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세계의 끝 /아홉소X 첨
“제..... 제가요?”
동생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랐는지 눈이 뚱그레졌다.
어? 그 순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동생의 눈 속에 아주 찰나지만 반짝임이 있었다는 것을. 그렇지. 알아. 알아. 이 형님이 다 안단 말이야. 동생은 나와 달리 비교적 회사에 만족하면서 다니고 있었지만, 역시 회사가 다 채워줄 수는 없단 말이지. 뭔가 스스로 만들어 내 보고 싶은 것도 누구나 가진 욕망이렸다. 잘만 펌프질 하면 갑자기 떠오른 계획에 동참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동생은 그림 잘 그리잖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글을 쓸 테니까, 글 내용에 구애되지 말고 읽다가 떠오르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색칠까지 한 그림은 바라지도 않아. 그냥 스케치 정도라도 좋아.”
“뭐, 그 정도는 어렵지 않지요.”
아! 넘어왔다. 동행이 생기면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행도 덜 힘든 법이지. 재밌겠는걸?
“일단, 그전에 뭔가 좀 쓰고 나셔서 말씀하시지요.”
역시. 너도 회사를 그냥 다니지는 않았구나. 가장 효과적인 역습이다. 제안을 했으면 먼저 중간 결과물을 가져오라 이거지. 섣부르게 맞장구치고 발을 담그지는 않겠다는 뜻이렸다. 동생 눈동자 속의 반짝거림도 이미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동생은 시원하고 현명하게 제안에 응하고는 다시 책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숙여서인지 나를 향해 있는 동생의 정수리는 ‘설마 진짜 쓰겠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다시 핸드폰으로 눈이 돌아갔지만, 머릿속은 방금 전 갑자기 튀어나온 계획으로 부산해졌다. 잘하면 이걸로 또 당분간은 심심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껴졌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옆의 옆자리 커플은 어느새 다툼이 끝났는지 알콩달콩한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 근데 필명은 뭘로 할까?
(벌써 마음은 작가다.)
“필명이요...”
이 친구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앞뒤 잘라먹고 뜬금없이 시작하는 내 얘기에 당황하지 않고 잘 반응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필명. 아 그리고 동생은 그냥 본명을 쓸 거야? 그림을 그린 사람 이름도 밝혀야 할 것 아니야.”
“저도요?”
하고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그럼... 저는 ”아홉소“로 할까요?”
“아홉소? 소가 아홉 마리란 뜻이야? 용이 아홉 마리의 구룡 같은 거야?”
“하하하, 소가 아홉 마리요?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 실은 제가 좋아하는 시에서 따온 거예요.”
동생은 핸드폰을 꺼내서 잠시 뭔가를 검색하더니 화면에 시 한 편을 띄워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