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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게 뭐라고

넌 그 자체로 그냥 예쁘다고.

by 수프

엘리베이터에서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거울에 비친 날 보며 말했다.

“참 이상하게 생겼단 말이지. 어떻게 보면 예쁜데 어떻게 보면 안 예쁘단 말이야.”

뭐지, 나한테 하는 말인가? 난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물었다.

“나?”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나, 너 어쩜 엄마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사실이 그런 걸.”

아이는 내 말을 쿨하게 받아넘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이런. 공격 타이밍을 놓쳤다.


그다음 날 아이를 돌봐주러 오신 친정엄마에게 전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엄마는 나에게 공감해 주실 줄 알았는데 그 반대다.

“너 어릴 때부터 그랬어. 어떻게 보면 예쁜데, 어떻게 보면 안 예뻐서 신기하다. 했지.”

엄마마저 그렇게 말하다니. 괜히 서운하다. 그러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대외적으로는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모순된 나의 모습을 그냥 웃어넘겼는데 며칠 전 사건으로 인해 외모에 대한 내 생각과 행동, 말을 일치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해서 아이에게 태블릿 PC를 사주었다. 아이는 태블릿 PC를 종종 온라인 수업 외에 유튜브를 보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러더니 유튜버가 되고 싶다며 계정을 만들겠단다. 아이가 유튜브를 보지만 말고 능동적으로 뭔가 했으면 싶었는데 막상 그러겠다고 하니 ‘좋아요’에 연연하게 될까 봐 망설여진다.

“좀 더 크면 그때 하자.”

난 기약도 없이 뒤로 미뤘다. 아이는 뭔가 자꾸 하고 싶은지 네이버 카페를 만들고 싶다고도, 블로그를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내가 계속 안 된다고 하자 아이는 전략을 세워 날 찾아왔다.

“엄마, 내가 아는 언니는 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거든. 나도 그렇게 소설 쓰고 싶어. 연재하면 꾸준히 글을 쓸 수도 있을 거고.”

아이는 같은 학원에 다니는 언니의 블로그를 내 앞에 들이민다. 난 예전부터 아이에게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은지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아이는 100점짜리 전략을 짜 왔다.

“그래, 그럼. 그 대신 엄마에게도 글 보여 줘.”

아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난 아이의 인터넷 계정에 승인을 해 주었다.


그리고 보름쯤 지났나. 태블릿 PC로 내 메일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아이의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어있다.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다는 표시가 떠서 나도 모르게 클릭했다.

-죽여 보라고!

대체 이게 무슨 댓글이지.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이전 댓글들을 쭉 훑어보니 거친 말도 많고 일부는 삭제되어 있다. 난 아이에게 이게 무슨 댓글인지 물었고 아이는 내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태블릿 PC를 낚아챘다.

“이거 그냥 상황극이야. 내가 이 오빠랑 사귀는데 차였고 다시 매달리는 설정이야.”

“이런 걸 왜 하는데?”

“그냥.”


아이의 말에 의하면 같이 상황극을 한 사람은 초등학교 6학년 오빠(모르는 사람)라고 했다. 난 아이에게 잘 모르는 사람과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고 사생활 정보를 유출하는 것에 대한 위험을 이야기했다. 아이는 내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그리고 블로그에 왜 네 사진을 올렸어? 엄마가 사진 올리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는 갑자기 울기 직전의 표정을 짓는다. 울음을 참으려고 입을 삐죽거린다.

“그게 아니라……, 우리 가족만 나 예쁘다고 하고 친구들은 아무도 나 예쁘다고 안 해. 그런데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나 보고 예쁘다고 한단 말이야.”

아이의 울음이 터졌다. 예쁘다는 말은 왜 그리 듣기 좋고 달콤한 걸까. 그 말에 홀랑 넘어간 아이가 안쓰러워 나도 눈물이 났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중학교 때, 옆집의 예쁜 친구와 외모가 비교되어 속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외모보다 더 중요한 건 외모가 아닌 그 안에 있는 것이란 걸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성교육 책으로 추천받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에서 우연히 관련 내용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예뻐지고 싶은 걸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그저 예뻐지고만 싶은 걸까요? …… 어느 날 큰아이와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평소 통통한 자기 몸이 싫다고 말하던 아이가 갑자기 “엄마, 나는 서영이가 부러워!”하는 거예요. 서영이는 우리 아이보다 조금 더 통통한 친구거든요.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진짜? 왜 서영이가 부러운데?” “서영이는 자기 몸을 사랑해.”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단순히 예뻐지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그저 예쁘게 보이기만을 바란 게 아니었어요. 어떤 모습 인가 와 상관없이 아이는 스스로를 좋아하고 싶었던 거예요.” (p73, 74)


아이가 단순히 예뻐지고 싶은 게 아니었구나! 아이가 자기의 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네가 어떤 생김새여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예쁘다는 표현을 자주 해야겠다. 그리고 어떤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예쁘다고 하면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 생각을 나에게까지 확장해본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 정도면 괜찮지.’하고 소리 내어 말하니 괜스레 웃음이 난다.


결심한 바를 오늘 바로 실천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면서 아이의 다리와 팔을 만졌다. 평소 같으면 “쭉쭉 키 커라!”하면서 주물렀을 텐데 오늘은 “우리 아이 다리도 팔도 튼튼하게 예쁘네.”하고 쓰다듬었다.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아이라 걱정했는데 아이는 눈을 부스스 뜨더니 내 팔을 만지며 “엄마도 예쁘네.” 한다. 아이의 마음에 쌓아 주려던 긍정 에너지가 내 마음에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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