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살금살금 다가오면 나는 슬며시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날에는 분홍을 안고 어디까지고 날아갈 듯했다. 겨우 물든 분홍들이 설레던 봄바람에 떨어지는 날에는, 괜히 얄미운 마음도 함께 바람 속에 흩날리곤 했다. 텅 빈 이파리 위로 내리쬐는 봄볕을 덮었다. 발 끝에서부터 푸르름이 번졌다. 모두가 나의 계절이 끝났다고 말할 때, 나는 청녹으로 중무장한 채 다음 계절을 기다렸다. 매섭던 추위가 걷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 올 봄을. 다음 해의 봄바람을 열망하면서. 또 벌써 원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