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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재건축 – 다 때가 있는 거야

재개발, 재건축

by 하얀자작

한 때 거의 모든 언론에서 재건축, 재개발 뉴스로 도배를 했다. 서울 은평구 모 재개발구역에서는 이주를 시작했지만 학교 부지 해제가 되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대출보증 승인이 나오지 않자 사업이 지연되면서 조합원들이 조합장과 임원 전원의 해임 총회를 추진하는 등 갈등이 심화되었다. 과천 모 재건축구역에서는 시공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발단이 되어 조합원 간 찬반 갈등이 벌어져 일부 조합원이 조합장 해임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최근 2~3년 동안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사업성이 나빠져 조합원분담금이 크게 늘면서 사업이 중단 또는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모두 ‘도시정비사업’에 속한다. 도시정비사업은 낡은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 기능을 되살리려는 공통된 목표를 가졌지만, 재개발과 재건축은 그 본질적인 출발점에서부터 서로 간에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둘은 모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약칭, 도시정비법)에 근거를 두고 진행되는데,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핵심적인 차이점


재개발과 재건축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은 바로 '정비기반시설'의 상태다. 이것은 기존기반시설이 '열악'한지 아니면 '양호'한지에 따라 구분된다. 이로부터 사업의 성격, 규제, 조합원 자격, 현금청산 방식 등 뒤따르는 모든 사항의 차이점들이 비롯된다.
재개발사업: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거나 도시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이다. 여기서 핵심은 '열악'이라는 키워드다. 도로, 상하수도, 공원 등 공공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거나 제 기능을 못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재개발사업은 단순한 주택 개량을 넘어 도시계획 차원에서 지역 전체의 공공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는 성격을 띠며, 강한 ‘공공성’을 내포한다.
재건축사업: '정비기반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건축물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핵심 키워드는 '양호'로, 공공 인프라는 문제가 없고 개별 건축물 자체의 노후화가 핵심 문제이다. 따라서 재건축은 조합원들의 사적 재산 가치를 높이려는 ‘민간 개발사업’의 성격이 강하다.


길고 복잡한 사업 추진 과정


재개발,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의 추진 과정은 길고 복잡하며, 각 단계마다 까다로운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 독자들께서는 단계별 동의요건, 승인인가 절차에 관해서 별도로 익히는 것이 좋다.
사업추진 과정을 한 눈에 보면 다음 그림에서의 단계들을 거친다. 어느 정비구역 내 주민들이 재개발이나 재건축에 본격 진입한 것을 느끼는 때는 정비구역 지정 고시 때부터이다. 이 때부터 동네 진입로나 아파트단지 출입구에 여러 건설사들의 ‘축하 현수막’이 내걸린다.
‘도시ㆍ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이 수립 고시된 다음에 각 구역별로, 재개발의 경우 기본계획을 세울 때의 노후도 요건을 유지한 채로 사업을 속행할 수 있다. 그러나 재건축의 경우 정비구역 지정 전까지 ‘안전진단’¹을 통과해야만 절차를 속행할 수 있었다. 과거에 안전진단을 통과하는 것이 꽤 까다롭기도 했고 지방정부가 이 절차를 재건축사업의 선후와 물량 조절을 위한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2025.06.04.자로 그 명칭이 ‘재건축진단’으로 바뀌고, 그 통과 기한도 ‘사업시행계획 인가 전’까지로 완화되었다. 정부는 이로써 재건축 소요기간이 3년 정도 단축되리라 기대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수립하는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 수립’에서 출발하여 준공ㆍ입주까지 9~10 단계를 밟아야 하는데, 단계마다 주민 동의와 행정기관의 인허가가 필수적이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준공ㆍ입주까지 당사자인 소유자 등 조합원들이 거치는 법적 절차만 보면 언뜻 4~5년 내에 끝날 수 있을 것 같으나, 현실에서는 어림잡아 10~14년이 소요된다². 그러니 사업기간, 즉 ‘시간'이 최대 리스크이다. 미리 기대하던 사업기간과 실제 소요기간 사이의 괴리는 단순한 지연을 넘어, 사업의 리스크ㆍ금융 비용ㆍ관계자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작용한다. 종전자산 평가액, 분담금 등을 둘러싼 조합원 간의 내부 갈등 및 소송, 건축·교통 심의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 그리고 부동산 경기 침체, 공사비 급등, 금리 인상 등 외부 시장 환경 변화가 생긴다. 이는 고스란히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전가되어 내부 갈등을 촉발하고, 심지어 사업을 좌초시킬 수도 있다.


생각보다 많이 드는 금융비용


도시정비사업은 수천억에서 조 단위를 넘나드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금융 집약적 프로젝트이다. 총사업비의 약 75%를 공사비가 차지하는데, 그 자금은 대부분 일반분양 수입을 담보로 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과 조합원 이주비 대출 등으로 조달된다. 이 경우 이자비용은 사업 기간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동적 리스크이다. 따라서 금리 상승 국면에 사업기간이 지연되면 조합원 분담금을 예상 밖으로 크게 증가시켜 내부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정부의 규제(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또한 조합원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투기과열지구³ 내 재개발, 재건축사업장의 일반분양을 대상으로 하는 ‘분양가상한제’는 일반분양 수익을 직접적으로 감소시켜 그에 상응하는 조합원 분담금을 증가시킨다. 게다가 모든 재건축사업에 적용되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개발이익의 최대 50%를 ‘재건축부담금’⁴으로 징수하여 투자 기대수익률을 직접적으로 깎아내리는 위협적인 재무적 리스크로써 작용한다.


사업성을 고려하여 보유하거나 투자해야


부동산은 일반적으로 보유기간 동안 사용 또는 수익의 기회를 누리면서도 가격 변동에 따른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자산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재개발이나 재건축 물건은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뿐, 노후 주택이어서 살기 불편하거나 투자액에 걸맞은 임대수익을 거두기 어렵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 참여에 앞서, 투하 자금이 많고 장기간 자금이 묶이는 고유의 특성을 감안해 몇 가지 체크포인트를 짚어보자.
우선 재개발·재건축 투자는 주택시장이 침체를 벗어나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때 진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회복기에는 일반분양가를 높게 받을 가능성이 커지며 새로 지은 아파트의 시세도 높게 형성될 수 있다. 즉 재건축사업의 사업성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 조합원(투자자)의 부담이 낮아지며 투자이익은 높아질 수 있다.
사업 추진 속도가 빠른 곳을 골라야 한다. 그래야 금융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사업의 불확실성도 낮다. 사업이 느리게 진행되는 이면에는 조합 내부의 심각한 분쟁이 있을 수도 있고 시공사와의 갈등이 있을 수도 있다. 외부적으로 인허가, 환경ㆍ매장유산 등 관련 규제로 인해 불가항력적인 지연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 중 어느 것이건 이자비용을 크게 높이게 된다.
입지의 우수성은 장기적 투자 성과의 핵심이다. 발전 가능성이 높고 교통,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 미래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지역의 사업장을 선택하는 것이 수익성과 안정성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 기왕이면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가장 입지가 우수한 물건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큰 돈이 장기간 묶이는 사업 특성을 감안하여, 반드시 자기 재정 능력에 맞춰 무리 없이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도중에 예상치 못한 비용 증가나 금융 환경 변화에도 대응할 자금 여유와 리스크 관리 방안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미 그 곳에 정이 깊게 들었거나 부동산을 취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비사업 참여 여부에 관해 객관적인 검토를 해볼 것을 권장한다. 특히 새롭게 재개발, 재건축 투자를 모색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으며, 오래 보유ㆍ거주하여 처분에 따른 세금 부담이 낮은 사람도 한 번쯤 고려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결국 시장 회복기 초입에, 사업 속도가 빠르며, 자신의 자금 범위 내에서 가장 우수한 입지에 투자하는 것이 재개발·재건축 투자 성공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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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5.06.04.에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에 따라 “재건축진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2) 서울경제, ‘서울 재개발ㆍ재건축, 준공까지 10년’, 2012.09.06. & TBS뉴스, ‘재건축·재개발 구역지정 후 평균 14년 2개월 소요’, 2023.12.23.
(3) 2025년8월 현재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및 용산구이다.
(4) 재건축사업 본연의 손실을 메꾸는 (조합원)분담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이 재건축부담금은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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