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5월 초 연휴를 끝내자마자, 종합소득세 신고 안내에 돌입했다.
개업하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종합소득세 신고 시즌이라, 사실 기장 거래처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거래처가 많았다면, 4월 말부터 미리 준비해서 안내문을 보냈겠지만.
그래서 여유롭게 연휴가 끝나고, 기장 거래처와 그나마 있던 신고대리 사업자에게 보낼 안내문을 만들어 보냈다.
안녕하세요, XXX세무사입니다. 종합소득세 신고 필요 서류 안내드립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서류를 안내드립니다. 나열된 필수 자료 외에 사업에 사용한 경비 등 자료가 있다면, 누락되지 않도록 제출 부탁드리겠습니다.
선택 서류 내역은 아래 예시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출처 : 이메일 주소, 팩스 번호
※ 가급적 모든 자료는 한 번에 취합하여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수서류>
1.
2.
3...
(중략)
<선택서류>
1.
2. (...)
(예시 안내)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각자의 서류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1. 자료 정리 취합형 (best)
ㅇㅇㅇ 종합소득세 신고서류 보내드립니다.(. zip)
(세부서류)
1)ㅇㅇㅇ 가족관계증명서
2)ㅇㅇㅇ 사업자통장거래내역
3)ㅇㅇㅇ 기부금 영수증
(,,,)
2. 사진파일 취합형
1) 이미지
2) 이미지(1)
3) 이미지(2)
(...)
50) 이미지(49)
3. 카톡 전달형
- (카톡) 사진 20장
- (카톡). pdf
- (카톡). xlsx
4. 단순 메일 전달형
- (XX은행) xxx님의 카드거래내역입니다.
- (XX카드) xxx님의 통장거래내역입니다.
- (XX보험) xxx님의 보험증권. html
보안메일입니다. 생년월일을 입력하세요.
1번 취합형 고객에게는 정말 너무나 감사하다.
내 안내문을 제대로 읽고 도와준 고객님들이니까, 이 분들에게는 사실 수수료를 자진해서 더 깎아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세무사도 사람이기에, 시간 대비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는데,
2번과 3번 유형의 고객은 자료 취합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다운로드하고 각 파일명까지 지정해야 하기 때문에, 1번 고객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이미지 이름만 보고 어떤 서류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장부 기장 시에 계속 열어보고 확인해야 한다.
아니면 처음부터 일일이 내가 저장 시에 파일명을 바꿔야 하는 시간이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서 4번 유형이 제일 ㅠㅠ인데, 모든 파일을 열 때마다 생년월일을 입력해야 한다.
주민번호나 사업자번호를 강제적으로 외울 수밖에 없어지는 고객이다.
최근에 나에게 5년 정도 맡긴 신고대리 고객님이 계셨는데, 이번에 소득세 신고를 하려고 보니 전년도 매출이 너무 떨어졌었다.
매번 매출이 비슷해서 같은 수수료를 받았었는데, 도저히 이번에는 같은 금액을 받을 수가 없었다.
수수료에 대해 한 번도 깎아달라고 얘기한 적도 없으셨지만, 그냥 내가 자진해서 이번에는 기존보다 덜 받겠다고 얘기드렸다.
나중에 매출 늘어나시면 그때 많이 주시라며-
참 이상하다, 분명 보수표가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받는다는 기준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질 수도 있기는 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근데 물론 저런 4번 고객의 경우에는 수수료를 더 내시면 알아서 0부터 100까지 다 해드리는 거고,
적은 수수료를 요구하신다면 안녕히 가시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그 시간에 다른 고객님께 내 시간과 정성을 쏟는 편이 낫다.
그리고 5월 27일인 어제, 이제 신고대리는 받지 말아야지 하고 출근을 했는데, 다급하게 오전에 전화가 하나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ㅇㅇㅇ 사업하는 사람인데요. 혹시 지금 종합소득세 신고 맡길 수 있나요? 원래 작년까지는 혼자 했었는데, 막바지에 혼자 하려니까 도무지 엄두가 안 나서, 늦게나마 세무사님 찾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사업자 인적사항 알려주시고 수임동의 해주시면 필요 자료 안내드리겠습니다. 대략적인 수수료는 XX원입니다."
이렇게 부탁하시는 분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도 했지 않나.
사실상 태도가 모든 기준이 된다.
세무사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가 수임한 고객들에게 신고, 납부서를 보내고, 수수료를 메시지로 알려드렸는데,
열이면 열, 카톡으로 보낸 한 마디에 메일을 읽지도 않고 바로 수수료를 입금해 주셨다.
입금 확인문자는 왔는데, 보낸 메일함 수신확인에 '읽지 않음'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며,
참..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상 F의 푸념이었고.
그래서 아직 종합소득세 신고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주 안에는 얼른 끝나기를 바라며,
생각보다 바빴던 5월이었음에 감사하며, 무사히 6월을 맞이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 또한 어디서든 좋은 태도를 갖자며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