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날들에 감사

은혜

by 엄민정 새벽소리

아버지가 사라졌다.

오전 10시- 오후 2시, 엄마가 치매할머니 돌봄을 다녀오는 사이의 일이다. 전화 발신인의 음성에 온 정신이 쏠린 엄마의 주변이 한순간 배경으로 변했다. 죽을 떠먹이던 숟가락이 서서히 멈추고, 초점을 잃은 눈의 할머니는 영문을 모른채 기계적으로 입을 벌고 있다. 전화를 끊은 엄마는 적당히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한다. 가슴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남방 한 벌, 수건과 이불, 그 외에 생각나는 것들을 코스트코 쇼핑백에 밀어 넣는다. 이게 무슨 일이여~를 연신 남발하며 집안을 동분서주하는 엄마 발에 모터가 달린 듯하다.


아버지 나이 금년 70세.

두 달에 한 번꼴로 누워계신다. 일반적인 컨디션 저조로 생각하자니 증상이 매번 같은 곳이다. 큰 병원 진료를 종용해 보아도 고집이 타이어보다 질긴 아버지는 누구의 의견도 듣지 않으신다. 슬리퍼를 발에 걸친 채 아픈 배를 움켜잡고 이번에도 읍내 가정의학과로 향하신다. 자가 진단으로 위장약과 소화진통제만 받아오신 아버지는 처방전대로 3일을 꼬박 드신다. 만족할 만한 차도도 없이 시간이 지나니 몸이 자연스레 이겨내는 것을 이번에도 약의 효능이라고 믿으시는 듯하다. 요 며칠 흰 죽이나 누룽지만 끓여드시며 드시는 재미를 통 못 느끼신 아버지는 이제 다시 김치를 드실 수 있었다. 김치와 평생을 살아온 인생이다. 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시며 입에 착 감기는 매콤 짭짤한 맛에 아밀라아제가 솟구친다. 밥 알갱이가 녹기 시작하며 스무스하게 식도를 타고 들어갔다.


다시 찾아온 증상에 어떻게 누워도 밤이 길었다. 아버지는 시내 큰 병원에 가서 자진 입원을 하셨다. 원인을 찾느라 급급한 의료진은 시티와 초음파 사진을 이리저리 살폈다. 복부에 염증이 많이 보이나 원인이 불명이라 개복을 해 봐야 안다는 의사의 건조한 목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뭐든 다 좋고 안 아프면 살겠다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고개는 연신 끄덕였다. 의사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까지 말해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장에 염증이 많으면 장을 잘라야 한다는 말까지 필요했을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정확한 진단 없이 겁을 솥째 집어드신 아버지는 엄마를 불러 본인이 못해온 입원 준비를 부탁하셨다.


멀리 엄마에게서 소식을 들은 나도 안절부절못했다. 타향살이가 길어지면서 한국의 인연들이 다 흩어졌고, 이런 상황에 연락할 의사 한 명이 없어 원통했다.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와 아버지의 가라앉은 음성을 들으며 할 수 있는 게 없어 조급했다.


아버지는 왼쪽 팔의 정맥을 간호사에게 맡기며, 링거 주사 바늘의 쏘는 듯한 통증에 정신이 맑아졌다. 덕분에 모호한 진단으로 수술을 감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곧바로 서울 병원을 수소문했고 그 끝에 병원을 옮기셨다. 그곳의 중복된 검사에도 성실히 임하셨다. 수많은 임상 경험에서 나온 자신감이 내비치는 서울 의사의 목소리에 가족은 안심했다.

진단명은 맹장염으로 기인한 복막염.

염증의 정도가 심해 바로 복강경 수술을 진행했다.


연로해 가시는 아빠의 건강 이슈가 전보다 잦아졌다. 그간 무탈하신 것이 감사고 축복이었는데 그걸 지금에서야 느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주일 간 입원 동안에도 아빠는 고향집의 밭작물 걱정과 처마에 묶여있는 강아지 생각에 집 생각이 간절하셨다. "본인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뭐예요" 하며 높아지는 엄마의 목소리가 역정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아빠가 잘 회복하시고 다시 예전처럼 춤도, 당구도, 밭일도 열심히 하시는 모습을 그리워하는 가족 모두의 바람이었다. 그간 괴롭혀온 복통이 늦여름 더위와 함께 쓸려 나가 이 멋진 가을을 본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맞이하시길 멀리서나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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