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고 나니 제목에 속은 듯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따지지 말고 10년은 해 보고 결정해. 10년은 해 봐야 재능을 알아. 재능이 있냐는 질문은 그때 하도록 해.
버섯볶음을 밀어주며 언니가 수줍게 건넨 "잘 먹어야 할 것 같아서"라는 말은 "잘 살아야 할 것 같아서"라는 의미라는 것을 안다. 입맛이 없다는 핑계로 쉽게 가스렌인지에 라면 물을 올리다가도 언니 생각이 나서, 파르르 끓던 물을 그대로 두고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 언니, 잘 지내요? 언니는 잘 살아야 해요.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까지가 최선이야.
꿈을 이루려면 서울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은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웠다.
"고마, 집으로 온나."
퇴원하기 전날, 엄마는 병원에서 나가면 핫팬츠와 비키니를 입을 거라고 말했다.
"하다 말고, 하다 말고, 그런 거지."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그래. 하다 말고, 하다 말고. 때로는 '말고'의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하다'로 넘어가길 바라는 마음.
천재가 아닌 평범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은 얼마나 분명한 경지인가.
이제는 아무도 나에게 꿈을 물어보지 않는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부터 사라진 질문이다. 꿈을 묻는 일이 왜 이렇게 귀한 일이 됐을까.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살림은,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리는 것처럼 지겹게 반복된다. 누군가 씻고 난 자리의 물기를 닦고, 벗은 옷을 빨아서 개고, 철마다 필요한 옷을 사고, 누군가의 일상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 행해지는 그림자 같은 노동들.
나는 이제 그냥 보통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좋은, 재밌는, 현명한. 모든 좋은 수식어를 뗀 그냥 엄마. 딱 보통의 엄마. '좋은 엄마 되기'라는 두껍고 질긴 강박을 집어던지고 싶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로 살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건강'이나 '행복'이란 단어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지루하기까지 했지만, 큰 소리로 내지르니 꼭 처음 말해 보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건강과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내일이 오늘보다 좀 더 지독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애매하든 모호하든, 내가 원하는 풍경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든 책이었다.
나는 특출 난 재능이 없는 사람이기에 <애매한 재능>이라는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마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획득한 기분이었다.
궁금했다.
작가는 <애매한 재능>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이 책을 읽은 소감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로 대신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방문객' 中-
(이 시는 드라마 <이번생은 처음이라>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다.)
사람을 만난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토록 멋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그렇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일생이 함께 나에게 오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랬다.
이 책 속의 활자들은 살아 움직여 나에게로 왔다.
작가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얼굴도 모르는 작가의 손을 나 혼자 상상하며 꼭 잡아보기도 했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마음이 먹먹해져 다음 페이지로 넘기기가 힘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동시대를 살아온 나였기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글자 한 글자, 한 장, 한 장속에 담긴 삶들이 차곡차곡 모여 수미 작가를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단단한 발받침을 딛고 일어나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백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살아온 것들 중에 나를 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가볼 것인지.
아니, 앞으로 가고 있는지.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애매한 재능>이라고 했지만
이 정도면 절대 <애매한 재능>이라고 할 수 없겠다.
수미 작가의 다른 책도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 보고 싶어 졌으니까.
++ 덧붙이기 ))
아,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좋았던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역들이 책에 등장하는 것이었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여러 글들을 보면 서울의 지명들이 많이 나온다.
"거긴 너무 멀지 않아요?"
"지하철 0호선으로 가면 있어요."
"거기 맛집 다 알죠."
하지만 나는 서울의 지리를 잘 모르는 탓에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
나 혼자 보는 텔레비전이지만 뭔가 소외된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가포고, 사파동, 사격장, 창원대.. 너무 익숙한 이름들이 책을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주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책 표지를 가만히 한참을 쓰다듬었다.
이 지역에서 같은 세월을 살아온 친구에게 동지애랄까. 그런 게 생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