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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Oct 01. 2023

초침이 흐르다


 나는 잠이 들지 않는다. 달콤한 커피 같은 어둠이 목구멍 속으로 넘어온다. 나는 꿀꺽꿀꺽 어둠을 삼킨다.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요즘 노래를 감상한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쓸쓸하다. 내 방 시계는 소리를 낼 줄 모르는데 내 귓가엔 초침소리가 박힌다. 무엇에 대한 재촉일까.


 밤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의 즐거움보다는 오늘의 불안을 안고 싶다. 오늘의 불안을 좀 더 오래 물고 늘어지고 싶다. 생각하는 것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이리 적을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천천히 어른이 될 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생각하는 소년과 생각하는 소녀 들이 성년에 대한 동경을 냉큼 버리길 바라는 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존재. 아무것도 아닌, 그저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다.


 온전히 내 정신으로 생각하고 쓰는 시간이 하루에 몇 시간이나 될까. 거기서 나의 부끄러움은 비롯된다. 타인의 발길질에 차이지 않기 위해 친한 관계처럼 떠들고, 내가 절실한 것도 아닌 모임에 강아지처럼 따라가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따로 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일상의 의무가 무겁고 책임이 무섭다는 핑계로 생각하고 싶은 욕구를 배반하는 것. 생각을 외면한 밤에 나는 웃지만 결코 잠을 이룰 수는 없다.


 생각으로부터의 휴식. 따위는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육체는 죽지 않아도 정신 속의 내가 죽는다. 하루만 생각을 그만두어도 바로 표시가 난다. 나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그저 타인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방식으로 웃고 말한다. 영혼이 곤히 잠든 방에 가스가 퍼진다. 정신 속의 나는 가스가 방안에 퍼지는 것을 알지만 소리내지 않는다. 눈을 뜨지조차 않는다. 무기력의 향수가 뿌려진 침대에서의 단잠이 조금은 위로 같아서.


 질식하기 전에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야 한다. 생각을 오랜만에 하려고 마음 먹으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안이 캄캄하다. 슬픈 공허가 밀려든다. 나는 그런 기분을 아주 잘 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일상을 욕하며 탓하다가도, 나 자신이 생각을 거부한 것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침묵한다. 주위의 공기를 식혀주는 차분한 침묵이다. 침묵이 질문한다. 너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냐고. 나는 대답한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고.


 어둠엔 카페인이 흐르는 것 같다. 숨을 마시고 있으면 잠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어둠을 커피처럼 꿀꺽꿀꺽 마셔도 정신이 맑아지기를 거부한다. 24시간의 밤을 지새우고 싶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생각해도 시간이 남는 그런 하루를 살고 싶다. 어렸을 땐 생각하는 방법을 몰라서 사는 데 지장이 없었는데. 크면서 생각의 심원한 쾌감을 배우는 덕분에 사는 데 지장이 생겼다. 사는 것이 어려워졌다. 생각하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인간이 되어버렸으니, 나는 커피와 친해져야겠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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