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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매 Dec 01. 2024

곶감의 말


내가 당신과 이슥한 밤 보풀투성이 이부자리에서

무릎을 맞대고 곶감을 나눠먹는 것은

당신과 나의 마음 속에 각각 그리운 얼굴이 깃들어있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우연히도 당신과 나 모두

사라진 그 사람에게서, 재해 낮잠 가을 노을 양말

같은 단어를 배운 사람들이란 공통점 때문인데요


신기한 일이지요 당신과 나는 양말을 신기 싫어하는 사람들인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겨울이 되니 양말부터 찾는다는 게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덤과 낙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무덤처럼 쌓인 낙엽인지 낙엽에 덮인 무덤인지

헷갈렸지만 답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중요한 것은, 이란 표현을 괜히 싫어하는데요

뭔가 대단한 거 꺼내려는 것 같아서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저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당신의 마음을 무덤인 양 덮고 있는 낙엽들

쓸어줘야 할 것 같다고 그게 내 일이라고 느꼈다는 것


내 마음이 망한 계절은 언제 같아요?

내 눈동자는 어떤 풍경인가요


물으니 당신은 곶감이나 먹으라며 하나를 더 입에 물려주었는데요

이런 취급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래야 당신 같아서 나는 잠자코 곶감의 검질긴 슬픔을 씹습니다.


달아요

그래 넘치게 달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말아요

그래 너무 예측 가능한 건 싫어


난파 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당신을 향해 미소를 짓습니다

조금 어색하지만 미소가 분명한 미소가 되돌아올 때

어디선가 담이 무너집니다 은밀하게


곶감의 슬픔은 곶감의 천진이 되고

슬픔 속에 천진이 보일 때 사랑의 형刑은 시작된다는 걸 알았는데요


새벽에는 눈이 내린대요

내리다가 폭설이 된다는데

괜찮은 척을 하다 점점 우는 사람처럼


어차피 잠들지 못할 당신과 나는

이 기나긴 밤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그만 씹고 말을 걸어볼까요


당신 손에 든 곶감에게

어머니 나무의 따스한 추억을,

주렁주렁 매달린 주홍감들 사이에서 어느 감에게 닿고 싶었는지를,

닿지 못하고 홀로 오래 추락할 때의 마음은 어땠는지를


몸에 번진 하얀 가루가 자랑스러운지 혹은 미운지에 대해서도요

알고 싶으니까

말없이 자세를 조금 고쳐앉는 당신

오래 앉아 있어도 아프지 않은 자세를 찾는 쉽지만 어려운 일, 겨울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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