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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디아 May 09. 2023

영어라는 아킬레스건

커뮤니케이션도 실력

영화 트로이는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 역을 맡아 열연했다. 아킬레우스는 갓난아기 때 저승의 스틱스강에 담겨 상처를 입지 않는 무적의 몸을 가져 강한 전사가 되었다. 

하지만, 무적의 용사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 중 발목 뒤 힘줄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게 된다. 그리스와 트로이가 맞붙은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데, 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는 스틱스강에 담기지 않은 발목 뒤 힘줄에 화살을 맞아 전사하게 된다.


우리에게 아킬레스건은 누군가의 약점으로 전해졌다.   

  



영어는 직장 생활하는 동안 아킬레스건이었다. 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해서 처음 참여한 프로젝트는 대만 회사 과제였고, 그다음은 미국 기업 과제로 모두 영어가 업무에 필요했다. 

어느 날 대만 담당자가 한국에 와, 정문에서 사무실로 인솔하며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더듬더듬 어설프게 말하는 나와 비교해 유창하고 정확하게 의사 표현하는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 


영어로 진행된 그룹장 주재 전체 회의, 도통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비즈니스 미팅에서 막힘없이 영어로 대화하는 대만 공급사와 선배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 회의에서는 일을 잘하고 못하고, 기술을 잘 알고 아니고는 차순위이고, 영어가 안되면 업무를 맡지 못했다. 


부서 네 개 파트 중 우리 파트가 대만 프로젝트를 맡은 이유는 파트장이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회의실 구석 의자에 앉아 멍하니 회의 장면을 바라보다 퇴근한 날이었다. 퇴근 버스를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봄바람 속에 작고 초라함을 느꼈던 하루였다.     




공대 시절 영어 공부는 졸업 시험을 준비했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휴학하고 영어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도 있었지만, 연구원으로 취직하면 영어는 쓰지 않아도 될 거란, 아무 근거 없는 생각, 어쩌면 더 이상 영어 공부를 안 해도 되는 핑계를 댄 것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학 다니는 동안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입사 이후 영어와 정면충돌이 시작됐다. 


4년 차에 마케팅팀으로 부서 이동하고 5년 차에 본사 마케팅 담당자로서 시장 트렌드를 프레젠테이션 하러 중국 출장을 갔는데, 비영어권 중국이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당시는 아무것도 몰라 영어로 발표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낯 뜨거워 견딜 수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말의 순서는 맞는 건지, 발음이란 게 있는지. 표현력, 전달력, 문법, 어휘, 발음, 어느 하나 봐줄 게 없었다. 정말로 무식해서 용감했다. 


연구원일 때 영어는 잘하면 플러스 요인이지만 마케팅팀에서 영어는 필수였다. 연구원 본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화하는 것인데 반해, 마케팅 일은 외부 커뮤니케이션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필수가 된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만 했다, 일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평일에는 회사에서 오가기 편한 강남으로, 주말에는 종로 영어 학원가로, 주중에는 회사에서 개설한 수업을 들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토익, 듣기, 회화, 집중 어학 과정 등 들은 수업 종류도 여럿이다. 

하지만 몇 년에 걸쳐 꾸준히 해도 실력이 기대만큼 늘지는 않았다. TV를 보면 왕초보인 출연자가 묵묵히 공부한 어느 날 유창하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게는 현실로 오지 않았다. 몇 달 만에, 아니 몇 년이 걸려도 원어민처럼 말하지 못했다. 토끼처럼 빨리 달려가고 싶지만, 현실에서 영어 실력은 거북이보다 느린 속도였다. 


‘참 어학에는 소질이 없구나!’ 


좌절도 했지만, 그만둘 용기도 하지 않을 배짱도 없었다. 영어가 곧 생존이 되어서. 영어권에서 공부하고 입사해 업무에 장애가 되지 않는 동료나, 1~2년 새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느는 어학에 소질이 있는 이들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나의 영어는 늘 부족하고 대체로 영어 공부는 진행형이다.     




업무 결과를 책임지고 성과를 내야 하는 중간 관리자인 간부가 된 후, 더 이상 영어 업무를 피할 수 없었다. 고객 절반은 해외 기업이라 영어에서 숨는 건 업무를 저버리는 거다. 

영어 때문에 업무 선을 미리 그어놓고 싶지 않았고 성취 포기가 용납되지 않았다. 특히 내가 속한 B2B 마케팅은 고객과 현지 채용인력(이후 현채인)의 커뮤니케이션이 상시로 발생하는 곳이라 비즈니스 영어 환경에 정면으로 노출되었다. 

혼자 해외 고객사에 출장을 가야 했고, 한국에 온 고객 미팅에 참석해 발표도 하고, 자주 해외 고객사 전화회의에 참석해 비즈니스 협상을 해야 했다. 


이렇게 일하는 동안 영어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사용은 계속 늘었다. 영어 업무 포기는 일의 기회를 놓아버리는 것이기에 영어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애써도 부드럽게 굴러가는 발음과 유창한 표현이 나오지는 않았다. 

수십 아니 수천 번의 시행착오와 좌절 속에, 굴하지 않고 영어 업무를 해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더딘 영어 실력이더라도 영어 업무를 포기하지 않고 일을 해내는 방식을.     




언어의 중요 기능은 커뮤니케이션임을 명심했다. 

아는 단어와 쉬운 문법을 사용하되,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다.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고심했다. 비록 미국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의사 전달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비즈니스 회화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은 크게 다르지 않고, 거창하지 않아도 되기에. 화려한 표현과 굴러가는 발음보다는 정확한 의사소통 방식을 익혔다.


상대가 한 말을 잘 못 들었을 때는, “정중하게” 다시 설명을 부탁했다. 

상대가 말할 때는 미간과 입술을 바라보며 집중해 들었다. 그러다 중요할 것 같은 내용을 놓치면 상대에게 ’다시 한번 말해주겠습니까?‘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러면 상대는 천천히 또박또박 쉽게 요약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한국어 대화에서 말을 놓치면 설명을 다시 요청하고, 잘못 이해했을 때는 유머러스하게 웃으며 대화를 끌고 간다. 하지만 영어 상황에서는 스스로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눅 들어 소심해지고, 잘못 들은 게 죄지은 것처럼 소극적으로 변해버린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먼저 예의를 갖추어 경청하고 못 들었다고 주눅 들지 않기!


대화 중간 요약 정리하며, 서로가 같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는 특히 컨퍼런스콜(전화회의)에서 많이 활용했다. 사람이 상대 말을 이해할 때는 언어 자체만도 있지만, 상대의 표정과 제스처에서도 많은 걸 감지해 종합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 하지만 전화회의는 오롯이 소리만으로 대화해야 하기에 어려웠다. 적응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하는 고객을 그냥 둔 채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해당 안건으로 다시 대화할 기회는 없으니. 그래서 찾은 방법은 대화 중간에 이해한 것을 쉽고 간결하게 말해 상대와 재확인하는 것이다. 상대 말을 요약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냐고 되묻고, 맞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고, 잘못 이해하였을 때 정정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하루아침에 짠하고 영어가 술술 나오고 대화가 부드럽게 되길 로또만큼이나 바랐지만, 바람이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터득한 뒤로는 한결 업무가 수월해졌다. 영어 업무와 해외 출장이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게 되었고, 외국인과 대화가 한결 편해졌다. 

지금 외국어 말하기 평가인 OPICs에서 영어 성적은 최고 등급이 AL(Advanced Low)이다. IM2에서 시작해 IM3, IH로 2~3년에 한 단계씩 올라 십 년에 걸려 AL 등급을 땄다. 물론 지금은 성적 취득한 지 2년이 지나 공식 성적은 없어졌지만.     


비즈니스 환경에서 영어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는 필수가 되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해외 시장에 진출해 있고 또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고객의 절반 이상은 외국 기업이고, 제품 대부분은 해외 법인을 통해 판매하고, 생산지와 판매지가 한국이 아닌 건 너무나 당연해졌다.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의 비즈니스는 계속해 증가하고 있고, 비즈니스 영어는 업무를 위한 기본이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면 주도적으로 일하기 어렵고 업무 기회가 절반은 날아간다. 


2000년대에는 영어 통역사가 회사에 있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 5년 동안은 본 적이 없다. 영어 업무가 일상이 되기도 했고, 대부분 B2B 마케팅팀 사람들이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어서이다.


마케팅팀에게 영어는 업무 기본 역량이 되었다. 지금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꾸준히 공부하고 영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터득한다면 해외에서 살지 않은 이들도 비즈니스 영어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체험했다. 

우리는 초중고, 대학까지 오랜 시간 영어 환경에 노출되어 스스로 언어 사용 방법을 터득하면 비즈니스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본다. 

해외 업무를 더 잘 해내고 싶으면 용기를 갖고 각자에게 맞는 영어 사용법을 찾아 익히면 충분하다 믿는다. 불가능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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