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택조합
많은 사람이 지역주택조합 가입과 아파트 분양을 헷갈린다. 둘 다 새 아파트를 얻는 방법이지만, 과정과 위험이 전혀 다르다. 이걸 모르면 자칫 큰코다칠 수 있다.
지역주택조합은 주로 무주택자들이 모여 직접 토지를 사서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시행사 이윤을 줄여 시세보다 싸게 아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현실이다. 예를 들어, 지역주택조합 가입 후 10년 넘게 기다렸는데도 아파트는커녕 투자금조차 못 돌려받는 경우도 흔하다. 토지 확보가 어려워 사업이 계속 지연되거나, 추가 분담금이 억 단위로 늘어나는 일이 적지 않다. "조금만 기다리면 새 아파트를 싸게 산다"는 말에 속아 수억 원의 돈이 묶이고 마음고생만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업이 무산되면 길고 복잡한 소송전으로 이어져 투자금을 온전히 돌려받기 어렵다.
한편, 일반 아파트 분양은 일반적으로 건설사가 모든 걸 책임지고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는 방식이다. 분양가가 조합 아파트보다 비쌀 수 있지만,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사업 진행이 훨씬 안정적이다. 모델하우스에서 직접 구조를 확인하고, 확정된 분양가와 입주 예정일도 알 수 있다. 청약에 당첨되면 계약금, 중도금, 잔금 순으로 돈을 내고 약속된 날짜에 입주한다. 예측 불가능한 추가 비용이나 사업 무산 걱정 없이 안전하게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아무리 아파트 일반분양에 당첨이 “하늘에 별 따기”인 시절이더라도, 싸다는 말만 듣고 지역주택조합에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오히려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두 방식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본인의 상황에 맞는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한 문제로 민원이 크게 발생하자, 이재명 대통령도 선거 유세 과정과 타운홀미팅에서 이에 대한 점검과 대책, 제도 개선을 언급¹했다.
여전히 살아 있는 개발시대의 유물, 지역주택조합 제도
먼저 ‘주택조합’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무주택 서민들이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이다. 1970~80년대 주택가격 급등과 청약 경쟁 심화, 개발지역 편중 등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주택을 마련하기 힘든 계층을 위해, 동일 지역사회 내 또는 직장 내 내집 마련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해 공동으로 토지 매입과 주택 건립에 나서게 된 것이 출발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지역주택조합’은 1977년 ‘주택조합 제도’의 일환으로 ‘직장주택조합’과 함께 처음 도입되었다. 이 때 지역조합주택은 주로 재개발구역 주민들이 구성하여 활용했는데, 요즘의 ‘재개발조합’과 유사한 것이다.
1987년 (구)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면서 ‘동일 또는 인접 시·군의 무주택 주민’도 조합 설립이 가능하도록 자격과 지역 요건이 크게 완화되었다. 이 제도는, 청약통장 없이도 무주택자가 일정 요건만 갖추면 조합 가입·주택 분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주택 서민 수요층에게 큰 관심을 받아왔다.
이에 비해 직장주택조합은 1970~80년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종업원 복지 차원에서 자금 및 용지 지원에 힘입어 활성화된 적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들의 복지지원 방식이 바뀌고, 수도권에 대규모 신도시 건설에 따라 직장 단위의 주택공급 필요성이 낮아졌다. 또한 법적으로 토지확보 등 사업 인허가 기준이 지역주택조합과 동일해 조합 설립 및 사업 진행이 까다로워져 요즘은 거의 사례를 찾기도 힘들 정도로 쇠퇴했다.
왜 사람들이나 건설사는 지역주택조합에 매력을 느낄까?
지역주택조합 방식의 주택건설 사업이 꾸준히 유지되는 배경에는 사업참여자들이 꽤나 달콤한 각자의 이득을 기대하는 기제가 있다.
주택 수요자들은 바늘구멍 같은 청약 경쟁을 벗어나 청약통장 없이도 인근 일반분양가 대비 10~20% 저렴하게 주택을 마련하는 것에 이끌린다. 물론 종국적으로 이런 꿈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지는 애매하다.
한편 건설사는 업무대행사를 통해(또는 함께) 이런 사업을 수주함으로써 치열한 수주 경쟁을 피할 수 있으며, 자체 개발사업에서 발생할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담 대신 조합이 모은 자금으로 마련한 부지에서 건설을 진행하므로 자금 조달 등 금융 리스크가 훨씬 작다. 게다가 건설 주택의 70~80%를 조합원들이 소화하므로 미분양 부담이 가볍다.
지역주택조합의 사업진행 절차
지역주택조합 방식의 개발은 서울시 안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대다수가 서울에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들 지역에 적당한 가격의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충분한 점, 일반분양 아파트의 치열한 청약경쟁 문턱을 낮추는 제도 고유의 특성, 그리고 건설사의 사업 및 재무 리스크를 회피하고자 하는 유인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조합과는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택조합 가입과 일반 아파트 분양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오해나 착각은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생긴다. 우선 모두 “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 정체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신축주택 수요자끼리 모이게 되므로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공동체 참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지역주택조합이 일반분양가보다 낮게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점을 내세울 때 사람들이 재건축이나 재개발과 비슷한 기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겉으로 모두 다 새 아파트를 얻는 방법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이 사업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지역주택조합은 무주택자들이 모여 직접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이다. 시행사의 마진이나 여러 부대 비용이 줄어드니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장점을 뒤집어 보면 이 방식은 조합원들이 사업의 모든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토지 확보가 지연되거나, 예상치 못한 추가 분담금이 발생하거나, 심지어 사업 자체가 무산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처음 제시된 분양가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몇 년간 돈이 묶이고, 결국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추가 분담금을 더 내거나, 최악의 경우 투자금을 모두 날리는 사례도 있다.
재건축, 재개발조합은 사업구역 내 현 소유자들이 주체가 되어 추진하는 사업이어서, 사업 초기에 이미 토지가 확보되어 있어 사업의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게다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명확한 절차와 사업주체를 가지며, 조합은 공법인으로서 행정주체의 지위를 부여받아 사업을 추진한다. 이에 비해 지역주택조합은 주택법의 적용을 받으며, 조합원이 사업 전반에 대한 공동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게다가 토지 확보의 불확실성과 자금 관리의 투명성 문제 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험이 비교적 크다고 볼 수 있다.
지역주택조합 선택에 앞서 고려할 점
기성(중고) 아파트을 매수하여 빠른 시일내에 입주(또는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주택수요자는 아직 공사 중에 있거나 착공하지 않은 아파트를 선분양 받거나 입주할 권리(또는 구역내 노후주택)를 사게 된다. 특히 지역주택조합원이 되면 아파트 지을 땅도 확실히 마련하지 않은 단계에서 계약금 등을 납부해야 한다.
어느 경우이던 신축 아파트 선매수자는 가격 수준, 청약의 용이성, 입주 소요기간, 그리고 사업추진의 안전성 등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우선 가격 수준은 미래 입주시점의 가격을 알 수 없으니 현재 인근 지역에 신축한 유사 아파트 시세와 분양가격(조합의 경우 부담원가)을 비교하여 판단한다. 물론 토지비용(지역주택조합의 경우)나 건설비용, 기타 사업비가 달라지면서 주택수요자의 부담이 변동되는 점이 거슬린다.
서울 안이거나 서울 밖이라도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지역은 아파트 일반분양 청약경쟁이 끔찍할 정도로 심하다. 지방 대도시에서도 인기지역은 마찬가지이다. 과거와 달리 청약경쟁이 심해진 현상 뒤에는 정부 청약제도의 변화가 있다. 초창기에 추첨제 위주였던 청약 제도는 2007년 청약가점제 도입으로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17년 이후 인기 투기지역에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이뤄지며 시세보다 저렴한 '로또 청약'이 등장했다. 이로 인해 청약 기회는 높은 가점을 가진 이들에게 더 유리해졌고, 젊은 층이나 1인 가구 등 저가점자들은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졌다. 결과적으로 제도 변화가 '로또 청약' 현상을 심화시켜 일반분양 아파트 청약의 문턱을 높인 것이다. 즉 지역주택조합이나 재건축ㆍ재개발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입지에서 일반 수요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신축주택을 구할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혀버린 것이다.
일반분양 아파트는 분양받을 때 가격이나 입주시기가 확정적이어서 자금 마련이나 이주계획을 수립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에 비해 지역주택조합이나 재건축ㆍ재개발의 경우 사업 인허가 문제, 조합원 간 또는 시공사와의 분쟁 등으로 사업 기간이 길어질 수 있으며, 이는 조합원의 금전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업부지 확보에 소요되는 기간 때문에 입주 소요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이과정에서 사업비(토지비, 차입금 이자 등)가 불어날 수 있다.
사업을 무난히 추진하여 수분양자(또는 조합원)이 성공적으로 신축 아파트에 입주할 확률을 볼 때, 일반분양 아파트의 경우 100%에 가까울 정도로 높다. 이미 공개 분양할 정도로 인허가, 토지 확보 및 공사진척도 등을 관계 당국으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재건축ㆍ재개발의 경우에 조합원간 분쟁, 시공사 문제 등으로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하지만 대부분 사업이 늦게라도 사업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초기 사업계획승인 이전에는 토지 확보문제, 사업 착수 이후에 토지 매입 및 공사비 증가로 인한 추가분담금 과대, 부도덕한 조합 간부와 업무대행사의 불투명한 조합 운영 때문에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럴 경우 모든 부담은 조합원들이 떠안아야 한다.
주택 수요자의 대응 자세
지역주택조합 가입을 고려하는 주택 수요자들은 잠재적 피해를 예방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철저한 정보 확인과 계약 내용 검토, 그리고 전문가 상담의 중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사업 추진 정보 꼼꼼히 확인
조합 추진 위원회나 조합의 광고, 설명만 믿고 섣불리 가입해서는 안 된다.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는 반드시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문의하여 사업 부지의 용도가 아파트 건설에 적합한지, 그리고 조합 설립 인가나 주택 건설 사업 계획 승인 등 사업 추진 진행 정도를 확인해야 한다. 민원24,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 같은 공공 웹사이트를 활용해 직접 부지 정보를 조회할 수도 있다. 특히, 주택 건설 사업 계획 승인 전에 제시되는 아파트 도면이나 입주 시기는 확정된 내용이 아니므로 이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비용 및 계약 조건 철저히 검토
조합 측이 제시하는 비용보다 실제 납부해야 하는 금액이 많을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가입 계약서와 조합 규약을 통해 업무추진비 및 분담금에 대한 환급 조건 등 조합원에게 불리한 조항은 없는지 반드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납부하는 자금(분담금, 업무대행비, 신청금)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입금할 계좌의 ‘예금주가 신탁사인지, 지정 계좌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반 계좌는 금융사고 위험이 있다.
사업의 위험성 인지 및 대비
토지 확보 실패, 사업 계획 승인 실패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충분히 감안하여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조합원이 사업 진행 전반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구조이며, 한번 가입하면 임의 탈퇴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음은 지역주택조합 가입을 고려하는 주택 수요자를 위한 체크리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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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이낸셜뉴스, ‘갑자기 674억을 더 내라니…’, 2025.06.11. & 뉴스1, ‘칠십 평생 첫 새집 사나했는데…’, 2023.11.09. & The Fact, ‘이 대통령도문제 삼은 지역주택조합…’, 202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