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켜면 어린이집이 원아를 모을 수 없어 주간 노인요양시설로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리고 폐업하는 결혼식장을 장례식장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비아냥까지 들린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률이 처음으로 0.6명대로 추락했다. 전세계 초유의 낮은 출산률 기록을 가진 한국의 합계출산률이 또다시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이제 몇 년 안에 인구가 5,000만명 아래로 줄어들 것이다. 해외언론들도 한국의 인구 기현상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영국 BBC는 “한국이 50여년에 걸쳐 고속 발전하면서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야망을 가지고 일터로 진출했으나 아내나 어머니의 역할은 이에 비례하여 바뀌지 못한 것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한다.(1) 우리가 듣기에 좀 엉뚱한 진단이다. 그럼에도 이 점은 한국은행이 “경제 성장과 대도시 집중 과정에서 높아진 경쟁압력 때문에 고용∙주거∙양육의 불안을 증폭시켰다”고 분석한 결과와 궤를 같이 한다.(2) 즉 사회에서 과도한 경쟁이 남성육아를 저해하고 여성 경력단절을 불러오는 것이다.
지방소멸과 저출산의 상승 작용
한국의 저출산(가임여성 1인당 합계출산률 2.1명 미만)에 접어든 지 20년이 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소 폭이 가팔라졌는데 2022년에 0.78명이었는데 2023년 4분기에는 0.65명까지 낮아졌다. 2022년의 출산률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0.59명으로 현격히 낮으며 세종과 광주를 뺀 나머지 광역시의 합계출산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대도시일수록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한 경쟁압력과 여성 육아부담 가중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장기적 저출산은 젊은 인구 감소에서 비롯하여 학령인구, 유년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며 오늘날, 그리고 미래의 인구구조를 기형적(배부른 항아리형)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지식산업이 클러스터화 되면서 ‘좋은 일자리’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서 많이 생겨났다.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따라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옮겨 갔다. 젊은이들이 소도시에서 또는 지방에서 떠나는 동기는 지역 상공업이 상대적으로 후진화 되거나 위축되어 젊은 세대가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청년이 이탈되면 유년 및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이어서 교육 인프라가 축소(폐교 등) 되어 자녀를 가진 중장년층의 유입도 멈춘다. 지리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는 점차 기반시설이 사라지는 사막화가 나타난다. 교육 사막(Education Desert), 의료 사막(Medical Desert), 식료품 사막(Food Desert)으로… 사람 수가 적어지는데 서비스제공자라 하더라도 사명감으로만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노인들이 사망하면서 결국 지방소멸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매력 있는 일자리를 제공할 첨단 또는 문화산업이 인구가 줄어드는 곳에 들어서야 한다. 그 곳에 그런 기업이 생겨야 생산과 고용이 늘고, 소득과 소비가 늘면서, 지역의 매력이 생겨 외부로부터 고급 인구가 유입되고 다시 창조성이 발휘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인구가 늘고 소득이 커져야 교육∙의료∙문화 amenities가 갖추어진 정주기반도 만들어지게 된다.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
한국에서 인구의 수도권 집중은 근본적으로 좋은 기업과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농업국이던 한국이 공업화 하면서 농촌인구가 도시로, 중화학공업의 정체와 정보∙생명∙문화 산업의 약진에 따라 지방인구가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그 과정에서 기업∙혁신도시의 기능적 실패, 세종시로 수도 이전 실패도 한몫 하였다. 이런 와중에 작년에 정부가 발표한 ‘국가반도체산업단지’가 수도권 집중의 결정판으로 보여진다. 경기도 용인 남사읍에 710만㎥의 세계최대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반도체 공장 및 소재∙부품∙장비 업체는 물론 연구기관까지 유치한다. 이를 수도권에 두는 이유는 기존 유관업체가 인근에 있기도 하지만 고급인력을 구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언뜻 일리가 있어 보이나 한편으로는 재벌기업의 뜻을 그대로 들어준 것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경북 구미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를 유치하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도 수도권에 과밀화를 억제하는 ‘공장건축 총량제’가 적용되고 있으나 중앙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무력화되어 이들 기업이 쉽게 수도권에 진입하게 되었다. 구미는 산업화 단계에서 조성된 전자산업 단지였으나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쇠퇴하는 곳이다. 구미시는 10년간 용지 무상임대, 직원복지시설 공급 등을 내세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유치에 실패한 후 구미 지역사회가 스스로 패인을 살펴본 결과, 교통∙교육∙문화 측면에서 정주여건이 미흡하여 이들 산업에 종사할 고급 인력들이 수도권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3) 어쨌든 이러한 선택은 첨단 4차산업은 서울이 가까운 수도권에 몰리고, 좋은 일자리를 찾아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몰리고, 고급 인력은 비수도권 지방으로 오지 않는 양극화를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저출산 해소를 위해서 지역 균형 발전에도 힘써야
요즘 정부가 심각해진 저출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금년 4.10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과장된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없으나, 실제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이미 심각 단계를 넘어섰다. 최근 새로 임명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문제 극복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고 이런 노력과 병행해 미혼자가 결혼할 의향을 갖게 하고 출산, 육아 부담 등을 하나하나 개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4) 물론 수도권에도 좋은 일자리가 추가되어야 하겠지만, 그러한 일터가 비수도권 지방에 더 많이 생겨나도록 중앙정부가 조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저출산 해소에 더 효과적임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지자체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이 유인되고 정착될 수 있도록 정주여건을 제대로 갖추어 주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우수한 교육여건, 소비∙문화시설, 의료기관, 교통여건 등이 기업 유치의 진정한 인프라이다. 이제는 부디 제대로 된 국토균형발전과 저출산 해소 정책이 수립∙시행되기를 바란다.
-------------------------------------------------- (1) BBC News, Why South Korean women aren’t having babies, 2024. 2.27. (2) 한국은행, ‘초저출산 및 고령화사회: 극단적 인구구조의 원인,영향,대책’, 경제전망보고서, 2023.11. (3) 시사인, 구미시는 왜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실패했나, 2019.3.26. (4) 한겨레신문, ‘정부, 저출산 대책 전면 재검토…좋은 일자리가 가장 중요’, 2024. 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