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 414일 그리고 퇴사
매일매일이 이별이었다.
비록 1년 남짓이었지만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2017년 1월 31일, 7시가 넘어서야 주섬주섬 짐을 꾸리고 책상을 정리했다. 앞서 몇 번에 걸쳐 미리 짐을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백팩이 모자라 종이백을 동원해서야 짐 정리가 끝났다. 인수인계서는 몇 번이나 챙겼음에도 여전히 부족해 보였다. 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한 달이 훌쩍 흘러 막상 퇴사일이 되니 마음이 착잡했다. 마지막 퇴근길에 팀원들과 동료들이 1층까지 배웅을 나와주었다. 부서 회비가 바닥난 것을 아는데 준비한 선물이라며 손편지 담긴 선물까지 건네주는데 목이 메어온다. 어색한 작별인사…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했던가 1년 하고 49일이란 시간이 모두 눈부셨고 무척 그리울 것 같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1층 카페 안을 들여다보니 기대에 찬 눈으로 면접을 보고 있던 1년 전 내가 소파에 앉아 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앞선 면접에서 허를 찔린 탓에 어느 때보다 충실히 인터뷰를 준비했었다. 언론에 보도된 회사 관련 기사나 대표의 인터뷰도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면접은 어느 때보다 수월하게 진행됐다. PT도 없었다. 당일 1차 합격 통보를 받았고 다음날 대표 면접까지 통과, 디지털마케팅 팀장으로 입사했다.
이미 디지털마케팅 팀장의 경험이 있었지만 홍보대행사는 처음이었다. 전통적인 언론홍보를 주업으로 하는 홍보대행사들도 저마다 디지털 업무역량을 강화한 지 오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광고회사든 홍보회사든 디지털이든 업종의 경계마저 모호해졌다. 쨌든 입사는 수월했지만 회사가 내게 맡긴 클라이언트는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제안을 통해 직접 수주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입사 후 상반기는 제안서 쓰고 견적서 뽑는 기계처럼 일을 했다. 프로젝트가 없으면 팀원을 배정받을 수도 없었지만 힘들다고 투정할 수 없었고 실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몇 번의 큰 프로젝트 제안에서 미끄러지며 좌절을 겪은 것이 약이 되었을까? 연거푸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하며 퇴사할 시점에 4개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모든 프로젝트를 수익이 나는 구조로 만들어 놨고 올해 재계약이 확실시되는 프로젝트도 3개나 되었기에 과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후 아름다운 퇴사를 꿈꿨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약 종료 시점 즈음에 퇴사 일정을 맞추고 앞서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팀장들에게 짠~ 하고 프로젝트를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나름 고안한 아름다운 퇴사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계획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더라. 나보다 앞서 한 명의 팀장이 퇴사 의사를 밝혔고 종료 예정이던 프로젝트들은 끝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중국 일정도 좀 더 당겨달라는 요청이 왔다. 결국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채 나오게 되었는데 왜, 퇴사할 때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아름다운 퇴사가 있긴 한 걸까 싶다.
북촌을 사랑하는 마케터가 낯선 도시 북경에 가서 겪는 좌충우돌 정착기.
소소한 기록 속에서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마케팅 시장과 차이나 라이프의 단면을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