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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Feb 27. 2020

역병과 천인상응론, 왕 Vs 신하

1525년 당시 조선 인구의 0.5% (오늘날 한국의 인구로 환산하면 26만명)를 사망에 이르게 했던 전염병 유행 참사를 두고서, 왕과 신하 사이의 대립이 점점 심각해집니다. 신하는 왕에게 당신이 제 몫을 못해 여기까지 왔으니 그 책임을 따져 밥상의 반찬수를 줄이고 음악을 폐하라는 주장 합니다. 에둘러 왕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셈이지요. 왕은 백성의 삶이 어렵기 때문에 범죄자를 사면하고 감세를 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일정 부분 관료들의 통치 책임을 묻는 것이지요. 조선시대 통제하기 어려운 전염병을 두고서 생겨난 군신 간의 충돌을 둘러싼 정치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래 글은 본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의 p118에 들어가기 위해 제가 썼던 내용이데, 편집 과정에서 삭제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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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에서 보듯이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는 구휼과 치료를 진행하고 <간이벽온방>이 배포된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매일 수백명의 백성이 죽어갑니다. 1525년 2월 4일입니다.


"이 장계(狀啓)를 보건대, 전염병이 이미 전일에 환자가 없던 고을에도 퍼졌으니 두어 달 뒤에는 다른 도(道)에도 파급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지극히 염려스럽다. 여러모로 빠짐없이 치제(致祭)하며 비손했는데도 전염병이 이렇게 퍼지니 내가 재변을 해소할 방도를 모르겠다."(중종실록 53권, 중종 20년 2월 4일)


중종은 평안도 감찰사 김극성에게 고백하듯 말합니다. 내가 여러모로 최선을 다했는데, 전염병이 이렇게 계속 퍼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땅치는 않지만 이 모든 게 원통하고 억울한 일들로 인해 생겨난 나쁜 기운이 저지르는 문제라고 생각해보면, 그 화기를 다스리기 위한 정책을 시행해보면 안 될까 싶다. 왕의 말에 검토관 조인규는 ‘감세(減稅)하는 일은 옛사람들도 시행한 것이니’ 이번에도 시행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답합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가는 데 왜 감세 정책을 말할까요. 이 정책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세계관의 중요한 부분인 천인상응론(天人相應論)을 말해야 합니다. 하늘은 인간의 행동에 감응하며 상호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천인상응론에 기반해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지상의 통치가 마땅치 않아 그에 대한 반응으로 화기가 어그러지고 전염병의 원인인 나쁜 기운 여기(戾氣)가 생겨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천인상응론이라는 같은 이론에 기반했지만 임금과 신하가 다른 대책을 내놓습니다. 임금은 군주나 양반과 같은 지배층이 잘못해서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은 일이 많아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해, 백성을 위해 죄인을 사면하고 진상을 축소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신하들은 반대합니다. 세금이 줄어들면 국가재정이 악화된다는 것이었고, 죄인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화기를 해치기에 천인상응론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평안도 지방에 한정되어 가벼운 죄만 사면하고 세금의 일부를 감면하는 것에 합의합니다.


"신 등이 듣건대, 재변이 생김은 인사(人事)가 잘못됨에 있고, 재변을 해소하는 길은 수성(修省)을 실답게 하기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언제나 조심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낮이나 밤이나 경계하는 마음을 갖고 감히 태만하거나 소홀함이 없이 여러 가지 정사(政事)를 돌보시기에 애를 쓰시니, 마땅히 별이나 해가 궤도대로 운행되고 추위나 더위가 어긋나지 않으며, 백성과 만물이 화락(和樂)하며 뜻을 얻게 되고 재변이 일지 않아야 할 것인데, 이번에 재해가 겹쳐 생기고 화기가 돌지 않으며, 철을 어기고 겨울에 뇌성이 치고 지도(地道)가 안정을 잃었으며, 서쪽 변방의 백성들이 여역(癘疫)으로 죽어 시체가 들판에 가득하여 열 집 중에 아홉 집은 비게 되었습니다.” (중종실록 53권, 중종 20년 3월 2일)


그런데, ‘재변을 해소하는 길은 수성을 실답게 하기에 달렸다고’ 말하며 신하들은 왕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예의바른 태도로 말하지만, 화기가 어그러진 것은 하늘을 대신해서 이 땅을 통치하는 왕, 중종에게 책임이 있다며, 중종에게 공구수성(恐懼修省),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하기를 요구합니다. 공구수성의 구체적 내용 중 하나는 감선철악 [減膳撤樂], 나라에 큰 사고가 있을 때, 반성하고 조심하기 위해 임금의 밥상에 음식 가짓수를 줄이고 음악을 폐하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천인상응론에 기반하여 감세와 사면을 추진하며 일정부분 관료들의 통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국왕과 공구수성을 주장하며 왕의 권력을 제한하고자 하는 신료들의 충돌인 것이지요.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대신들 예우(禮遇)하기를 조금도 간략하거나 소홀함이 없이 하여, 조정의 체통(體統)이 더욱 높아지도록 하시고 뒷날 전하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 않도록 하신다면 이보다 더 다행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아, 7년의 가뭄과 상곡(桑穀)의 재변이 성탕(成湯)과 중종(中宗)의 정사(政事)를 방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전하께서 깊은 못과 얇은 얼음에 임한 듯이 삼가고 두려워하시며, 허명을 배척하고 실지를 힘쓰며, 근본을 앞세우고 말단적인 것을 뒤로 돌리며, 성의와 공경을 극진하게 하여 재변 해소하는 방도를 강구해 가신다면 상(商)나라 왕실에 호응하던 하늘이 전하께는 호응하지 않겠습니까? 하늘도 호응하게 되는데, 감동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정신을 집중하여 살피소서.” (중종실록 53권, 중종 20년 3월 2일)


신하들에게 보다 예의를 갖추고 소흘함이 없게 하라는 요구사항입니다. 특히 마지막에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정신을 집중하여 살피소서’라며 왕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당신이 잘하면 하늘이 왜 호응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중종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각각 도리를 다해간다면 재변이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라고 말하며 각자 맡은 바를 잘하는 게 우선이라고 답합니다. 군신간의 정면충돌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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