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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야 하는 스물과 마흔

N잡러의 여왕

by 제이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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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고 6개월이 된 시점에, 본격적으로 '일' 찾기가 시작되었어요. 따박따박 투자 수익금이 들어오고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하며 보내는, 꿈꾸던 현실은 딱 3개월이었습니다. 투자가 일그러지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간이 다시 3개월, 다시 일해야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돈 되는 일, 내가 가진 가치를 시장에 판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니 솔직히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랐다는 게 더 적합한 말입니다. 조직에서의 일은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 역할이 주어지고, 또 상사 혹은 후배들과 함께 처리하니까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의 고민은 없었죠. 물론 다른 사람과 일하니 갈등은 있었지만요.

이 고민에 답을 찾지 못해 두 번에 걸쳐 조직을 가진 회사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공공기관 전문 계약직이었고, 다른 한 번은 지인의 회사에 들어갔었죠. 하지만, 두 번 다 오래 근무하지는 못했어요. 새로운 일을 찾는 것도, 조직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둘 다 안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습니다.


입사 5~6년 차쯤이었던 거 같아요. 개발에서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기니, 낯선 사람들, 낯선 일, 낯선 분위기에 많은 혼란이 왔습니다. 신입으로 입사했을 땐 선배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나를 끌고 다니며 일을 주었는데, 5~6년 차에 옮겨 간 부서에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혼자 살아남지 못하면 언젠가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습니다. 당시 회사는 사업 구조조정이 한창이었거든요. 제가 있던 개발팀 전체가 매각될 정도로요.

직장에서 홀로서기할 때라 생각하고 'How to'를 찾으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당시 마치 내가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정표도 보이지 않고, 길도 없고, 아무 걸음자국도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홀로 찾아가야 나아가야 한다는, 극도의 외로움과 불안이 왔습니다.

홀로 세상을 헤쳐나가야겠다는 다짐 속, 길을 찾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용기 내 걷다 보니 조금씩 사막의 이미지가 옅어졌습니다. 사막에 홀로 서 있구나란 느낌을 처음 받았을 때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이내 앞서 나아간 누구처럼 나도 길을 개척할 수 있겠지, 아니 개척해야겠구나란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더 열심히 일했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방법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조직 생활에 적응해 갔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거 같던 막막함은 조직 생활에 적응하며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렇게 잊어버렸죠. 저 멀리 목적지로 가려는데, 아무런 걸음 자국도 보이지 않는 길을 나서야 하는 불안과 긴장.

이번에 그때 생각이 나더군요. 이번에는 조직도 없이 진짜 세상에 홀로 서야 할 시점이더라고요.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 얼핏 얼핏 들었거든요. 그런데, 주니어 시절만큼 극도의 긴장이 오지는 않았어요. 20년 간 사회생활을 하며 새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찾고, 그 길을 걸어가고, 가는 중 만난 장애를 대처하는 경험이 쌓인 거죠. 그 과정에 조금은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주니어 시절처럼 모든 게 리셋된 상태가 아니라, 데이터가 저장되어 어떤 데이터를 어디에 활용할지 찾으면 되니, 막막함은 덜하였거든요. 20여 년 동안 열심히 애쓰며 살았던 경험이 쌓였던 게지요.


그래서, 다시 만난 사막, 쉬웠냐고요? 한 번 건너왔음에도 또다시 부딪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배웠죠. 세상은 역시 쉽지 않구나.


스물과 마흔에 만난 사막!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십 대에 만난 사막은 조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그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고요.

사십 대에 만난 사막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그 방법을 찾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3년 동안, 많은 사건이 있었고, 시도와 좌절의 반복을 경험했더라고요. 매일이 도전과 거절과 상처로 채워졌습니다. 깜깜한 터널을 지나오는 것만 같았어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과연 터널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고, 이 터널은 끝이 날까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 발 앞에 집중해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가는 빛이 들어있었습니다. 캄캄한 터널은 말해주지 않았어요. 끝나는 시점이, 6개월 뒤일지, 1년 뒤일지, 3년 뒤일지... 하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그 끝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했습니다.


세상은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부딪혀보면 또 할만하다.




* 추신 *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 스티브 도나휴 (2011년)

1.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2.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3.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4. 혼자서, 함께 여행하기

5. 캠프파이어에서 한 걸음 멀어지기

6.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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