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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May 04. 2020

11. 새살 그리고 새 삶

우울과 불안 사이 그 언저리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연애는 완벽한 연애가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란 결핍과 결핍의 만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건데,

그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연애가 가장 안정적 일지 모른다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남은 어느 날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이란 '불안'과 '우울'의 만남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불안을, 어떤 날은 상대가 불안을 담당하며 엎치락뒤치락한다는 것을.


뭐 이렇게 외줄타기 하는 거 같나, 싶다가도.


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 그래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평양냉면을 먹어본 오늘.


어쩌면 짝꿍이 아니었다면 계속 미루기만 했을 수도 있는 경험의 영역을 한 뼘 넓힌 오늘.


한 테이블에서 합석을 했던 옆 커플의 경우도 우리와 같은 것 같았다.


남자는 아마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듯했고, 여자는 나와 같이 첫 시식인 거 같았다.

(메뉴 선택도 같았다. 첫 시식은 우리는 비냉. 헤헤헤.)


남자는 냉면을 한 입 베어 문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금 싱거울지 몰라"


그런데 여자는 그 순간 다른 생각을 했는지 남자에게 계속 되물었다.


"응? 오늘은 자기도 싱겁다고?"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남자는 천천히 다시 본래 자신이 하고 싶던 말에 대해 설명해줬다.


"내 입에는 좋은데, 처음 먹어본 자기 입엔 좀 싱거울지 모르겠다고"


여자는 냉면을 먹다가 한 번 웃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싱거운 모양이었다(는 추측이긴 하다).



오늘 목격한 이 장면에서 나는 두 가지를 떠올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기꺼이' 상대방의 세계로 나아가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전진은 경험의 영역을 한 뼘 더 넓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상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 혼자서는 해보지 못했을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이라고.


그리고 하나 더.  


한 번 더. 상대에게 천천히 말해준다면 전하지 못했던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제발 다들 전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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