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사랑한 존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 내 이름 따윈 상관 없다. 부르면 간다!
분명 1학년 입학한 후 선배들에게 그 고양이의 이름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이름으로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그는 일단 눈이 마주치면 다가왔다.(그 덕에 그 고양이 진짜 이름이 뭔지 정말로 까먹어버렸다..) 이것이 이 고양이의 첫 번째 생존 비법이었다. 나비야, 야옹아, 고양아, 냥이야 등등.. 심지어 멍멍아~ 하고 짖궃게 불러보아도 당장에 긴 꼬리를 나른하게 흔들며 다가오니.. 넉살 좋기로는 아마 동네, 아니 전국 1등인 고양이었을 것이다.
2.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내가 간다!
과제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학기 말이나 시험 기간이 되면 간혹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우리들은, 늘 그렇듯 도서관 계단 옆에 앉아 있는 이 고양이를 종종 못보고 지나칠 때가 있었다. 그러면 꼭 "야-" 하고 불러서 쓰다듬을 받거나 간식을 얻어 먹곤 하는게 요 녀석의 특기였다. 가끔은 불러주는 것이 신기하고 기특해서 일부러 외면하고 지나친 뒤, 야-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알은 체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이장희의 詩 <봄은 고양이로다> 1923
직업은 교사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종일 서재에 틀어박힌 채 거의 나오는 일이 없다. 집안사람들은 몹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 그는 위가 약하고 피부색이 누르스름한 빛을 띠는 데다가 탄력이 없고 윤기가 없다. 그런 주제에 밥을 많이 먹는다. 밥을 많이 먹은 후에 다카디아스타제를 먹는다. 먹은 후 책을 편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린다. 책 위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의 매일 밤 반복되는 일과이다.
-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