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잡문 65 - 발자국

by 백홍시

몇 년을 걸었는데 결국 같은 자리로.
나의 몇 년은 낭비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하지만 뒤돌아보니 방황했던 나의 발자국들이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더라.
동그라미를 그리며 걷는 동안 같은 자리에 뿌리내렸던 이들은 벌써 아름다운 꽃을 피웠네.

그래. 그래서 뭐?
어쩌면 애초에 나는 꽃나무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비록 지금은 먼지처럼 보이지만 혹시나, 정말 혹시나 민들레 홀씨 같은 것일지도 모르잖아.
이렇게 날아다니다가 언젠가 툭, 보도블록 사이 틈에서 혼자 꽃을 피울지도 모르잖아.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더라도 딱 한 송이, 정말 딱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씨앗이 아니라 해도 뭐 어떡해.
그럼 나는 뭐,
먼지라고 생각하고 평생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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