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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홉소 Jul 15. 2021

아홉소씨의 첫인사(完)

팀 세계의 끝 / 아홉소X  첨

[첨에 관한 아홉소Ihopeso氏의 에세이 / 황병승]


 시를 마지막으로 읽어 본 게 언제였더라. 대입을 앞둔 고삼 때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난 시구에 형광펜을 그어가며 읽은 게 마지막이었던가, 학부 교양영어 시간에 영시를 사전 찾아가며 읽었던 게 마지막이었던가. 그나저나 동생은 시를 읽는 사람이었구나.


아홉소...아홉소...I hope so... 나는 그러길 바라... 느낌이 좋았다.


“동생. 그거 나 주라. 내가 필명으로 ”아홉소“ 할게.”


아이디어 탈취, 공적 빼앗기. 회사에서 즐겨하는 게임 중의 하나였다.


“그러실래요? ”


 격한 저항과 비난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동생은 뜻밖에 순순히 양보를 했다. 


“그러면, 저는 ”첨“으로 하지요. 마침 아홉소가 형이고 첨이 동생이니 형님과 저랑 관계랑도 비슷하네요.”


 다시 시를 읽어보았다. 이제야 “첨”이 제대로 사람 이름으로 인식되었다.


 삽화가 첨. 그림 첨. 예쁜 이름이었다. 


“좋은걸?”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나는 “아홉소”, 동생은 “첨”이 되었다. 


“내친김에 아예 우리 팀이름도 정하자. 스튜디오 어쩌고저쩌고 이런 식으로 말이지!”


 역시 세상일은 계획할 때가 제일 재밌는 법. 하지만 이번에는 필명과 삽화가명을 정할 때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시 속에도 마땅히 가져다 쓸 명사가 없었다. 누벨바그? 장 뤽 고다르의 영화 포스터가 떠오른다. 그건 우리가 쓰고 그릴 장르랑 어울릴지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고려하지 않기로 한다. 


 동생과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생각을 했지만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나오는 방법을 차용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을 가져다 바로바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절름발이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음료수의 이름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주차장에 서 있는 차의 이름들. 마땅한 게 없었다. 


바로 그때! 동생이 여태껏 읽고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까지 나는 동생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는데.


“첨,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뭐야?”


 동생은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역시나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대신 책을 들어 표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여러 번 읽었는지 꽤나 낡아 보였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 김연수 소설]


“여자친구”를 쓸 수는 없다. 


“세계의 끝으로 하자! 스튜디오 세계의 끝. 괜찮다. 괜찮다.”


“어쩐지 중이병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인데요?”


“괜찮아. 예술가는 다 중이병 걸린 사람들이야. 그런 거 없으면 예술가 못 해” 


 아홉소는 그의 무식에 바탕한 예술가들에 대한 편견을 거침없이 내비쳤다. 


 그리고 아홉소와 첨은 핸드폰으로 “세계의 끝”을 다른 팀이 쓰고 있지는 않은지 검색해 보았다.


 “세계의 끝”이란 단어가 들어간 창작물에는 프랑스 사람으로 짐작되는 작가의 영화가 있었고, 예의 김연수 소설이 있었고, 한국 드라마가 있었다. 중국사람이 쓴 SF소설도 있는가 하면,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도 여지없이 튀어나왔다. 실제로 동생의 걱정대로 “진짜” 중이병스러운 작품도 보였다. 


 하지만 팀 이름은 없었다. 그럼 된 거지 뭐. 


 그렇게 얼떨결에 팀 이름까지 결정되었다. 옆의 옆 테이블의 커플도 여행지가 결정 난 것 같고. 그 뒤에 카페에서 첨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휴일을 만끽하고자 기어이 영화까지 한 편 보고,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첨이 물었다. 


“형님. 아까 많고 많은 글 중에 왜 하필 소설인지 안 알려주셨죠.’”


“왜냐하면... 내가... 타고난 거짓말쟁이니까?.”


“그건... 그렇죠.”


 그다음 월요일 출근부터 아홉소는 여성용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남자 직원처럼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맘에 드는 키보드를 구입하는데 일주일이 걸렸고,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는 한 달이 훨씬 더 걸렸다. 그리고 첫 책이 나오면서 회사를 그만둔 것은 더욱 먼 훗날의 이야기. 


 어느 한가한 토요일 오후에 반은 장난처럼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신산한 세월이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우연을 만나 같은 길을 걷길 바라. 

 진심으로 I hop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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