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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Jul 10. 2024

여름 방학

수필


 요 며칠 장마가 이어지면서 푸른 하늘 보기가 힘들더니, 오늘은 간만에 구름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일기예보를 보니 잠깐 개는 듯하다가 다음주부터 다시 비가 쏟아지는 것 같다. 그래도 잠시나마 뭉게구름이 흐르는 평온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우중충하던 하늘이 조용히 개듯이, 그렇게 소리 없이 감기가 낫는다. 누군가의 정성 들인 간호 덕분이다. 아직 주의가 필요한 몸이지만, 며칠 내내 집에만 박혀 있으니 마음이 답답해 결국 외출을 감행했다. 어제의 일이다. 지성은 종이 내음이 나더라―는 말을 스스로 지어내며 떠올리는 어제의 외출은 느긋하고, 여유롭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혼자 국립중앙도서관을 돌아다닌 어제도,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 영화를 보기로 한 오늘도 하늘은 온화한 얼굴을 내보인다. 어젯밤에 집에 들어간 뒤로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 밤사이 비가 내렸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발갛게 눈물을 머금고 있던 밤하늘은 기억이 난다. 어젯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문득 돌아본 발그스름한 하늘과 오늘의 푸른 하늘은 동일한 하늘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다. 바쁘고 정신없는 학기 중에는 잠시 여유를 내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짧은 순간이 내게 작지만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우리 학교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늘 아름다웠다. 도서관에서 나와 정문으로 걸어가는 길에, 정문에서 나와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노을빛이 깃든 노르스름한 하늘을 사진에 담고는 했다.


 내게 소리 없이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 한 학기의 학교생활이 막을 내리고 나는 여름 방학을 맞이했다. 앞으로 두 학기를 더 다니면 졸업이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방학은 분명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는 남들처럼 유익한 외부 활동이나 미래의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격증, 시험들로 방학을 알차게 채우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학을 보내고자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두루뭉술한 듯하지만 사실 더 이상 구체적일 수 없는 이번 방학의 목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다니는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 묵묵하고 고요한 사유의 시간 속에서 나의 미숙한 영혼은 조금 더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대학 방학을 되돌이켜 보았을 때 비교적 선명한 색감으로 다가오는 기억들은 대부분 여행의 기억이다. 춘천, 단양, 강릉…… 구슬땀을 흘리며 돌아다닌 당시의 느낌보다 시간이 흘러 익숙한 생활 공간에 앉아 되돌이켜 보는 여행의 느낌이 더 정답고 아름다운 것 같다. 아직 구체적으로 계획된 여행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떠나고 싶다. 혼자 바다에 가면 무슨 느낌이 들지 생각해본다. 나는 즐겁기만 할 것 같은데, 젊은 시절 혼자 고독을 좇아 여행을 다녔던 가족의 말에 의하면 무척 심심하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일지는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화창한 하늘 아래, 아이의 영혼이 노는 소리를 내며 내게 밀려오던 강릉 바다의 맑은 파도가 그리워 자꾸만 유혹에 시달린다. 너무 고운 그 바다.


 강릉이 아니더라도, 혼자가 아니더라도 이번 방학이 지나기 전에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나는 원래 바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흘려보내고 싶은 것들이 가슴에 많이 쌓여있나 보다. 가슴에 버려진 어둠을 닮은 듯한 무서운 형체가 나를 들어 올리려고 하며 웃어대는 이상한 꿈 때문인지, 그냥 외출의 피로 탓인지 새벽에 잠을 설친 나는 조금 개운하지 못한 채로 눈을 떴는데, 핸드폰 화면에 보고픈 이의 연락이 와 있었다. 나는 가슴에 만발하는 웃음을 느끼며 오래된 반가운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나약함을 드러내듯 큰 소리로 웃어댈 뿐 나를 들어 올리지 못한 어둠의 형체는 빛 속으로 스러졌다. 내 안에는 고요한 빛이 떠 있다. 빛이 아주 세지는 않지만, 여태 고갈되지 않은 온온한 밝음.

 

 그것은 어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려다본, 회색의 하늘 뒤에 숨은 채 내게 담담한 눈길을 보내던 오후의 해를 닮은 것 같다. 구름 뒤에 떠 있는 오후의 해는 눈으로 응시할 수 있었다. 아무리 바라봐도 눈이 아프지 않았다. 그것이 내게 주는 것이 화려하진 않아도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사랑이란 것을 느꼈을 때 나는 비로소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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