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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세무사 시험을 준비한 이유

스물여덟, 도전하기 좋은 나이

by 화이트골드

직장인은 늘 가슴에 사표를 달고 산다는 말이 있지 않나. 나 또한 그랬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입사한 은행에서 나도 당연히 정년퇴직할 줄 알았지만, 역시 겪어보니 은행 일도 쉽지 않더라.


입사 후 만 2년까지는 업무를 배우고, 내가 일한다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은행원 또한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을 상대하면서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리고 이건 업무 처리를 잘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그러니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특히 퇴사 직전에는 은행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바쁜 점포에서 근무했던지라, 매일 쏟아지는 손님들 사이에서 쉴 틈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반 이상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그 순간순간이 행복하지 않다면 난 무엇을 위해 일하는 걸까? 하고 인생의 고민이 시작됐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행복한 순간도 많았지만, 이 일을 내가 평생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문득 들기 시작했고, 다른 일을 하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 이것저것 찾아보는 방황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대학시절의 나는 전문 자격증 취득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 목표는 금융권에 취업해서 보통의 회사원 삶을 사는 게 목표였고, 그래서 그 시절에 2~3년간 시간을 투자해 공부해 전문자격증 취득을 하는 것이, 단순히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용도라면 너무 가성비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금융권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만 취득해 운 좋게 취업에 성공했는데!


어느 날부터 나는 세무사와 보험계리사 시험을 알아보고 있었다. 직장인 신분으로 공부해서 합격한 여러 사람들의 합격수기를 보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나는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모범생이었는지도.


그렇다면 둘 중에 뭘 해야 할까? 그나마 전공과도 관련이 깊고 직장과 병행하며 따기에는 두 자격증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다음 카페에 각각 가입해서 이것저것 정보를 얻으며,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결국 개업을 할 수도 있고, 원하면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는 세무사가 더 선택의 폭이 넓어 좋아 보였고, 세무사 시험을 은행에 다니면서 준비하기로 했다. 누구나 그렇듯 호기롭게 시작하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니까. 일단 내 목표는 1차는 은행에 다니면서 합격하고, 퇴사 후 다음 연도에 2차를 유예로 합격하는 플랜이었다.




그런데 낮에 일은 일대로 하고, 저녁에 인강으로 공부를 하려니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퇴사할 수는 없고. 1차라도 합격해야, 퇴사하면서 동료들이랑 가족들에게도 말할 명분이 있는데...


그러다 직장인의 세무사 1차 시험 합격전략은 4488이라는 걸 보게 되었다. 세무사 1차는 일단 객관식이며, 평균 60점 이상이며 모든 과목에서 과락이 없어야 한다. 1차 과목 중 재정학과 선택법은 상대적으로 점수 따기가 쉬워 80점 이상을 목표로 하고, 회계와 세법은 40점만 넘자는 목표로 평균 60점을 달성하는 공부계획이다.


그러나 역시나 버릴 건 버리고 최소한의 공부로 효율을 극대화하자는 꼼수 공부계획법은 먹히질 않았다.


은행을 다니며 2번의 세무사 1차 시험을 봤는데, 당연히 다 불합격이었다. 합격과는 아주 먼 점수였던 것 같다. 부끄러운 기억은 삭제해 버려 점수가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렇게 두 번의 1차 시험을 떨어지고, 나는 결심했다. 그냥 이렇게 양쪽에서 고통스러울 거면 한쪽만 고통스럽자! 그래, 일단 퇴사를 하자. 그리고 딱 2년만 집중해서 공부를 해보고 안 되면 다시 취업하자. 그렇게 나는 4년을 다닌 은행을 퇴사했다.


그때가 스물여덟 살의 여름이었으니, 2년 뒤 서른 살에 다시 취업시장에 나오더라도 이건 할만한 승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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