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피디아 Aug 26. 2022

일과 : 하루살이보다는 나은 삶

  

  기억을 더듬어 B2B 제품의 Product Manager로서 일했던 지난 5년 동안 일반적인 하루 일과를 정리해 보려 한다. 같은 일과를 가진 사람이 없을 수 있지만 대략 직장인들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잠시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루 일과


  아침 7시 전후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 자세를 바꿔 다시 눕는다. 반수명 상태로 있다 다시 알람이 울리면 끄고, 울면 끄고를 반복하다 30분이 넘어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새벽에 일어난다 해 아주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여전히 출근 시간 간당간당하게 일어나 넋 나간 사람처럼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 후다닥 씻은 뒤 옷을 골라 입고 간단히 화장을 하고. 사실 화장이랄 것도 없다, 간단히 피부톤 정리하는 정도이니. 옷은 그날 내키는 걸로 고르고, 가방은 사원증과 지갑이 있는, 어제 들었던 걸 그대로 들고 나오는 날이 제일 많다. 멋있게 꾸미고 세련된 모습은 일상에 없다. 패션에 관심도 없고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사람들과 어울릴 때 초라하지 않은 정도면 OK이니까. 


  8시가 되면 출근 버스 탑승장으로 약 5분 정도 걸어간다. 한동안 시간에 쫓겨 뛰어다니기 일쑤였는데, 아침 여유를 위해 5분 일찍 도착하게 움직인다. 쫓기듯 뛰어 출근 버스를 간신히 잡아 타는 것과 천천히 걸어가 기다리다 버스 타는 건, 하루 온종일 여유와 연결되는 듯하여, 조금 일찍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창밖 보다가, 졸다가, 이어폰에 들리는 음악소리에 깨었다, 다시 졸기를 반복하다 보면 회사에 도착.  버스에서 내려 잠이 덜 깬 채 터벅터벅 발걸음으로 회사 식당을 향해 간다. 식당 입구에 서서 테이크아웃 메뉴를 쓱 훑어본 후 무엇을 선택할지 정한 후 줄에 합류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회사 식당에 럭셔리한 서양식 아침과 부드러운 죽과 건강한 밥도 제공하지만, 늘 선택은 간편한 테이크아웃이다. 


  테이크아웃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와 PC를 켜고 가방과 외투를 정리하고 잠긴 서랍을 열어 업무 수첩을 꺼내놓은 뒤, 화장실로 가 얼굴을 한 번 살피고 컵을 씻는다.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 타서 자리에 앉아 테이크아웃을 먹으며 지난밤 사이 온 이메일을 확인한다. 매일 밤 수십 통의 이메일이 미주와 유럽에서 와 메일함에 담긴다. 


  이메일을 확인하며 당장 처리 가능한 것들은 답메일을 보내고, 다른 부서에 확인해 처리해야 할 일들은 담당자를 수신으로 메일 요청 배경에 대한 추가 설명과 필요한 회신 내용과 답변 기일 등을 포함해 재전송하고, 좀 더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사안은 별도로 모아 나름대로 머릿속에 계획과 처리 안을 만들어 수첩에 메모를 남겨놓는다.


  대략 1시간 정도 이메일 확인이 끝나면 이제 오전 회의 준비를 한다. 회의 공지 메일을 확인해 담당자들이 제시간에 참석할 수 있도록 리마인드 메일을 보내고, 오늘 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미리 생각하며 10분 전 회의실에 도착하게끔 회의실로 이동해 간다. 

  회의실 PC를 켜 회의 자료를 띄어놓고 참석자들을 기다리는 시간, 아무도 오지 않는 몇 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휴대폰으로 짧게 뉴스를 보기도 하고 카톡 메시지에 답하거나 노트에 간단한 메모를 남기거나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참석자가 오면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다가 시간이 되어 모두 도착하면 회의를 시작한다. 안건을 협의할 때면 치고받고, 주고받고, 묘한 신경전과, 아주 가끔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하며... 어떻게든 결론을 내고 회의를 마무리한다. 자리에 돌아와 회의록을 정리해 참석자들과 관련자들에게 뿌리는 걸로 오전 회의는 끝이다.


  이제 남은 오전 시간, 급한 일을 처리하거나 각종 자료 만들기를 하는데, 신제품 기획서, 고객 제안서, 대응해야 할 고객용 자료나 내부 경영진 보고 자료 등등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업무를 계속한다.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면 휴게실에 들러 커피를 타 오거나, 사무실 도보 5분 이내 커피숍에 동료와 함께 다녀오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식사 멤버들에게 메신저를 보내고, 식당 갈 채비를 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부서나 파트 단위처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먹었는데, 이제는 자유로워져 각자 편한 방식으로 점심시간을 보낸다. 어떤 이는 운동, 취미, 어학 수업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식사 멤버는 편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분위기로 바뀌었고. 고정 멤버들과 주로 식사하는데, 가끔 다른 부서 동료나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잡기도 하고, 부서 회식을 중식으로 대체해 진행하는 등 다양하게 점심시간을 활용하고 있다. 


  식사 후에는 회사를 걸으며 가벼운 산책을 하는데, 하루 종일 실내에서 지내다 보니 햇빛도 보고, 대화와 함께 걸으며 긴장을 완하 하는 시간을 보낸다. 하루 중 퇴근 시간 다음으로 편한 시간이다. 가벼운 산책 후 양치하고 오후 커피를 준비해 자리에 앉으면 컴컴한 사무실이 밝아지며 오후 근무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불이 막 켜질 때 즈음이면 자리에서 짧게 수면하는 사람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이제 상무님 회의에 참석하러 수첩을 들고 이동한다. 관련 부서 실무자들과 이슈를 해결해야 할 때는 회의를 진행하고, 부서 내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을 받거나 가이드가 필요할 때는 임원 회의를 진행한다. 안건에 대한 설명 자료와 몇 가지 의사결정 옵션 안 자료를 준비해 상무님과 관련 참석자들에게 설명하면 자연스레 토론으로 이어진다. 자료는 상무님이 궁금해하실 내용과 관련부서 사람들이 토론하려면 알아야 할 내용들로 구성되게끔 준비했는데, 이전 내가 필요한 자료들로 정리했다가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자료를 다시 만들어 회의를 다시 한 경우도 꽤 있었다.  

  상무님 스타일에 따라 고성이 오갈 때도 있고, 욕을 먹을 때도 있고, 잘못한 것에 대한 신랄한 지적을 받기도 하고, 희로애락 중 노(怒)와 애(哀)를 여지없이 겪는 시간이다. 이 회의의 안건은 여러 부서 입장이 대립되는 경우가 많고, 보는 시각과 시야에 따라 사안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사 결정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렇더라도 그 결정에 따라 일을 진행해야 한다. 간혹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특정 의사결정이 잘못되었음을 알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반성을 한다. 그때 더 강력한 근거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설득했어야 했다고. 어쨌든 경영진 의사결정에 따라 일을 진행해야 하고 그것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따라야 한다. 회사는 그렇게 운영되도록 조직화된 곳이니까.


  임원 회의에서 돌아오면 오후 개인 업무를 한다. 마찬가지로 이메일에서 해결해 달라고 요청 온 것을 처리하거나, 회사 프로세스 진행을 위해 해야 할 업무를 하거나, 경영진이나 상사가 지시한 수명 업무를 위해 자료를 만들거나,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거나 한다. 그때그때 긴급한 일, 필요한 일들을 하며 보낸다.

  친한 동료와 티타임을 가질 때도 있는데,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신입 시절은 동기들과 주변 또래들과 대화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만남이 즐거웠지만, 연차가 쌓이니 회사에 그렇게 개인적인 친분으로 대화할 사람도 별로 없고, 오늘 일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게 더 좋아 근무 시간 중에는 업무에만 집중한다. 


  4시가 되면 유럽 법인과 콘퍼런스 콜(CC), 전화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또다시 회의실로 이동한다. 전화와 영어로 진행할 뿐 또 다른 회의인 것이다. 필요한 사항들을 공유하고 현황을 설명하고, 진척사항을 관리하는 등 회의 성격에 따라 몇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CC는 상대의 제스처나 표정 없이 들리는 언어로만 이해하고 파악해야 해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운 회의였다. 같이 회의실에 앉아 미팅을 하면 상대의 표정과 몸짓에서 정보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데, 제2외국어인 영어로 된 소리로만 이루어진 대화는 적응하기까지 꽤 어려운 난관이었다. 

  그러나 이도 반복하다 보니 나아졌다. 상대의 언어 표현 방식과 습관, 좀 더 쉽게 회의를 대응하는 법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잘못 들었거나 이해가 안 되는 건, 쿨하게 다시 묻는다. 한국어로 대화할 때도 잘못 들을 때가 많은 것처럼, 영어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니 한결 편하게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자리에 돌아오면 창 밖으로 해의 강렬함이 누그러져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C가 끝나 자리로 돌아와 오늘 하루 메일함에 들어온 메일을 확인하고, 처리하고, 재전송하고, 남겨놓고를 반복하다 저녁을 테이크 아웃하러 식당에 다녀온다.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굳이 필요 없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역시나 테이크아웃. 하루 세 끼 회사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참 편리하다. 

  미주 지역과의 CC는 주로 한국 시간으로 이른 아침이나 밤에 진행하는데, 주로 참석한 회의가 밤 9시에 진행되어 사무실에서 기다린다. 미국 동부가 아침이 되면 한국은 밤 9시라 일주일에 한 번 이 CC에 참석하는데, 그날은 사무실에서 저녁시간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보통 7시 전후 퇴근 버스를 타기 위해 사무실을 달려 나온다. 이렇게 치열한 하루 일과가 끝났다. 




  한참 일에 치이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이슈에 부딪혀 헉헉 대는 버거운 날은 마치 내가 하루살이가 된 듯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의 심정으로 또박또박 그 시간 그날을 견디고 이겨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였고 그 순간을 통해 성장하였으니, 인생의 관점에서는 그래도 하루살이보다 나은 삶이 아니었나 싶다.

이전 12화 해외 출장 II : 사진으로 남은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