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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커피 May 24. 2023

야, 너두? 나두!

소심한 교사의 뒷담화

끝이 안보이던 코로나 시국이 이제 끝을 보이고 코로나로 잊혀졌던 일상들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각종 체험학습, 수학여행, 외부초청강사 등의 활동들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대체되던 여러 연수들과 회의도 슬금슬금 부활하고 있다.


아. 그 때의 괴롭던 기억들도 모조리 깨어났다.


온라인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꼭 기어이 예전의 집합 방식을 택한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나같은 일개 조무라기 교사가 아닌 결정권이 있는 저 위의 선택일 듯.


작지 않은 규모의 우리 학교는 전체 교사의 수만도 50여명이다. 항상 <전교직원 협회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열리는 회의지만 정작 모이는 건 <교직원>이 아닌 <교사>다. 가끔 행정실장이 참여하는 것만 본 듯. 그리고 내년 예산을 짤 때 안내하기 위해서 행정실 직원이 일년에 한차례 정도 예산 편성 관련 연수를 하는 정도? 그렇다면 그냥 <교무회의> 또는 <교사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좀 바꾸면 안될까?


여튼.


교실도 부족한 우리학교는 교사들이 모여서 회의할 수 있는 회의실도 따로 없다. 교사휴게실? 그런 건 꿈도 못꾼다. 체육복 갈아입을 공간이 없어서 화장실에서 갈아입는다. 아, 학년 연구실 귀퉁이에 커튼을 쳐 뒀더라! 그 용도가 옷갈아입으라는 공간이라던데 지금은 복사용지를 잘 보관해두고 있다. 복사용지를 어디 둘데가 있어야 말이지. 교사 개인 사물함도 하나 부족하다. 그런데 더 비극인 건 하나 더 들일 공간도 없다는 거다.


그럼 도대체 회의는 어디서 하느냐고?


빈 교실에서. 과학실, 또는 시청각실 등등에서 한다.


학교 일을 하다보면 두 학년, 또는 부서별 협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함께 자료를 만든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때도 있다. 드라마에서 보던 근사한 회의실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교사들이 학생의자를 들고와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거나,

일반 교실에서 학생용 책걸상에 앉아 몸을 웅크린 채 회의가 진행된다거나,

개인 업무를 뒤로하고 우리 교실을 정리해서 회의실로 탈바꿈 해야 한다거나,

방과후 수업 시간을 피해 회의시간을 잡아야 한다거나,

작은 테이블에 6명은 마음 불편하게 의자에 6명은 몸 불편하게 서서 회의에 참석하거나,

자료를 보관할 데가 없어 온 연구실을 전전한다거나,


최소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의 전체회의는 과학실에서 열렸다. 의자가 모자라 옆의 빈 교실에서 학생의자를 가져오거나 서있거나 준비하는 시간이 분주했다.


주로 전체회의에서는 큰 행사에 대한 업무 분장이나 전달 연수들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최근에 일어난 회의는 참으로 기이했다. 


이례적으로 교장선생님이 가장 긴 시간 회의를 주도했다. 주로 교장선생님은 회의 마지막에 교장단 회의에서 나온 주요 안건을 전달하거나 뭔가 이슈가 생겼을 때 그 이슈와 관련하여 간단한 소회를 밝히는 정도로 짧게 마무리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ㅋㅋㅋㅋㅋㅋㅋ)


운은 이렇게 떨어졌다.


"선생님들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요는,


각종 생활지도 관련해서 왜 지도를 하지 않는가. 더 좋은 방법에 있으면 이야기 해보라.


이것이었다.


띠용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생활지도 비책이라도 풀어놓아야 할 태세였다. 아니, 어느 교사가 생활지도를 안한단 말인가. 어느 교사가 복도에서 뛰라고, 욕하라고 지도한단 말인가. 이미 모든 방면의 생활지도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지금 이 자리에서 방안을 생각해보란다. 갑자기. 


그리고 자신의 시각으로 본 교육과정의 문제점,

교사 개개인의 품행 등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부정적인 것들만.

한달여동안 꾹꾹 참고 눌렀던 것들이 폭발하듯 했다.


아니, 그게 그렇게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담아뒀다 이렇게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할 정도라면,

그 당시에 그 자리에서 그 교사에게 직접 물어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왜 그 반 아이들은 그 시간에 뒤뜰에 있는지,

왜 그 반 선생님은 그 시간에 복도이 있었는지,

왜 그 반의 그 아이는 거기에 있었는지,


그 때 물어보면 좋지 않았을까.


나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절대 내 일이 아님에도 나 자신을 한번 더 철저하게 검열해본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는가. 나도 모르게 검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그 찰나, 짜증이 났다. 내가 그러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또다시 회고하며 나 스스로을 옥죄는지.


다그치듯 의견을 묻는 그 질문은 더이상 질문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기분이 상한 채로 회의가 끝나고 가져온 의자를 나르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며칠 뒤.


교장선생님이 재차 우리 목을 조여온다.


실내에서 뛰는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생활지도의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하란다.


어쩌라고.


이미 다 하고 있는데 여기서 더 뭘 어떻게.


뛰지말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한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간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면 제지한다. 제지하는 나를 가뿐히 넘어서 다시 뛰어간다. 나보고 잠깐만 잠깐만 하며 비키라는 손짓도 당해봤다 ㅋㅋ 앞에 뛰어가버린 친구를 가리키며 잡아야한다고 비키란다 ㅋㅋ


뛰는 아이를 세워본다. 안 뛰었다고 딱 잡아뗀다.


점심식사 후,  바로 교실로 올려보내면 너무 뛰어가니 함께 이동하란다. 아이들 밥받고 잘 앉는거 보고 내가 밥받아 앉으려면 벌써 다 먹은 아이들이 있다. 오늘도 세숟가락 먹고 일어나서 아이들 데리고 왔다. 점심시간에 밥을 끝까지 먹는건 이미 포기했다. 겨우 식판에 밥을 받아 앉으면 난리치는 어린이를 제지하러 또 2-3번 일어난다. 세숟가락 먹는 그 밥도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냥 먹지 말까 생각중이다.


옆반 선생님은 급식 받아서 앉자마자 그반의 아이 몇명이 선생님에게로 와서

"쌤, 1초만에 먹어요. 알았죠? 그래야 빨리 가서 많이 노니까!"

라고 반 협박을 날렸다고 한다.


실내에서 뛰어서 생기는 사고의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 각종 자료를 검색 해본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에피소드를 털어내어 최대한 실감나게 썰도 풀어본다. 그 순간 아이들의 표정은 "정말? 너무 무서워요. 절대 뛰지 말아야겠어요."다. 그러나 곧 "하지만 저는 뛰지 않기 때문에 괜찮아요." 으로 바뀐다.


오늘도 알림장에도 써본다. "실내에서 뛰지 않기"

가정과의 연계지도라는 희망적인 꿈을 버리지 못했나보다.


물론. 우리 교사들은 다 알고 있다.

내일 당장 아이들이 뛰지 않게 할 방법.


뛰는 아이들을 쉬는 시간동안 세워놓으면 된다. 길어야 3일? 일주일도 안걸릴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복도를 안전하게 걸어다니는 일.


근데 왜 안하냐고?


아동학대니까.


실내에서 뛰지 않는 그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서 내 교직을 걸어야 한다. 내 교직의 무게가 고작 그것밖에 안되는 것이다.


뛰지 말라고 소리쳐서도 안된다. 마음 약한 우리 아이가 겁먹으니까.
뛰어가는 아이를 붙잡아도 안된다. 신체접촉은 불쾌하니까.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줘서도 안된다. 우리 아이가 무서워하니까.
뛰면 안된다고 길게 설명해도 안된다. 우리 아이의 소중한 쉬는 시간이 날아가니까.
딱딱한 표정으로 이야기해도 안된다. 우리 아이가 기분나쁘니까.


그렇다. 지금의 현실은.


교장선생님께서도 모두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우리를 재촉하는 것은


우리 교사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아이들이 마음 상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오롯이 즐기며, 기분좋게 뛰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것일까.


아니면 학생 안전사고로 날아가는 교직의 수가, 아동학대로 날아가는 교직의 수보다 많아서라고 생각하셔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책임은 교사 개인이 짊어지기 때문일까.


왜일까. 


그래서 오늘도 생활지도 대책을 강구하라는 교장선생님 말씀에 우리끼리 눈빛을 교환한다.


야, 너두?

나두!


그 짧은 찰나에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동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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