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게 값이라지만
개업하고 처음 맞는 5월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인데, 그래도 꽤 많은 수수료 문의 전화가 왔다.
근데 사실 로드로 온 고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부르는 수수료가 싸지 않았기 때문에-
개업 8개월 차인 나는 아직 혼자 일하고 있다.
직원이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투입하는 시간에 대비해서 수수료를 생각해 받겠다고 정했다.
그리고 내 성격상 대충 일하는 건 없기 때문에, 고객 한 명한테 시간 소요를 많이 하는 편이라, 차라리 있는 고객한테나 그 시간에 잘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문득
'아니,, 다들 그 정도 수수료를 받고 신고를 해준다고..? '
'제대로 장부 신고하는 건 맞는 건가?'
하고 의구심이 들던 찰나,
한 통의 문의 전화가 왔다.
"종합소득세 신고 좀 맡길 수 있나요?"
"네, 사업자이신가요? 매출이나 신고유형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져서요."
"임대사업자 2개 있고, 간편 장부대상자입니다. 제가 경비는 다 정리해 놨는데, 방문드리면 바로 신고서 입력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럼 정리해 오신다고 하니 원래는 XX원이지만, 할인해서 XX원에 해드리겠습니다."
"아이고 안 되겠네요. 세무서 앞에 사무실 가면 더 싸게 해 주거든요. 그리로 가야겠네요."
점잖은 중년의 남성분이셨는데, 세무서까지 가기 귀찮으시니 집 근처인 우리 사무실에서 가격이 비슷하면 맡기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수수료 차이가 나니 그냥 그쪽으로 가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내가 정해놓은 수수료보다 이미 할인해서 이야기했는데, 다른 데는 이미 내가 말한 수수료의 절반가격에 해준다니!
사실 이미 업무 과부하 상태여어서, 나도 웃으며 그럼 그쪽에서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통화는 종료됐다.
그리고 급 든 생각이, 만약에 내가 좀 한가했거나, 직원이 있었다면?
그럼 갖고 오시라고 그 가격에 해드리겠다고 하고 잡았겠지..?
이제야 그간의 일들이 이해가 됐다.
난 혼자 일해서 고정 인건비가 나가지 않기 때문에, 100% 내가 일하는 시간만큼 벌고 있다.
그런데 직원을 고용했다고 하면 직원 인건비는 이미 고정으로 나가고 있을 거고, 그럼 일을 하나라도 더 받는 게 더 남는 장사겠지.
다들 그래서 그 가격에도 해 줄 수가 있던 거구나.
이전 회사에 있을 때도 도대체 이 수수료를 받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나 싶었던 일들이 꽤 있었는데, 결국 고객관계를 보면 수임 세무사님의 지인인 분들의 경우가 많았다.
지인이니까 싸게 해 줄 수밖에 없었고, 오랫동안 하면서 수수료를 올리기 힘들었던 것.
나는 이번에 개업 초기다 보니, 거의 대부분이 소개로 오신 분들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지인을 통해 소개를 받다 보니 원래 보수보다 더 저렴하게 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믿고 소개해준 사람 체면도 있고, 내가 조금 더 힘들더라도 그냥 해주자 하고 수임했는데, 나도 나중에 만약 이 일을 직원한테 넘기게 되면, 그 직원도 과거의 나처럼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개업 8개월 차, 아직도 매일 가격 책정이 제일 어렵다.
특히 기장료나 신고대리수수료는 어느 정도 적정가격이 있는 반면에, 재산세 신고나 컨설팅 수수료는 더 가격 책정이 힘든 것 같다.
이 정도 수수료 받을 바엔 그냥 안 하고 말겠다 생각으로 수수료를 불렀다가, 다시 돌아서서 깎아줄 걸 그랬나 혼자 생각하기도 하고, 참 아직 우여곡절이 많은 개업 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