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소음으로 가득한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페의 이름은 <커피 한 잔과 저녁>이었다. 창백한 낯빛의 주인장이 홀로 운영하는 작고 아담한 카페인데 이상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이곳에 낮에 와 본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손님이 붐비지 않았다. 카페의 이름대로 저녁에 커피를 한 잔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주 고객층인 듯싶었다. 혼자 와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 동행자가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키가 큰 카페 주인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과의 교류에 흥미가 없을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였으나 가끔 혼자 온 손님들의 테이블에 동석해 짧은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 그는 혼자 온 손님의 주문을 받을 때 남녀를 불문하고 나긋한 미소를 지은 채 이렇게 의사를 확인했다. “일행이 없는 손님이십니까? 그럼 이따 케이크를 가지고 잠시 동석해도 될는지요. 그게 저의 취미라서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는 손님분께는 절대 말을 걸지 않으니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그의 나긋한 말투와 방금 자다 일어난 듯한 부스스한 모습이 아니었다면 그의 이야기는 터무니없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사뭇 자연스러워 보였고, 예의 있게 거절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가 신기하였다.
그는 흔쾌히 자신의 청을 허락한 여자 손님과 남자 손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케이크를 서비스로 주면서 삼십 분이 넘지 않는 시간 동안 손님의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 손님의 경우 대부분 케이크는 괜찮다고 마다하였지만, 카페 주인과의 대화는 친근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남자 손님이 먹지 않는 케이크는 카페 주인이 담소를 나누면서 한 입, 두 입 떠먹으면 금세 접시만 덩그러니 남았다. 여자 손님의 경우는 케이크를 마다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녀들은 대부분 카페 주인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한 입 먹고는 맛있다고 칭찬했다. 다크 초콜릿 케이크, 시나몬 케이크, 딸기를 얹은 생크림 케이크, 종류는 그때그때 달랐다. 케이크를 잘 먹어주는 손님이 있으면 그는 손님의 입맛을 돋우기 위하여 작게 몇 입을 가져갈 뿐, 케이크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손님이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은 듯했다.
독특한 운영 철학을 가진 카페 주인은 한 번 동석한 손님과는 다시 동석하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 만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라서 다시 방문한 손님에겐 눈인사 정도만 한다는데, 나는 왠지 그 사람에게 매력을 느꼈다. 작가 지망생입니까? 하고 내게 딸기가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를 건네던 카페 주인의 미소에서 너를 보고 말았다. 고전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정오의 카페에 손님은 나와 여학생 두 명, 그리고 어떤 중년 부부가 전부였고, 그중에서 혼자 온 손님은 나뿐이었다. 아니요― 지금은 아무런 꿈도 없습니다. 헤어진 연인을 붙잡는 편지를 쓰는 중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말입니까? 하고 웃으면서 옆자리에 앉았다. 창밖의 무상한 봄을 바라보면서 그와 담소를 나누었다. 그는 편지를 읽어봐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딱히 안 될 이유도 없어서 그러라고 했다.
「돌아올 것 같나요?」
「편지의 수신자 또한 손님을 많이 좋아했던 것 같은데요. 글쎄요, 확실한 예측이란 불가능하지만……」
「불가능하지만?」
「내가 편지의 수신자라면 돌아가고 싶을 것 같군요.」
그는 내게 편지를 돌려주었다. 내가 슬픔에 잠겼을 때 그 사람은 피아노를 쳐주었지요. 케이크 고맙습니다. 하고 나는 탐스러운 딸기가 올라간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내 입에는 너무 달콤했다. 달콤한 문장도, 달콤한 커피도 싫어하던 너의 성숙함에 막연한 동경을 느끼고 생의 달콤함보다 씁쓸함을 가까이 한 탓일까. 나의 입맛은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연장자의 성숙함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필요 이상의 무거움이었고, 어린아이의 천진한 웃음을 배우지 못한 경직된 영혼의 자기 치장이었을 뿐인데 그때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네가 하염없이 좋았다. 조용한 말투와 자기만의 철학이 뚜렷해 보이는 흐트러진 차림새가 너를 생각나게 하는 카페 주인은 신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적절한 맞장구만으로 내가 삼십 분 동안 쉼 없이 말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삼십 분이 조금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그는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토록 미련이 남지 않는,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이루어진 대화는 오랜만이었고, 아니 살면서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미련도 남지 않는 대화였다. 그날 나는 봄 하늘의 태양 아래서 드러나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에 빠져 창밖 풀꽃의 흔들림을 오래 바라보았다. 시골 들녘에 외로이 자리한 이 카페에 손님들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는 창가에 앉은 손님의 뺨이 불그스름히 물드는 저녁이었다. 그 많은 손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는 아름다운 고전 클래식이 흘러나오는 카페의 안락함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카페 주인도 묘하게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봄날의 낮꿈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카페를 찾았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카페는 그 자리에 여전히 외롭게 서 있었다.
한 번 본 사람은 잊을 수 없는, 쓸쓸하고도 건재한 그 작은 카페의 외관. 그곳에 나를 향해 손짓하는 손길이 있어 나는 홀린 듯이 다시 카페를 방문한 것이다. 그 많은 손님이 방문하는데도 이 카페는 왜 쓸쓸해 보이는 것일까. 설명할 수 없는 그 쓸쓸함이 어쩌면 자꾸 손님들의 발걸음을 끄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집요하게 비추던 대낮의 태양이 서서히 서쪽으로 지면서 하늘은 장미가 흘린 피로 물든 것처럼 붉어진다. 나를 알아본 카페 주인의 눈인사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창가 자리 쪽 벽에 붙은 <낙양>이라는 제목의 시는 일요일 저녁마다 카페를 찾는 한 문학청년의 선물이라고 카페 주인이 알려주었다. 나는 일요일 저녁에 이곳을 찾을 수가 없으니, 그 아름다운 시를 썼다는 청년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저 시가 탄생한 자리가 바로 저깁니다. 하고 밤잠을 설친 얼굴을 한 카페 주인이 턱짓으로 가리킨 창가 자리가 마침 비어 있었다. 그렇습니까? 내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그의 건강을 걱정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달지도 쓰지도 않은 라떼의 맛이 좋았다. 과연 이 자리는 장밋빛 노을이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적한 시골길과 훤히 트인 하늘을 물들인 저녁의 사랑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너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나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어린 시절 넘어지는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너와 나는 어쩌면 제대로 된 어른이 아닐지도 몰랐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카페 주인이 흘리듯이 했던 말, 너도 나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는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얼음이 녹기 시작한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었다. 너 나한테 돌아올 거니? 말이 되지 못한 문장을 어딘가에 흘려 적었다.
너는 내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가끔 피아노를 쳐주었다. 길고 곧은 손가락은 상처 입은 새처럼 건반 위에서 날갯짓하였다. 너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피는 유일한 시간이 그때였다. 나도 어느새 슬픔을 지우고 너의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너의 손보다 섬세하지 못한 나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나의 손은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의 미숙한 욕망의 손, 허전한 손,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손이었다. 나는 빈손을 감추려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붉은빛으로 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연애의 황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