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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Nov 24. 2023

캐럴을 듣다


 돌아갈 수가 없다! 외롭지 않았던 시절로.


 그것은 일주일 동안 한 달 동안 때로는 일 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때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가볍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에 사는 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나의 영혼은 건재했으며, 오히려 하루하루가 너무도 바쁘게 흘러갔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똑같은 일 분이라는 시간도 두 배의 힘을 들여서 살았는지도 모른다.


 닭장 같은 교실에 나와 친할 수 있는 친구들과 나와 친할 수 없는 친구들을 무작위로 몰아넣고, 거기서 우정을 나누라 강요받던 시절은 끝이 났다. 나는 여고에 다녔다. 여고 시절의 즐거운 추억.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교의 담벼락 아래를 조용히 산책할 때, 나의 모교에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학교로 들어갈 수 있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에게 추억으로의 모험을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내가 나의 모교에 들어가서 익숙한 붉은 벽돌벽을 쓰다듬고 있으면 어디선가 험악한 얼굴의 경비가 다가와서, 나가 달라고 정중하고도 차갑게 명령을 내릴 것만 같은지.


 나는 한숨을 푹 쉰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언젠가는, 내가 환영받는 기분으로 학교를 향해 구불구불 올라가는 완만한 그 길을 걸어 올라가는 날도 올 것이다. 벚꽃이 흐드러진 봄일 것이고 내 머리 위로는 앙증맞은 분홍색 꽃잎이 흩날릴 것이다. 아름다운 꽃비가 내릴 것이다. 나는 조금 후회가 된다. 내가 성인이 돼서 남들처럼 행복한 학창 시절을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 올 것이란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나의 소중한 시절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많은 친구의 얼굴을 마음에 담고, 그들과의 순수한 대화를 수첩에 작은 글씨로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뭔가. 내 가슴엔 왜 한 명의 친구도 남아있지 않은 걸까. 소중하다고 믿은 친구들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 사라져버리고 나는 가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내리면서 씁쓸한 감정에 젖는다.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 다 잊어버리자. 차라리 내게는 학창 시절이 없다고 생각해버리자. 나는 여덟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먼 나라 해안가의 소도시에서 살았다. 가끔 배를 타고 부모님이 나를 보러 왔다. 부모님을 태운 흰 배가 지평선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면 나는 행복한 기분이 돼서 맨발로 마중을 나갔다. 맨발이어도 괜찮다. 그곳은 모래사장이니까. 사무치도록 부드러운 모래알이 굳은살 없는 나의 어린 발을 애무했다.


 엄마 아빠는 귀한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엄마는 챙이 넓은 흰 모자를 쓰고 구불거리는 다갈색 머리카락을 바람에 흩날리면서 내게 다가왔고, 아빠는 말없이 몇 걸음 뒤에서 엄마를 따라왔다.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오월의 태양은 소심하지도, 사납지도 않은 적당한 햇빛을 세 사람의 머리 위로 내려주었고 나는 엄마와 아빠를 끌어안았다. 엄마는 물론 걱정이 심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되겠니. 거기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너만 꿈속에서 살아도 되겠니. 하고 엄마가 귀족 여자 같은 어조로 내게 물어도 나는 생긋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엄마가 나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영악하게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았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를 돌보아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머무는 집의 주인은 아니었지만, 집주인 남자의 오랜 친구라고 했다. 그는 해안가 도시에 사는 사람답지 않게 피부가 희었고, 감기처럼 가벼운 병을 앓을 때는 몰라보게 창백해지고는 했다. 그는 스스로 몸이 약하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 세상의 모든 남자가 그 남자처럼 병을 자주 앓는 줄 알았다. 열아홉 살의 겨울까지는. 열아홉 살의 겨울에 나는 남자의 감독하에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한 시험을 반은 강제적으로 봐야 했고, 그것은 내 인생 최악의 하루였다. 남자의 오랜 친구라는 집주인이 돌아오면 남자의 만행을 죄다 일러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날 밤도 집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대학이라는 곳에 가기 위한 시험이라고 나의 그이는 말해주었다. 나는 대학이고 뭐고 그냥 늙어 죽을 때까지 그 평화로운 해안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의 의지는 단호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단호한 얼굴을 만드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 기세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이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했고, 그날부터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밤마다 갈매기 깃털로 속을 채운 이불을 덮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미친. 집에 가야 한다니. 나는 억울해서 밤에 잠을 잘 수 없었지만 옆방에서 그이의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떠나는 날은, 남자가 원인 모를 가벼운 병을 완전히 떨쳐버린 날이었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직접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외국어가 난무하는 마트에서 어렵게 사 온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다. 나는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는, 따르고 있던 오렌지 주스를 떨어뜨릴 뻔했다. 남자와 어떻게 말이 통할 수 있었던 거지? 이름조차 잊어버린 아득히 먼 나라에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니. 게다가 그의 얼굴도, 의심할 수 없이 나와 같은 민족의 그것이었다. 이 이상하고도 기묘한 상황의 부자연스러움을 십 년만에 깨닫다니, 나는 내가 제정신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병을 회복하고 입술의 색이 돌아온 그이에게 나는 십 년 넘게 거짓에서 살았던 것 같다고 한탄하자,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제 떠날 때가 되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학에 가면 뭐가 좋나? 내가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남자는 대학을 가지 않아서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대학에 가지 못한 남자가 조금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손으로 남자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남자는 또 말없이 빙그레 웃음을 띨 뿐이었다. 그는, 내가 떠나고 나면 며칠 내로 또 병을 앓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심한 손길로 다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그것은 처음보다 대담한 애정을 담은 손길이었다. 남자는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지만, 나는 깊은 고민 끝에 고개를 저었다. 그이도 나의 대답을 철회시키기 위해 설득하지 않았다.


 그리울 거야. 기억나니. 너와 내가 같이 보낸 열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그이가 아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병이 나은 것이 아니었나? 나는 그이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두꺼운 옷을 꺼내서 입으면서 그이에게 여기서 보낸 모든 크리스마스와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단연코 그것이었다. 백지였다. 그이는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이것이 나의 운명이 될 선물이라면서 나에게 백지 한 장을 달랑 내밀었다. 평소의 나라면 의문과 밀려오는 깊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을 텐데, 그날 밤만큼은 나도 무엇엔가 정신이 빠진 듯이 남자의 손에서 백지를 뺏어 들었다. 이게 뭐예요. 내가 묻자 남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남겼다.


 네가 휘저을 수 있는, 마음껏 지독하게 몸부림할 수 있는 세계. 너의 진정한 자유의 공간이지. 너는 백지를, 그 세계를 사랑하게 되고 말 거다.


 나는 그이의 말이 나의 운명을 결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는 어째서 ‘너는 나를 사랑하게 되고 말 거다.’와 같은 대사를 마다하고 저런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이나 하는 것일까, 하고 조용한 불만이 끓었다. 나는 그이와 헤어졌다. 우리는 반드시, 일말의 반전도 없이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었다. 나는 대학에 갔고,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느라 먼 나라를 향한 향수를 차츰 잊어버렸다. 나는 가끔 궁금했다. 나의 그이는 누구와 결혼했을까? 결혼을 정말 했을까. 나는 만약에 그이가 결혼을 저질렀다면 건강한 보리빛 피부를 가진 여자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모든 기념일을 챙길 수는 있어도, 크리스마스만큼은 조용히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남자는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주인이 비밀스러운 취람색의 바다를 건너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두 명의 친구가 서로 의지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집주인은 친구의 병수발 드느라 고생 좀 할 것이다. 그래도 집주인은 묵묵히 친구의 병수발을 들어줄 것이다. 집주인은 착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가끔, 특별한 행복이 없는 우정의 동거에 권태를 느낀 그들이 어두운 저녁에 해변을 걷는다. 저녁의 해변이란 얼마나 음울한 곳인가. 나는, 그들을 유혹하듯이 넘실거리는 짙은 색의 바다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는 두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보았다.


 나의 상상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로써 허무하기 짝이 없는 글이 또 한 편 탄생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이 허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슴으로 개조되어가고 있다. 누가 나를 구해주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지금은 나는 아무의 도움도 필요하지가 않다. 나는 나를 온전히 감당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허무한 몸부림을 받아써 줄 손은 이 세상에서 딱 두 개밖에 없고, 그 두 개의 손을 모두 내가 가지고 있다. 나는 나의 충실한 하수인이다. 아무도 나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다. 나는 따뜻한 카페의 따뜻한 자리에 앉아서, 조금은 방정맞게 불빛이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고 있다. 가슴이 풍성하지 못한 사람이, 이렇게라도 풍성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꾸며놓은 트리 같다. 그의 노력이 내 마음을 흔든다. 요즘은 산책할 때도 캐럴을 듣게 된다.

   

 정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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