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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Apr 28. 2019

트랜스젠더들이 투표장에서 겪는 일

시사인 연재글 (2018)

20여 년 전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학자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제게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질문에 대해 답하려고 해봐.” 저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도전해보라고 요구하는 그 패기와 담대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충고가 불편해졌습니다.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지, 그런 존재를 가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은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권력과 자본을 가진 다수자들의 삶에 더 중요한 질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소수자의 삶을 옥죄는 낙인과 편견은 종종 우리가 그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을 병들게 하고 있었습니다.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하면서 그 생각은 확고해졌습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 트랜스젠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가 막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살 거야? 너 어차피 이상해질 거다’라면서요. <개그콘서트> 같은 데서 흔히 써먹는 소재가 남자들이 여장하고 나오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가볍게 웃으며 즐길 수 있었던 그 장면이, 트랜스젠더인 그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비웃는 불편하고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두려움, 성전환을 시작하기 전에 난자·정자 보관을 통해 자녀를 가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절박함, 신분증 확인 과정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을 저는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상상하지 못하니 질문하지 못했고, 묻지 않았으니 해결책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1387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 출발점은 ‘나는 아직 당신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렇게 우리의 무지와 무례함을 사과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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