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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Aug 09. 2022

퇴근 : 출근의 희망

  출근할 때는 퇴근 시간을 기대하는 반면, 퇴근할 때는 출근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퇴근은 하루의 희망이다. 물론 신나게 일한 날은 '벌써 시간이'라며 하루가 다 가는 걸 아쉬워하기도 하고, 뭔가 성과를 낸 것 같이 열심히 일한 날은 뿌듯함 그 자체로 하루가 감사하다. 그렇지만 통계적으로 퇴근을 기다리는 날이 가장 많다. 나를 포함한 주변 동료들이 퇴근 이후 시간을 보내는 건 다양했는데, 대체로 아래 4개 부류에 다 속할 듯하다.



퇴근 이후 시간들



운동파 

: 대학 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던 이들도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하나둘씩 운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나를 비추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체력이다. 20대 후반을 넘으니 체력이 떨어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고, 또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정신적 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늘 기운도 없었다. 

  사람의 정신과 몸(체력)은 서로 연결되어 몸이 아프면 정신력도 떨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몸에 힘이 없고 자주 아프다. 그래서 둘의 건강을 함께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유는 일하다 보면 정신적 스트레스를 알게 모르게 받는데,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하여 몸을 움직인 것이다. 운동으로 땀을 내 느낀 개운함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었다. 내일 다시 출근할 기운을 얻었다. 수영, 골프, 요가, 필라테스, 플라잉 요가, PT, 헬스, 배드민턴, 걷기, 달리기, 테니스... 이것저것 많이도 해보았다. 물론 이 운동의 목표가 프로가 되는 건 아니니 시절마다 종목을 바꿔가며 그렇게 운동을 하며 퇴근 시간을 보냈다. 


취미파 (배움파)

: 취미로 무언가를 배우며 퇴근 이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일은 이성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과 엮여 진행되는 것인데, 사람이다 보니 일하는 과정에 여러 감정이 그 안에 섞여 들어 녹초가 되기도 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빨간 불이 깜빡깜빡하는 것처럼, 걸음걸이도 터벅터벅 힘이 없어졌다. 이럴 때 나를 즐겁게 끌어올려주는 것들을 배우며 하루 몇 시간 그곳에 집중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분산되었다가 사라져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취미 삼아 무언가 배우면 리프레쉬가 되곤 했다. 그림, 피아노, 방송 댄스, 영어 공부, 중국어 공부, 대학원 공부 등등...

  유럽 사람들은 교육과정에서 미술이나 음악을 배워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데, 어릴 때부터 이런 걸 배워두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평생 친구로 함께 할 악기나 그림 같은 취미는 어른으로 살며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난 꾸준히 하나를 하지 못해 준프로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한 우물 파며 취미 활동을 한 사람들은 몇 년 뒤 고수에 도달한 이들을 여럿 보았다. 각종 요리 자격증을 딴 친구도 있었고, 동호회에서 그림을 그려 여러 번 개인 전시회를 한 이도 보았으며, 첼로를 배워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알았다. 특히 요즘은 새롭게 접해 볼 다양한 취미들이 많아 의지만 있다면 뭐든 해볼 수 있다.

  늘 이렇게 배우는 취미도 자주 바꿔가며 오래 하지 않아 초급 수준이지만, 그렇게 배웠던 그림과 피아노, 공부는 삶의 또 다른 위안이 되었다. 일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아 거래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취미는 그야말로 자기만족, 나를 위한 시간이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 가질 것도 없고 잘 안된다고 스트레스 가질 필요도 없다.


모임파 (회식파)

: 사람들과의 모임이 좋아 매번 다른 주제로 사람들을 모아, 매일 모임 멤버들을 바꿔가며 관계를 이어갔던 때도 있다.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 개인적 친분의 사람들, 동일한 취미나 목적을 가진 동호회 같은 모임. 저녁에 반주를 곁들일 때도 있고, 맛집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고, 이른 저녁부터 소주로 달리기도 했다. 퇴근 이후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사람은 다양하고 나 또한 여러 모습을 갖고 있다. 퇴근 후 원하는 걸 혼자 하며 스트레스를 풀 때가 있는 반면, 이렇게 사람들과 모여 먹고 마시며 얘기하며 관계를 이어가는 시간을 계기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때는 늘어가는 몸무게와 얇아지는 지갑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MBTI 성향의 제일 처음 구분은 'E'형과 'I'형의 구분인데, 에너지를 외부와의 관계에서 받느냐,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갖느냐에 따르는 것인데, 난 I형이라 대체로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하는데 가끔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에너지가 충천되기도 했다. 주로 E형 사람들 중심으로 크고 작은 모임과 회식이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회사 생활의 빼놓을 수 없는 퇴근 후 활동이다. 

  X 세대 선배들에 비해 우리 세대의 회식은 좀 더 상식적이 되었고, 우리 세대에 비해 지금 MZ 세대는 좀 더 자율적이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람이니 관계가 끊기지는 않을 것이고, 아마도 다른 형태로 그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을까 한다.


휴식파 

: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퇴근해 집에 머무는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회사 일에 치여, 스스로에 실망해, 인생에 지쳐 퇴근 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파에 드러누워 TV만 보기도 했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무기력증에 빠졌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 역시 이런 기간을 여러 번 겪었다. 정말 너무 지칠 때는, 운동하는 것도 힘들고 그림이나 악기 같은 취미활동에도 흥미가 없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피곤할 때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라 본다. 자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니까. 

  퇴근해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그냥 멍 때리며 이 생각 저 생각하거나 집 안의 소소한 일거리를 하며 보내는 것도 좋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 밖으로만 돌다 보니 내 안에 구멍이 생기는 것같은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내 시간 속 나는 어디에 있는가, 싶었다. 하루 중 한두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살았어도 큰 문제없는 듯하다. 그보다 더 오래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 외에도 지금 전 동료들이 퇴근 이후 가구 DIY 배워 목수가 된 사람, 글을 써 책을 낸 사람, 웹툰을 그려 SNS에 올리는 사람, 제빵이나 바리스터 자격증을 딴 사람 등 훨씬 다양해졌고 투입 시간과 에너지 또한 증가했다.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 회사, 일, 동료 관계에서 얻을 수 없는 해방감을 얻을 수 있고, 퇴근 이후 활동, 운동, 배움, 모임에서는 긴장과 경쟁을 내려놓고 나를 위한 힐링 시간을 꼭 갖기를 바란다. 

  퇴근 시간 이후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는 게 좋았다. 가끔 혹은 자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는 이들도 있는데, 뭐가 더 맞다 틀리다는 없지만, 각자 좋아하는 걸 하는데 시간을 쓰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시간을 보내는 비중이 더 높았으면 한다. 직장인은 출근만으로도 피곤한 하루이다. 퇴근 이후를 잘 보내야 다음 날 출근을 또 할 수 있다.


  단거리 달리기를 할 때는 있는 힘껏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지만, 장거리 달리기는 긴 시간 동안 에너지를 배분해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게 필요하다. 이렇게 에너지를 배분해 동일한 속도로 뛰기 위해서는 퇴근 이후 시간을 보내며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직장 생활이라는 건, 회사를 다닌다는 건, 장거리 달리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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