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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Dec 12. 2019

[서평] 스스로 생각하는 두 사람을 만나다.

- <만남> 독자 간담회에 다녀와서

2008년 초 '연세대 대학원 신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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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겨울, 나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들고 전셋집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람은 매서웠고 아내 손을 잡고 여기저기 부동산을 다니는 길은 더욱 추웠다. 그러던 어느 날, 당산철교를 건너가는 지하철에서 불현듯 깨달았다. 이 나라에선 만약에 내가 무너진다면 무엇도 나를 지탱해주지 않겠구나.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그 무섭다는 신자유주의구나. 


그로부터 1년이 지난겨울, 나는 아내 손을 잡고 다시 당산철교를 건너고 있었다. 임신 7개월인 아내와 홍대입구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독자 간담회 시간에 만나게 될 김상봉과 서경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질문을 가득 준비 해오라는 주최 측의 당부를 떠올린 아내는 내게 궁금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만남>을 읽으며 나는 김상봉이 전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붙들고 있는 희망의 정체가 의심스러웠고, 서경식이 집단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속에서도 공동체에 대해 쉼 없이 수병 통신을 띄워 보내며 대화를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재미없는 질문이라고 했다. 


<만남>에서 김상봉과 서경식은 대화를 나눈다. 그 둘은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대화를 나눈다. 근래 유행하듯 나온 대담이나 서신교환 형태의 책들 중에서 둘은 가장 정직하게 충돌한다. 마치 맨 몸으로 나뒹구는 레슬링 경기를 보는 듯하다. 둘은 전공이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떼어놓고 보면 충돌할만한 지점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 철학자와 수필가이지만 한일 여성학자 서신 교환 집 <경계에서 말한다>보다 더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인문학자와 사회생물학자가 만났던 <대담>보다도 더 긴박하게 부딪친다. 


서경식의 힘, 몽상을 거부하는 디아스포라 


김상봉과 서경식은 <만남>에서 끊임없이 부딪친다. 아니, 책의 표현을 이용해 보면 그 둘은 계속 만난다. 시작은 ‘서로주체성’이었다. 서경식은 김상봉이 민중 언어로 철학을 해야 한다는 고민과 서양철학의 일방적인 주체성에 대한 비판 속에서 만들어낸 그 개념에 시위를 겨눈다. 놀랍게도 비판의 지점은 서로주체성이라는 개념이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 할 만큼 철학사에서 새로운 것이냐는 몇몇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용어의 민중성 자체다.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에게 그 용어가 일상적이고 민중적일수록, 언어공동체 외부의 사람들과 소통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결국 그 용어의 번역 불가능한 민중성이 자신과 같은 디아스포라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다. 


‘서로’라는 말의 뜻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선생님과 저의 만남에서 ‘서로주체성’을 어떻게 구축해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내부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 서경식 <만남> P39 


모어와 모국어가 다른 재일조선인으로 성장하며 자기 자신과 세상을 주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경험과 훈련을 꾸준히 해온 한 디아스포라의 생각은 <만남>에서 내내 빛난다. 그 강렬함은 그의 존재에서 기인한다. 서경식의 유년시절 독서기를 적은 <소년의 눈물>에는 일본인 중학교에 막 입학한 그가 영어수업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선생님의 입 모양을 흉내 내며, 한 명씩 ‘I am Japanese’를 반복하는 수업에서 그는 어떠한 답도 하지 머뭇거리다 ‘저는 일본인이 아니라……’라고 말한다. 일본인 선생님은 쓸데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말라며 불쾌해한다. 하지만 그는 중학교 1학년 선생님의 충고를 거부한다. 그는 어느 공동체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또 말했던 것이다. 집단과 개인의 관계, 거리를 항상 고민해야 했던 그는 <만남>에서 빛나는 통찰을 보여준다.


서경식은 민중의 고통을 먼저, 대신 울어주는 것이 학자의 역할이라는 김상봉의 말에, 무엇보다 고통받는 주체와의 ‘거리’가 중요하다고 받아친다. 타자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 거리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중신학에는 민중과 지식인 사이의 거리를 잊어버린 채 스스로를 고난 받는 민중으로 여겼던 면이 있었다며, 그 거리를 잊는 때가 민중 담론이 타락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민중신학만 그러했을 것인가. 한국 진보운동은 그 비판의 칼날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제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가 된 이재오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이야기한 “내가 그토록 민중을 위해 정치한다고 했지만 민중들은 우리를 외면”했다는 유아적이라며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불편한 그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김상봉의 힘,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서로주체성 


 <만남>에서 김상봉은 <자기의식과 존재사유>와 같은 철학 이론서는 물론 <호모 에티쿠스>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등의 대중서와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로주체성과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선의 씨앗을 뿌리는’ 삶에 대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그가, 이 책에서는 서경식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벌거벗은 철학자’로 등장한다.


<만남>에서 그는 거침이 없다. 그는 유행이 한참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역사에 대한 신뢰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종교와 형이상학을 품지 못한 서양 혁명이론의 피상성에 대해 말한다. 또한 일제강점기 한국을 두고 타자적 정신에 매혹될 줄 알았던 우리 공동체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동시에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스피박을 두고 ‘이 사람이 아직 여기 머물러 있구나’라고 비판한다. 그는 도대체 어디에 젖줄을 대고 있기에 종횡무진 사상의 범주를 자신의 언어로 넘나들 수 있을까.


 독자 간담회에서 그는 책에서 이미 수차례 언급했던 함석헌을 다시 이야기했다. 후회하는 일이 있다는 이야기로 입을 열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쓰고 한국의 역사에서 희망과 전망을 찾으려 했고 <씨알의 소리>로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던 함석헌이 살아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 그와 가까이 있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서양철학을 공부했던 자신이 한국의 현실을 고민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상적 자양분을 함석헌의 글에서 얻고 있는지를 토로했다.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는 데 있어, 외부의 생각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우리 역사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고 사상을 길러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김상봉은 이야기했다. 이제는 철학계에 스타가 없지 않으냐고. 90년대 중후반 대학가에 유행처럼 번졌던 네그리, 푸코,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에 대한 열기가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시들해진 모습을 말하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사빠티스타 반군과 브라질 노동당의 룰라가 떠올랐다. 불과 몇 년 전, 마치 새로운 진보의 표상처럼 여겨지던 그들에 대해 이제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사빠티스타 반군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브라질 노동자당은 타협과 투쟁을 계속하며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는데, 마치 체 게바라 티셔츠 처분되듯 새로운 진보의 표상은 한국에서 소비되고 사라졌다.


현실에 뿌리박지 못한 담론은 그것이 무엇이든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다. 강준만은 한국의 학자들이 왜 나이 50이 넘어 정치를 향해 맹렬히 뛰어드는지를 분석하며 그 원인 중 하나로 ‘현장’을 가지지 못한 자의 비극을 이야기했다. 30대 초반 외국에서 새로운 이론을 배워와 학계에 정착한 뒤, 그 아래 세대들이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오면 학자로서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고 검토하며 발전시켜나가는 원동력인 현장을 가지지 못한 학자가 에너지를 쏟게 되는 분야 중 하나가 정치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생각을 전달하는 철학교수는 많지만 철학자는 찾기 힘든 나라에서 김상봉이 자신에게 함석헌이 어떤 의미인지 말할 때, 내게는 김상봉도 그가 바라보는 함석헌도 그래서 더욱 소중했다.


나는 <만남>을 읽으며 반가웠다. 고지식한 나는 여전히 인문학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인 무언가를 기대하는데, 철학은 근대건 민족이건 혹은 무엇이건 해체하는데 열중하고 문학은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거나 숨 막히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을 그저 묘사하기만 했다. 다시 플라톤과 최인훈을 읽는 일은 답답했다. 하지만 김상봉은 5.18을 씨알과 국가의 전쟁으로 재규정하고, 함석헌에 기대어 역사에 대한 신뢰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공동체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법이 억지스럽지 않은지, 절망의 시대에는 오히려 정직하게 절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희망을 만들어내는 일에 가까운 일이 아닐지 무엇보다 사회과학적인 희망에 대한 질문을 문학적인 수사로 답하려는 것이 아닌지 궁금했던 것이다. 독자간담회가 예상했던 시간을 초과해 늦어지고, 사회자가 마지막으로 혹시 질문하실 분 있으시냐며 형식적인 멘트를 던졌을 때, 머뭇거리다 손을 들었다. 장소를 예약했던 시간이 초과되어 난감해하는 주최 측의 원망 어린 표정을 뒤로하고 김상봉에게 내 의심을 말했다. 그는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 자리가 섭섭했을 것이라며 반가워했다. 내게 그의 답은 절반쯤 억지스럽고 또 절반쯤 수사적인 것이었지만, 나는 그 대답이 참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밤 10시가 넘어 간담회가 끝나고 2호선 지하철을 타고 봉천동 집으로 돌아왔다. 날은 여전히 추웠고, 가족을 생각해 자살하지 말라는 TV 광고가 나오는 나라에서 여전히 우리 모두는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터에 던져진 개인이었다. 뭐, 어찌 되었건 전날 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던 서경식의 털털한 웃음이 생각났고, 쉬는 시간 아내를 소개하며 책에 싸인을 부탁하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둘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주던 김상봉이 떠올라, 그 날 하루는 살아가는 일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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