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니 제주도에 온 것이 실감 난다. 창문 밖으론 바다가 보이고, 그보다 앞서 돌담과 감귤밭, 야자수가 차례차례 한눈에 보인다(그 와중에 공사 중인 건물도 함께 보인다). 시내와는 떨어진 곳이라 인적도 드문 편이고, 조용해서 한적한 시골 마을 같다. 복불복의 확률로 짖는 개소리를 포함해 가끔 들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자연의 소리로만 채워지는 공간 같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밤이 되니 개미들도 정모를 하듯 하나둘 모인다는 것인데(아마 불빛 때문에 그렇겠지), 문제는 그게 내 곁이라는 거다. 역시 모기장을 챙겨 오길 잘했어, 하고 나를 칭찬해보지만, 침대보다 작다. 헤헤. 덕분에 약간 웅크리고 자야 할 듯.
각설하고, 나는 어제, 짐은 오늘 오전에 도착했다. 택배 문자가 아니었다면 늦잠을 잘 뻔했다. 이곳에 와서까지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축 쳐진 생활을 하고 싶진 않다. 혼자 속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12시 전에 자서 9시에는 일어나자 다짐했는데 하나 둘 침대 곁으로 모여드는 개미 때문인지 낯설어서인지 방안을 가득 채우는 나프탈렌 냄새 때문인지 긴장 반 설렘 반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인지 밤을 꼴딱 새웠다. 블라인드 사이로 밝아오는 햇빛을 느끼며. 그래도 뭐 오늘 밤은 더 나아지겠지.
커다란 포부를 품고 이곳에 온 건 아니다. ‘도망치자’와 ‘쉬어가자’ 사이 어딘가에 마음이 발동한 것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갈 곳’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곳이니까. 그럼에도 작은 바람들을 그려보며, 그보다 더 작은 다짐들을 해본다.
웬만하면 자정 전에 잠들기
더 웬만하면 9시 전에는 일어나 아침 산책하기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 사진이나 글로 옮기기
덜 초조해하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에 대해 생각해보기
챙겨 온 영양제 다 먹기(유산균, 마그네슘, 포도씨)
한마디로 조금 더 건강해지기
욕심 내자면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