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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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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Oct 03. 2023

새벽


 창밖에서 파도가 다가온다.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자리를 지키며 거대한 파도를 기다린다. 내일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이 살아날수록 파도는 맹렬히 온다. 파도에 휩쓸리듯이 내일을 살아내고 나면 과연 나의 안에는 무슨 말이 생존해 있을 것인가. 말이라는 것이 나의 안에 남아있기는 할 것인가.


 내일이란 다가오는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내일로 항해하는 나의 선체가 부랑자의 몸처럼 가볍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인데. 나의 선체는 항상 내일에 대한 방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야무지지 못한 사람이 겪는 수모를 자꾸 건져 올린다. 수모를 건져 올린 나의 표정엔 삶에 대한 서운함이 스친다. 후회가 무거워서 살짝 침몰하기도 한다. 그 무거운 후회의 짐들마저 홀홀히 던져버리고 조금은 불량배처럼 떠나는 나의 배 한 척.


 파손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나 또 언제 부서졌냐는 듯이 말끔히 보수하고서 멀뚱멀뚱 떠 있겠지. 선체 조각이 떨어져 나가고 부서져도 하루가 지나면 거짓말처럼 새것이 되는 그 선체는 멀뚱멀뚱한 두 눈에 눈물이 고여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내일을 살아낼 각오를 다지는 사람의 모습은 마치 살해를 결심한 사람처럼 이글이글하다. 내일의 각질처럼 무감각한 시간들을 살해하고 공허하게 쓰러질 사람아. 찰나의 부드러운 순간을 붙잡아 너의 호흡기로 쓰라.


 쓰라. 너의 안에 남아있는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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