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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Feb 10. 2020

그 차와 닮은 일상에 대하여.

'새로운 키보드를 들이는게 어때? 나는 그렇게 시작했는데.'


얼마 전, 취미로 글을 쓰는 삶에 대해서 오랜 친구와 이야기 할 일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만났지만 내내 장난만 치고 농담만 했지 진짜 중요할때는 둘이있는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광대'로 소문난 케릭터들끼리의 만남이었으니까. 말은 안했지만 서로 조심하는게 많은 사이였다. 

뻔한 안부를 묻다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요즘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그에게 고백아닌 고백을 했을 때 '나도' 라는 대답을 듣는순간 내가 그를 알아왔던 15년이라는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글 보다는 영화가, 수수함보다는 화려함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장르가 어떻고,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나는 그를 다시보았다.


신기함과 반가움으로 꽤 긴 대화를 나눈 끝에 마치 비법공개 하듯 이야기한 나의 방법이었다.

'글을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키보드를 들이는 것.'


매일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들은 크건 작건 일상을 바꾼다.

한 달에 한 두번 차는 시계보다 매일 입는 검정 반팔티를 더 꼼꼼하게 고르는 이유이며, 아벤타도르보다 쏘나타가 나의 주된 관심사인 이유이다. 알맞은 높이의 모니터와 과하다 싶을만큼 커다란 스탠드는 적당히 경쾌한 소리를 내는 기계식 키보드와 만나 나를 더 자주, 더 오래 책상앞에 앉게 했다. 30만원어치 투자의 결과가 이정도인데, 자동차라면 어떨까. 스타렉스 사기싫어서 산 카니발 덕분에 가족들과의 여행이 늘고, 쏘나타 사러갔다가 얼결에 산 그랜져 덕분에 매사에 여유가 늘며, 세금 싸서 산 코란도 스포츠 덕분에 주말마다 캠핑을 나가는 사람들을 생각보다 자주 본다. 


멀리갈 것 없이 내가 그랬다. 몇년 전 사업이 망하고 당장 내일이 막막했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건 운전 뿐이었다. 24개월 할부로 중고 마티즈 밴을 사서 퀵서비스로 생활비를 벌었다. 대전 복합터미널 수화물 전용 주차장에 가득 차있던 라보와 다마스 사이에 빡빡하게 주차를 하고 뜨거운 베지밀을 양손으로 쥐고있으면 괜히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고 까만 차 탈때는 몰랐던 치열함이 있었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났었다. 


차곡차곡 노력해서 몇년만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요즘의 나는, 콜로라도 같은 픽업트럭이 갖고싶다. 

집앞에 아무렇게나 던져놓듯 주차를 하고, 마당에서 개가 뛰어노는 삶에 대한 갈망이 날마다 점점 커져간다.

4륜에 휘발유니까 바닷가니 산이니, 여름이건 겨울이건 주말내내 전국 아무데나 틀어박혀 있기에 좋겠다. 박스 여러개 실을때마다 테트리스 안해도 될거고, DPF니 배출가스니 신경안쓰고 오일만 갈면서 타기에도 좋겠다. 정확하게 말하면, 콜로라도같은 픽업트럭이 잘 어울리는 일상을 살고싶은 거다. 여유롭게. 상상만해도 좋겠다.


돈버는차는 돈 많이 벌고, 고급스러운 차는 여유롭고, 실용적인 차는 경쾌하기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그 차를 닮은 일상을 살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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