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주 Oct 12. 2023

엄마의 명절은 이제 시즌 2

80대 엄마와 50대 딸의 역할 바꾸기

55년 만에 엄마의 추석이 가뿐해졌다. 이제 41kg에 불과한 엄마의 몸무게는 예전 같은 차례상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올해 초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 아빠는 앞으로 차례도 제사도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잘 생각하셨어요, 그만큼 하셨으면 정말 충분히 도리를 다 하셨어요. 이제 엄마 아빠도 90세가 가까워지니 조상님들도 헤아려주실 거예요' 하며 환영했었다. 그러나, 관성은 역시나 강한 것일까? 엄마가 운동을 위해 동네 산책을 하실 정도가 되었고, 때 마침 추석 명절도 돌아오니 마음이 들썩들썩하신 것 같았다. 아직은 자리보전 하고 누워있는 것이 아니니 뭐라도 만들어야 명절을 쇠지 않겠니? 하시면서 두 분이 동네 마트에서 조금씩 조금씩 제수거리를 사 오시는 눈치였다. 엄마는 비틀비틀, 아빠는 지팡이 짚고 기우뚱하면서. 그래도 이런 수고가 두 분에게는 잠시의 활력이라도 된다면 다행이다 싶어서 일단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가 차례나 제사 준비에서 쉽게 물러나지 못하시는 건 어떤 심정일까? 시집온 지 2년 만에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맏며느리인 엄마는 집안 행사를 주관하는 임무를 떠맡았다. 아빠를 낳아주신 할머니는 6.25 무렵에 돌아가셨고, 그 자리를 채우신 새 할머니는 전처소생인 큰 딸(아빠의 큰 누나)보다 불과 네 살 많은 나이였다. 가난한 집의 처녀가 나이 많은 남자의 재취 자리로 들어가는, 당시엔 흔한 이야기라고 했다. 아무튼 엄마는 새댁임에도 불구하고 새 할머니 대신 집안 대소사를 돌봐야 했고, 새 할머니는 본인 소생인 두 아들을 서울로 올려보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엄마에게 부탁하였다. 어린 우리들을 키우면서 도련님들 도시락까지 몇 개씩 싸야 했으니 엄마의 아침은 얼마나 분주했을까. 아파트 둘레길을 산책하던 중 인근 초등학교가 보이자 엄마는 그 시절 생각이 나셨나 보다. 그래도 내게 맡겨진 일이라 생각하고 네 아빠한텐 불평 한 마디 안 했지, 내 가족이니 내가 감당해야지 하는 마음이었어. 그 시절의 엄마가 안쓰러워 나는 들리지 않게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러 그 많은 도련님들도 아가씨들도 가정을 이루었고, 자신의 자녀들까지 결혼을 시킨 후에는 각자의 집에서 명절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되었어도 엄마아빠는 도무지 차례상의 무게를 줄일 줄 몰랐었다. "내 힘이 닿는 날까지는 하던 만큼 해드리고 싶구나".


같은 동네에서 처음 맞이하는 이번 추석, 나는 미리 시가에 올라가서 차례 준비를 해야 했기에 엄마에게 큰 도움을 드리기가 어려웠다. 사실 두 분이 어느 정도까지 감당하실 수 있을까 지켜보자는 속마음도 있었다. 양반이 어떻고, 몇 대 손이 어떻고 하던 집들도 일 할 사람(며느리)이 없으니 제사도 없어지더라는 인터넷 속 명절 준비 논쟁을 많이 봐서였을지도 모른다. 일을 해야 할 엄마가 저리 기력이 없으시니 이참에 진짜로 차례를 접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차례상에 술잔을 올려야 하는 아빠는 무릎이 아파서 절을 하실 수 없는 상태이셨다. 과연 어찌 될 것인가?


이번 추석 준비의 끝은 막내 손자가 좋아하는 무화과 한 바구니


추석 당일 시가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친정 부모님께 가는 길. 예년처럼 뉴스에 나오는 고속도로 하행선의 무리 속에서 네다섯 시간씩 차 안에 갇혀 있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친정에 가서 저녁 먹을 준비를 했다. 냉장고며 뒷 베란다를 스캔해 보니 뭐가 별로 없었다. 동그랑땡도, 종류별로 준비하던 생선찜도, 3색 나물도, 쇠고기 편육도 없었다. 수육 몇 덩이, 동태 전, 두부 전 그리고 뭇국. 거기에 내가 시가에서 받아 온 잡채 한 접시만 더했다.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단출하지만 맛있고 즐거운 추석 저녁상이었다. 아, 뒷 베란다 김치 냉장고 위에 마트표 옥춘당과 유과가 있었네. 차례상이 너무 밋밋해서 데코레이션으로 올리셨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며칠 전만 해도, 음식준비가 부실하면 혹은 차례를 없애면 조상님 볼 면목이 없다는 진부한 핑계는 고이 접어 두시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부모님들의 이런 기복(祈福)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우리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자식인 나는 차례상을 준비하는 부모님의 진정성을 헐값에 매도하지 말아야지 싶었다. 엄마의 떨리는 손과 아빠의 무릎이 걱정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다정하게 말을 했어야 했다.


그걸 알면서도 매번 제사와 명절 때마다 왜 뾰족한 말을 뱉었을까? 불편해서였다. 엄마는 명절 때마다 늘 말씀하셨다. 가족들이 모이니 북적북적 보기 좋구나. 그러나, 그 '보기 좋은 풍경' 속에 엄마는 들어오시지 않으니까, 아니 못 들어오시니까 그게 미안한 거였다. 그래서 불편하고 싫은 마음으로 표출이 된 거였다. 이번에 시가에 가셔도 그런 불편함을 마주했다. 시어머니는 몇 덩이나 되는 고기를 일일이 썰어서 불고기를 재어 두시느라 고생을 하셨다. 손목이 부실해진 나는 칼을 잡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시동생이 돕겠다고 나섰다가 시어머니께 솜씨가 없다는 타박을 받고 물러섰다. 그렇게 애써서 만든 불고기는 커다란 비닐봉지 3개에 나눠 담았는데, 김치냉장고 한편에 넣어졌다가 막상 추석 당일에는 다른 음식 준비에 잊혀서 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불고기뿐이랴. 소고기 뭇국은 아직까지도 거의 30인분 분량을 만드시기 때문에 싱크대 앞을 떠나시지 못했는데 국을 먹겠다고 손을 든 사람은 단 세 명이었다. 참고로 시아버지 형제들도 각자 명절을 보내기 때문에 직계 가족 9명만 명절을 보낸 세월이 벌써 10년이다.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너희들도 가져갈 분량이라고, 장손자에게 먹일 불고기라고 각각의 이유를 대며 너무 많은 음식을 하시는 바람에 정작 시어머니가 가족들과 눈 맞추고 '보기 좋은 풍경' 속으로 들어올 시간이 없다는 게 진짜 아이러니하고 슬프지 않은가.


일이 두려운 것도, 명절이 싫은 것도 아니다. 음식 대신 식구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기원할 뿐이다. 명절을 준비하고 조상님을 모시는데 형식보다 정성이 중요하다고들 말한다. 문제는 그 '정성'이 여자들에게 과하게 요구되어 왔고, 엄마와 시어머니 역시 그렇게 배웠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자식들이 더 자주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창한 밥상이 아니더라도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고, 조상을 향한 정성이 담겨있다고 말이다. 아버지나 아들이 바꿔주길 기다리지 마시고, 음식의 종류를 바꾸고 양을 줄이겠다고 엄마가 선언만 하시면 우리들은 언제나 지지한다고 말이다. 엄마의 등이 아니라 얼굴을 더 많이 보는 명절을 만들자고 말이다.


조상님들을 위한 음식 부담이 덜어지니 엄마는 후손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신 듯했다. 돌잡이 할 때까지 키워 준 막냇손자가 내려온다고 무화과를 한 상자 사셨다. 시골에서 읍내 아파트로 들어가시기 전까지는 집 뒤편 작은 텃밭에서 다품종 소량으로 취미 농사를 지으셨는데 무화과 몇 그루를 길러 손자의 간식거리로 삼으셨다. 한 살짜리가 입을 벌리고 무화과를 받아먹는 모습이 제비 같아 너무 귀여웠다고 말씀하셨다.


추석 연휴 동안 엄마를 모시고 동네 산책을 몇 번 나갔다. 공원을 천천히 걸으면서 이번 차례상에 나물이 오르지 못한 이유를 들었다. 나물은 소소하게 한 가지만 만들까 하고 채소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아빠가 그런 걸 뭐 하려 하느냐고 사람들 앞에서 퉁 주듯이 큰 소리를 내셨다고. 기분이 나빠진 엄마는 이번엔 나물 반찬을 안 만든다고 하셨단다. 아빠는 나름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을 하셔서 만류한 것이겠지만 그 표현 방법은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아빠 때문에 조상님들은 이번 추석에 나물 반찬을 못 드셨다(!).

이전 13화 엄마 아직 쓸모 있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