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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사롭지 않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정책발표 러시

부동산 시평

by 하얀자작

요즘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큼직한 정책 방향들을 연이어 내어놓고 있다. 각종 특혜 부여를 부여하는 “신유형 장기임대주택” 도입과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LH가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신유형 장기임대주택 제도는, 이미 실패한 박근혜정부의 ‘뉴스테이’(2015년)를 보완하여 2024년8월에 내놓은 것으로 이름을 다르지만 ‘기업형 민간임대 주택’이라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의무임대기간을 20년으로 늘린 대신 추가 용적률 허용, 임대료 상한규제 완화, 세제 혜택 등의 특혜를 주는 것이 골자이다. 이런 움직임과 함께 영국 ICC와 M&G, 미국의 모건 스탠리와 KKR, 싱가포르 GIC 등이 한국 주택임대 시장에 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를 위해 여당 국회의원들이 응원군으로 입법 지원 및 지지를 보내고 있는 움직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소위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민간건설주체가 지방 도시에 지은 아파트로서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잔여 물량을 LH가 매입해 주겠다고 한다. 물론 기존 분양가격 이하로 사겠다는 것이지만 자금난을 겪는 건설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이명박정부가 2008년에 시행한 비슷한 조치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굳이 권력공백기에 중대 정책을 서둘러야 하나


문제는, 하필이면 왜 지금 이런 정책을 시행하려 하는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 중이며 이후 탄핵 기각·인용에 따라 이어질 다음 정부가 결정해야 마땅할 중요 사안들을 권력 공백기에 미리 관료들이 시행해 버리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통령이 유고 중이어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명분도 없는 자들이 말이다. 먼저 정책적 지원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중상류층 대상 민간 주도 임대주택사업은 다음 정권의 철학에 따라 추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악성 미분양 사안은, 민간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실패한 결과에 국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정리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경제철학적 문제와 연결된다. 물론 지방 소재 건설업체의 줄도산 방지와 고용 안정을 위한다지만, 이 사안이 국가경제 전체를 흔들 만큼 비중이 큰 일은 아닌 것 같다.


당장 책임질 일은 접어두고 저래도 될까


무안공항 항공기 충돌사고로 탑승자 179명이 사망한 사고와 관련하여 국토교통부 고위관료가 책임을 지는 모습조차 아직은 볼 수 없다. 사고의 원인은 조류 충돌이지만 사상의 원인은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로 만든 희한한 구조물이었다. 분명 인재인 데도 그들은 일련의 탄핵에 이은 정쟁과 빅 뉴스 뒤에 숨어 지내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특정 업계에 유리한 혜택을 조성해주는 일에는 용감하게 나서고 있으니 기가 찰 지경이다.
한편 재건축 상가 소유자의 아파트 분양에 관한 국토부의 표준정관이나 지자체 하달 지침이 잘못되어 이를 따랐던 대다수 재건축사업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2024년8월 관련 판례가 확정되어 적지 않은 재건축조합들이 사업에 큰 지장을 겪으며 앞으로 그 해결책도 난망하다. 이처럼 자기 부처의 행정 소홀로 빚어진 혼란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수습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국토부는 지자체에 문제를 떠넘긴 채 딴전을 피우고 있다.

요즘 국토부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관련 기업들이나 자본 세력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반면, 스스로 책임지거나 해결할 일들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며 수비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해야 하나? 한 쪽은 견리망의(見利忘義), 다른 쪽은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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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올린 후인 2025.02.25. 국토교통부가 그린벨트 해제총량 규제를 적용 받지 않는 국가·지역전략사업지 15곳을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산업단지와 물류단지 조성을 통해 첨단사업을 육성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럼에도 그린벨트 해제 문제는 환경이나 사회적 가치와 상충되는 것이므로 이 또한 과도기 정부가 함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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