡이 무색하리만치 새벽부터 내린 비가 땅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수험생 손녀를 1층까지 배웅하는 할머니의 걸음이 종달새 같았다. 무거운 백팩을 뒤에서 애써 받쳐 주는 할머니의 푸석한 손에 애정이 그득했다. 어린애가 커피를 마시면 안 좋다는 잔소리에도 손녀는 급히 커피를 가방 옆구리에 꽂고 걸음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배웅을 마치고 한참을 서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내 마음도 할머니와 비슷했다. '차 조심해라.'


주머니에서 사과하나를 꺼내 우적 씹었다. 새벽 3시에 출근하여 벌써 만보에 가깝게 걸은 청소아줌마와 마주쳤다. 나의 은근한 경쟁자이다. 지난번 구운 계란 몇 개를 건네며 메신저에 친구 추가를 했다. 그 후로 아주머니의 하루 걸음수를 주시하고 있다. 하루에 2-3만 보가 꾸준히 찍힌다. 대단한 경쟁자다.

아주머니의 인사가 경쾌했다. "美女,早上好!(이쁜이 굿모닝!)"

구운 계란 몇 개로 이쁜이 호칭을 산 것이나 다름없다.

못 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가만히 다가왔다. 밤새 내린 비에 젖은 털은 내 바짓가랑이를 수건 삼아 쓱쓱 물기를 덜어냈다. 보송해진 검정과 하양의 심플한 줄무늬와 점무늬 털은 그 조합이 고급스러운 샤넬 트위드 재킷을 떠오르게 했다. 배 안쪽으로 굽슬하게 이어지는 하트 무늬가 은근스러워 눈길을 끌었다. 애교 넘치고 사랑 넘치는 성격을 인정이라도 하듯 대자연이 찍어준 도장 같았다. 다리 사이를 오가며 잠시 내 산책길에 길동무를 해주던 냥이는 금세 맘이 변했는지 제 갈길을 갔다.


3동 앞에는, 마지막 한 모금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노장의 흡연가가 보였다. 거의 필터만 남은 듯한 담배를 엄지와 검지 손톱으로 겨우 잡아 쥐고 마지막 한 모금을 맛있게 들이켰다. 그러곤 미련 없이 뒤를 돌아 건물로 사라졌다. 흐리게 떠있는 담배 연기 속에서 출근하는 남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누구에게도 바쁜 아침이다. 누구에게만 빼고.


아이는 연락이 없다. 내가 이 많은 걸 보는 동안 시간은 꾸준히 흘렀고, 아이의 꿈속 유영도 아직 진행 중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태연하게 씻고 옷을 입는 사이, 아이가 일어났다. 방방 뛰는 종아리를 보고도 못 본척했다.

네가 늦은 것이지, 내가 늦은 게 아니다.

부스스한 머리를 손가락으로 연신 빗어내던 아이는 오늘 시험이 있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네 시험이지 내 시험은 아니다.

협상을 시작했다. 아이는 매일 밤 9시에 취침을 하겠다는 카드를 들이밀었다. 두고 볼일이다.


아이가 학교에 갔다. 이미 2교시가 끝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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