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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Jul 02. 2024

가벼운 만남

짧은 소설


 누군가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너는 잠깐의 고민 끝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반듯한 사람? 온점이 아닌 조금 멋쩍은 감정을 드러내는 물음표. 작은 물음표가 끝에 붙을 것이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했던 상대는 너의 작은 망설임을 겸손함의 표시로 읽을 것이고, 원래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를 향한 호감이 조금 더 깊어질 것이다. 아니라면? 글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통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는다.


 너는 그 질문에 다르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외로운 사람인 것 같은데요. 하고 가볍게 웃을 수도 있을 것이고, 조용하고 맛집 찾으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유머는 없는 사람이라며 질문자의 기대보다 자세하게 너를 그려줄 수도 있다. 이런 질문에는 깊은 가정사, 어린 시절의 애정 결핍,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 같은 건 꺼내지 않는 게 이득이다. 사실 불안을 감춘 사람이에요, 또는 남들이 보기엔 늘 바쁜 사람이지만 알고 보면 지독히도 심심한 사람이에요. 따위의 대답은 경우에 따라서는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안전하거나 일반적인 대답은 아니다. 반듯한 사람? 너는 결국 너에게 뻔한 예상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멋쩍은 듯한 웃음이 뒤따랐다. 그 사람은 웃으며 대꾸했다.


  “늦은 밤에 혼자 술 마시는데 반듯해요?”

    

 그는 너를 그날 처음 봤지만, 너의 대답과 뒤따르는 무안한 미소가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사는 곳, 직업, 나이, 취미 따위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물어왔다. 호구조사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너에겐 부족한 유머를 겸비한 사람이었고, 너보다 두어 살이 어렸고, 표정이나 말투나 지나간 옛 추억 따위에 꾸밈없는 낙천성이 진하게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너는 그가 희귀한 존재라고 느꼈다. 너는 그가 너의 술값까지 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남이 너의 몫을 계산할 결심을 마쳤다는 걸 티 내지 않으려고 표정이나 시선을 미묘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고, 신선했다. 너는 조금 과음을 했는지도 모른다.


 너는 네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른 편인지, 아니면 남들도 너만큼은 눈치채고 사는 건지 잘 몰랐지만, 어쨌든 너의 빠른 눈치는 너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너는 그가 너에게 호감과 관심을 느끼고 있다는 걸 단번에 파악했다. 늦은 밤에 혼자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차분하고 분위기 있는 술집에서 존재의 외로움을 곱씹다가 인연을 만날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대개 그런 인연은 스쳐 가는 보잘것없는 인연이란 걸 너는 알고 있었다. 지치고 싫은 일들로 가득한 생활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이국적인 음악, 바텐더의 세련된 복장, 혼자 밤을 견디기 싫은 사람들의 나른한 말소리, 어떤 나른한 방심, 향기로운 술. 그런 것들이 현실적인 판단을 흐리고, 너의 귓가에 대고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도 있다고 속삭였다. 너는 떨쳐버리려고 했지만, 지독히도 심심한 생활은 이제 청산하고 싶다는 유혹이 너무 강했다.


 테이블 위에 무방비하게 놓인 너의 손에 자신의 손이 닿자 그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손으로 술잔을 들고 마셨다. 귀가 살짝 달아오른 게 보이자 너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그가 너보다 훨씬 순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그의 순수함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너는 그와 술집 밖에서도 만나기 시작했다. 영화관, 오락실, 혼잡한 시내, 냄새가 칙칙한 지하 카페, 동물원. 그는 폐장 직전 동물원의 쓸쓸함을 좋아했다. 너도 쓸쓸한 것들을 사랑했다. 서로의 집도 가게 되었다. 어두운 바다처럼 짙은 푸른빛을 띠는 눈동자와 사람을 웃기는 이야기를 술술 뽑아내는 입술과 늘 수줍음을 타는 귀를 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낮은 언제나 저녁이 됐다. 저녁은 언제나 밤이 됐다. 그를 만난 뒤로 너는 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그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일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너는 밤에 항상 혼자였다. 너를 찾는 사람도 네가 찾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혼자 책상 앞에 앉아서 해양 생물 피규어를 물감으로 칠하거나, 어항 속의 반려 금붕어와 대화하던 밤들은 이제 영원히 너에게서 떠난 것처럼 보였다. 네가 그의 집에 있거나 그가 너의 집에 있거나 했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너무 붙어 있으니까 질리지 않아?”


 너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예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게 질린다는 느낌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글쎄.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너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건 너의 즉각적인 방어 기제의 결과였다. 당연히 네가 자신과 비슷한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그럼 오늘 밤은 다르게 보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변화가 싫은 너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너는 아늑한 침대에 앉아서 그의 철없는 과거사를 듣거나 적당한 영화를 골라보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옛날에 만난 사람이 불쾌하고 유아적이라며 독설한 피규어 수집 및 색칠 취미를 이해해주는 그의 모습에 한편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너는, 그와 같이 피규어를 색칠하는 일도 좋아했다. 사실주의적인 감각에 기반한 결과물을 원하는 너와는 다르게, 그는 뭐든 다채롭게 알록달록 칠했다. 그런 차이를 구경하는 것도 너는 재밌었다. 아이 같은 다채로운 공상력과 순수함을 지녔다고 생각한 그가 다짜고짜 너에게 질리지 않느냐고 물어오자, 너는 확실히 당황했다. 그에게선 낯선 바람이 한 오라기 풍겼다. 너는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건 드라이브였다. 밤의 어둠을 가르며 시원하게 질주하는 감각. 뭐든 못마땅하게 여길 준비가 된 채로 들은 그의 제안은 생각 외로 괜찮았다. 그래서 너는 표정을 풀었다.


 “원래 스릴 있는 걸 좋아해?”

 “아니. 안정적인 게 좋아.”

 “그럼 속도 좀 줄이지. 이게 안정적인 속도야?”

 “안정적인 속도는 아니지만,”


 그가 너를 돌아보며 말했다.

   

 “걱정할 만한 속도는 아니야.”


 너는 그의 미소에 완전히 무장해제가 돼버렸다. 그래, 될 대로 되라지. 너는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거기서 자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가로등과 표지판뿐인 황량한 풍경들이 빠르게 너를 스쳤다. 너는 슬슬 겁이 났다. 너는 스물다섯에,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너를 죽일 것만 같단 생각이 들어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질주를 멈추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려 보니 그는 조금도 과하지 않다는 얼굴로, 심지어 따분함마저 느껴지는 표정으로 악셀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좀만 줄여. 너무 빨라. 하고 네가 최대한 차분하게 요청하자 그는 뭐가 빨라? 내가 세상 끝까지 데려다줄게. 라며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너는 기가 막혀서, 그 전에 뒤집혀서 죽을 것 같거든. 장난치지 말고 줄여. 하고 진지하게 정색을 하고 말하자 그는 스릴을 모른다며 툴툴거렸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웃겼다. 너는 줄이라고, 나 죽이기 싫으면.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나 죽이기는 싫은가 보지?”


 너는 머리 받침대에 뒤통수를 기대며 그를 향해 가볍게 물었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정면만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얄궂고 한편으론 장난을 치고 싶어서 너는 무심한 손길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자 그는 당황한 듯이 뭐하냐고 언성을 높였다. 어, 좀 답답해서. 하고 능청스레 대꾸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너는 아우성치듯이 덤비는 황량한 풍경들을 느긋한 눈길로 바라보며 비로소 스릴을 좇는 마음이란 게 뭔지 조금 이해했다. 네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차가 급하게 끼익 소리를 내며 갓길에 멈춰 섰다. 그는 화를 씩씩 내며 거친 손길로 너의 안전 벨트를 다시 매주었다. 죽으려고 환장했어? 하고 필요 이상으로 씩씩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니 너는 또다시 신선함을 느꼈다. 온전한 안정감이란 게 뭔지 알지도 못하고, 그런 걸 추구한 경험도 없는 너와 그는 자신들의 관계에 약간의 자극이 필요했다는 걸 동시에 깨달았다. 어떻게 동시였을까에 대해 말하면, 씩씩거리며 벨트를 매준 그의 시선과 그가 움직이고 화를 내는 모양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너의 시선이 한순간 딱 마주쳤던 것이다. 너는 그 순간 네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도 너와 똑같은 것을 느꼈다.




 사랑은 동물원에 없었다. 오락실에도 없었다. 썩은 걸레 냄새가 풍기는 칙칙한 지하 카페에도 없었다. 턴테이블이 돌아가는 분위기 있는 차분한 술집에도, 영화관에도 없었다. 사랑은 그의 눈동자 속에 있었고, 맨 위 단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여름 셔츠 안쪽에 있었고, 그의 혈관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붙어 있어도 지겹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깊지 않은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너에게 어린 시절에 채워지지 않은 애정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은 너의 눈빛에서 새어 나온 불안이 말해주었을 것이다. 너는 이제 피규어를 칠하지 않았다. 해양 생물의 이름을 외우지 않았다. 어항 속 반려 금붕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금붕어 어항은 점점 냄새가 났다. 너는 원래 너의 것들이었던 것들에 신경 쓰는 대신, 그의 농담에 웃었고, 그의 취향인 첩보물 영화를 보았고, 오지 않는 그를 기다렸다. 그는 전보다 연락을 잘 보지 않았다. 이유 없이 늦는 날도 많아졌다. 전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고 어딘가 멍해 보였다. 너는 신경이 쓰였지만, 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는 그가 네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를 내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가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었다.


 “냄새가 너무 심하잖아. 어항 좀 어떻게 해.”


 어느 더운 밤 푸른 여름 셔츠를 입은 그가 싸늘함과 안타까운 감정이 뒤섞인 묘한 말투로 말했다. 너는 그제야 거실이 썩은 물비린내로 가득하다는 걸 알았다. 너는 어항 앞으로 다가갔다. 너의 반려 금붕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배를 뒤집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끔찍한 꼴이었다. 그는 너보다 먼저 죽은 금붕어의 사체를 발견하고 너에게 한마디를 했던 것이다. 너는 삼 년 동안 아껴주었던 금붕어가 그런 몰골로 죽어버린 게 믿기지 않았다. 너는 전부 자기 탓이라고 자책했다. 죽은 금붕어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어 보내주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너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하룻밤만 아무런 근심 없이 그와 잠을 자고 싶었다. 너는 너무 자고 싶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 대신, 그에게 오늘 자고 가려고 왔냐고 물었다. 떠보는 행동이었다. 정직한 요구는 때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 때문에 지치고 위로가 필요한 너를 버리고 즐거움을 찾아 떠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었기에, 원래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자고 갈 거라고 대답을 했을 테지만, 그날 밤은 상황이 달랐다. 직전에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던 것이다. 너는 너의 불행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커다란 불행 앞에서 개인적인 욕심을 고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듯한 사람.

   

 너는 반듯한 사람이었다. 가정을 등한시한 어머니를 미워했지만, 결국 집안에서 어머니를 챙기는 건 너뿐이었다. 너는 일찍 세상을 저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잠자리를 잡고 계곡물을 튀긴 기억만 무한정 되풀이하며 애틋한 감정을 훈련했다. 훈련하지 않으면, 원망이라는 흉측한 검은 머리 개가 우리를 부수고 나와 날뛸 것이다. 이십대 초에 술만 마시면 날뛰던 자신처럼. 너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실수뿐이었던 고등학교 시절의 풋연애를 지나, 성인이 된 이후의 연애에서는 뭔가 다른 애정을 발견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십대 초반의 연애도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끝내 상대에게 사랑을 알려주지 못했고, 너도 상대에게 답을 요구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네가 너무 집착이 심하다며 이별을 고했고, 어떤 사람은 네가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떠나갔다. 네가 너무 무감각하단 것이다. 도대체 진짜 너의 모습이 뭔지 너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 상대를 움켜쥐어야 하는 건지, 언제 부서져 내려도 되는 건지 몰랐다. 너는 그냥 가끔 산산조각이 나고 싶었다. 그건 그에게도 말하지 않은 감정이었다. 어쩌면 그는 너의 그런 마음을 꿰뚫고, 그날 밤 정신 나간 속도로 텅 빈 고속도로를 내달렸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 마.

    

 너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소맷부리를 잡았다. 누군가의 서툰 마음을 움켜쥐고, 누군가의 진지함이라고는 없는 손길을 선선히 맞잡고, 누군가의 담배를 넘겨받아 피우기도 하였던 너의 죄 많은 손이 잘게 떨렸다. 그가 천천히 너를 돌아보았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은 그의 심리의 파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언젠지도 모르게 비뚤어져버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너는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게 다였다. 그는 어색하게 너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금방 오리란 다짐을 남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재촉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너는 소파에 길게 누워 생각했다. 그의 흔들리던 눈빛을 생각하며 엷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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