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진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Mar 16. 2021

까치의 속도도 다르다

 집 앞 까치는 한 달 넘게 나뭇가지를 물고 다녔다. 그러다 나뭇가지는 낙엽으로, 솜털로 차례대로 바뀌었다. 그렇게 까치 부부는 두 달 가까운 시간에 걸쳐 쉬지 않고 집 짓기에 열중했다. 처음 까치가 집 짓는 걸 발견한 게 지난 1월 11일 경이다. 아주 얕게 나무가 깔려 있는 상태였는데 막 집 짓기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사실 이날은 계속 같은 곳에서 놀고 있는 까치가 신기해 보여 사진을 찍었을 뿐 그들이 집을 짓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까치 부부가 집을 짓고 있는 걸 알게 된 건 며칠이 지나서였다. 15일이 되자 제법 나뭇가지가 쌓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수가 까치집이라니.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는 까치라니. 나는 한동안 까치를 매일매일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크게 부풀었다. 그러다 카카오 플백을 통해 만난 새소리 듣기 모임방에 자랑을 했다. 곧 다른 동네 까치들도 집 짓기를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새도감의 내용보다 조금 이른 시기이긴 했다. 책에는 겨울이 끝나는 2월에서야 집을 짓기 시작한다고 적혀있었다.


 까치가 걱정됐던 건 아빠의 말 때문이었다. 이렇게 추운데 벌써 집을 지으면 새끼들은 어쩌냐. 까치가 막 집을 짓기 시작할 땐 겨울이 끝났나 싶을 정도로 날이 포근했다. 그러다 매서운 바람이 이내 찾아들었고, 몇 차례 눈비도 거세게 내렸다. 그럴 때마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집을 짓는 까치들이 뭘 잘 몰라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우려와 달리 까치 부부는 무사히 집 짓기를 끝마쳤다. 부모가 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내 친구 까치가 집 짓기를 다 끝마쳐갈 때쯤 같은 서울 다른 동네에선 이제 막 집 짓기를 시작한 까치들도 있었다. 이전에 까치들이 눈앞에서 집 짓는 걸 보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 모습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이번엔 또다시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까치들은 이제 새끼 낳을 준비를 할 텐데 이제 집 짓기를 시작해도 될까. 늦은 건 아닐까. 늦은 걸 수도 있다. 새도감 기준으로 집 앞 까치는 '일찍' 집 짓기를 시작했고, 다른 동네 까치는 집 짓기를 '늦게' 시작한 셈이다. 이들을 발견한 건 지난 2일이었다. 나무를 물고 가는 걸 보지 못했다면 집 짓는 걸 몰랐을 정도로 얕게 나뭇가지가 깔려있었다. 약 2달 차였다. 새들의 시간으로 치면 더 큰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너무' 늦은 것일까.


 그러나 걱정도 잠시 까치들은 부지런을 떨었고, 그덕에 집은 놀라우리만치 빠르게 지어졌다. 그렇다면 까치의 속도도 다 다른 셈이다. 집을 처음 짓는 까치와 집 짓기에 능숙한 까치의 차이일 수도 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의 차이도 컸다. 무엇이든 지레짐작하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걱정과 달리 집을 잘 지어낸(혹은 짓고 있는) 까치 덕분이었다. 다만 시기가, 속도가 다를 뿐이었다.


 내 친구 까치가 한창 집을 짓고 있는 와중에 우연히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을 봤다. 어느 가을날 푸릇푸릇한 나뭇잎들 사이에 앉아있는 까치였다. 까치는 정확히 지금 내 친구 까치들이 집을 지은 곳에 앉아있었다. 그렇다면 그때부터 집 지을 곳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그렇다면 까치의 집 짓기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러니 감히 그 속도를 어찌 비교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저 응원할 수밖에. 까치가 길조의 상징인 것처럼 그들 스스로에게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곧 태어날 새끼들도 건강하기를. 


 

지난 5일 솜털을 물고 온 까치. 2주간 솜털을 물고 온 것을 끝으로 집 짓기를 끝마쳤다.
지난 11일 다른 동네 까치들의 모습. 일주일 만에 저만큼 집을 지었다.
지난 3일 바로 위의 까치들이 막 집을 짓기 시작한 모습.
지난 가을 어쩌면 내 친구 까치가 집 지을 곳을 모색하던 중 나와 마주친지도 모를 일이다.


저층에 살아도 좋은 점 (brunch.co.kr)

: 지난 가을 까치의 울음 소리가 담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까치의 설날은 오늘이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