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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늬밤 May 09. 2020

봄은 고양이로다! 그때 그 봄, 고양이 어르신

예술가들이 사랑한 존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봄이 되면 생각나는, 고양이 어르신


출처   Fat Cat Art, 스베틀라나 페트로바

대학 시절, 우리 학교엔 마스코트가 하나 있었다.


도서관 옆 계단에서 항상 지나가는 우리를 부르며 발목을 붙잡던,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에서처럼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 어르신.


{누군가 키우다가 유기된 거다, 자유를 갈구하며 도망친 거다, 다 틀렸다! 사랑을 찾아 스스로 출가한 거다..} 등 길고양이 치고는 이런저런 화려한(?) 썰이 꽤 많은 편이었다. 다른 고양이들과 비교해서 특별히 더 털이 곱다거나 생김새가 뛰어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 시선을 이끌고 주머니를 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덕에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늘 통통한 몸집을 유지하곤 했는데, 그러한 행적으로 봐선 결코 범상치 않은 과거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는 평이 동기들 사이에서 자자했다.




도서관 길고양이가 살아남는 법


출처   Fat Cat Art, 스베틀라나 페트로바

이 고양이가 살아남는 비법은 우리가 관찰하기론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1. 내 이름 따윈 상관 없다. 부르면 간다!

분명 1학년 입학한 후 선배들에게 그 고양이의 이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름으로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그는 일단 눈이 마주치면 다가왔다.(그 덕에 그 고양이 진짜 이름이 뭔지 정말로 까먹어버렸다..) 이것이 이 고양이의 첫 번째 생존 비법이었다. 나비야, 야옹아, 고양아, 냥이야 등등.. 심지어 멍멍아~ 하고 짖궃게 불러보아도 당장에 긴 꼬리를 나른하게 흔들며 다가오니.. 넉살 좋기로는 아마 동네, 아니 전국 1등인 고양이었을 것이다.


2.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내가 간다!

과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학기 말이나 시험 기간이 되면 간혹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우리들은, 늘 그렇듯 도서관 계단 옆에 앉아 있는 이 고양이를 종종 못보고 지나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꼭 "야-" 하고 불러서 쓰다듬을 받거나 간식을 얻어 먹곤 하는게 요 녀석의 특기였다. 가끔은 불러주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해서 일부러 외면하고 지나친 뒤, 야-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알은 체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까지 고양이란 도도하고 앙칼진 동물이라 여겼건만, 이 개냥이(?) 덕에 나는 고양이라는 존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어버렸고 그러던 와중에 고양이 팬심에 쐐기를 박는 시를 만나게 되었으니..




봄은 고양이로다..!


출처   Fat Cat Art, 스베틀라나 페트로바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의 詩 <봄은 고양이로다> 1923


어느 봄볕 따사로운 날,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다>. 춘곤증으로 인해 반(半)가사 상태였는지라 무슨 맥락 가운데 나온 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듣는 순간 어디서 이런 시가 나왔나 싶었다. 텍스트를 읽는데 흰 종이 위에 고양이가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게 아닌가..! 도서관 그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 빛나는 눈동자, 뾰족한 코 아래로  앙 다문 입술, 그 양 옆으로 삐죽이 펼쳐진 수염까지.. 비유법이란 이렇게 사용하는 거지, 하는 비유의 정석과 같았고 그때부터 봄만 되면 그리고 고양이만 보면 이 시가 떠올랐다. 고양이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과 직관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나 조금이라도 고양이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는 그 당시 '모더니즘의 극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 고양이는 '단순한 묘사의 감각적 대상' 즉, '시적 대상'으로 나타나있다. 이와 다르게 '작가의 감정이 이입'된 작품도 있으니 바로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이다.




엣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직업은 교사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일 서재에 틀어박힌 채 거의 나오는 일이 없다. 집안사람들은 몹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 그는 위가 약하고 피부색이 누르스름한 빛을 띠는 데다가 탄력이 없고 윤기가 없다. 그런 주제에 밥을 많이 먹는다. 밥을 많이 먹은 후에 다카디아스타제를 먹는다. 먹은 후 책을 편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린다. 책 위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의 매일 밤 반복되는 일과이다.

 -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출처   Fat Cat Art, 스베틀라나 페트로바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책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고양이다. 새끼 때 버려져 우연히 중학교 영어 교사인 구샤미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특별한 사건 없이, 주인집에 드나드는 인물들을 관찰하는 게 전부이지만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살아 있으며, 그 주변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스스로를 ‘이 몸’이라 추켜세우며 인간들을 자유롭게 관망하는 이 고양이가 보기에 인간은 이상한 족속이다. 쉴 새 없이 말하고 웃고 즐거워하는 것밖에 신통한 재주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똑똑하고 근엄한 척하는 고양이가 내뱉는 독설과 유머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구샤미는 희화화한 나쓰메 소세키 자신이며, 고양이를 탐정과 같은 역할로 설정하여 고양이의 눈을 통해 인간사회와 자기 자신을 마음껏 조롱하는 통로로 사용했다고 한다.




명화 속 고양이들


시인, 소설가에 이어 화가까지 사로잡은 고양이들은 이제 그림 속에서 각종 주, 조연을 차지하며 자신들의 매력을 톡톡히 뽐내고 있다.


명화 속 고양이들의 모습을 한번 살펴보자.


(좌) 메리 카사트, 고양이를 안고 있는 사라, 1908  /  (우) 르누아르,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1875
(좌) 에른스트 키르히너, 검은 고양이, 1926  /  (우) 마티스, 고양이와 금붕어 화병, 1914
(좌) 파울 클레, 고양이와 새, 1928  /  (우) 페르낭 레제, 여인과 고양이, 1921
마네, 쥘리 마네 또는 고양이를 안은 소녀, 1887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맨 마지막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속 소녀를 눈여겨보시라!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화가 베르트 모리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 쥘리 마네. 베르트 모리조는 에두아르 마네의 모델이자 당대의 뛰어난 여성화가였다.




그런가하면,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명화를 패러디 또는 오마주한 작품들이 또 애묘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먼저 수잔 허버트의 작품들. 명화 속 인물들을 고양이로 대체한 것이 재미있다. 여기가 원래 자신이 있을 곳이라는 듯 천연덕스러운 고양이의 표정이 미소를 자아낸다. 가만 살펴보면 이미 익숙한 그림들이지 않은가..!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맞혀보는 즐거움 쏠쏠하다.


수잔 허버트의 작품들



다음은 스베틀라나 페트로바의 작품. 그녀의 Fat Cat인 고양이 자라투스트라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명화 속에 갑자기 뛰어 들었지만 전혀 이질감 없는 고양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기존의 명화 구도를 마치 열심히 연구하기라도 한 듯한 자라투스트라의 절묘한 위치 선점은 위화감은 커녕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뿜어낸다.


스베틀라나 페트로바의 고양이 자라투스트라가 모델인 작품들  / 출처 Fat Cat Art


올해 봄은 코로나 블루 유난히 추웠던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로 빼앗긴 들에도, 결국은 봄은 왔다.


봄만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어서 오늘은 문득 대학시절 도서관 옆 고양이가 떠올랐다. 작년에 강연 차 모교를 방문했을 때, 그 고양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공사 중일 때 사라지고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끝나고 후배들에게서 들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 건지.. 어쨌든, 그 녀석과의 추억이 어린 계절이 으니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



한 손엔 고양이 간식을 사들고

입으론 이장희의 詩를 읊으며..



글. 아트소믈리에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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