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학교에서 난타부 활동을 시작했다.
선생님이 단톡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공지사항을 알렸다.
그중 고학년 아이가 선생님을 제외한 단톡방을 만들어 아이들을 초대했다.
"선배들한테 인사해라, 안 하면 죽는다."
이런 류의 카톡을 남겼다.
카톡의 세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은 잔뜩 겁을 먹고 카톡방을 나왔단다.
격리 중인 나는 딸의 폰을 볼 수도 없었고, 전화를 통해 상황을 듣고는 괜찮다며 별일 아니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걱정과 함께 화가 났다. (나는 이런 전근대적인 권위주의적 행태에 있어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항상 먼저 작동한다. 그래서 문제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갑질이냐?!'
그때 내 손에 들려있던 책은 [다정 소감]이었다.
화를 잠재우기 위해 넘기던 페이지는 점차 잊고 지냈던 지나간 나의 다정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했다. 삐뚤어지고 싶었을 때, 포기하고 싶었을 때, 엉엉 울고 싶었을 때에 내게로 뻗어 온 '다정' 들이 있었다. 그런 '다정'들 덕분에 나는 마음 깊은 곳이 따뜻해졌고, 조금 더 힘이 났고, 다시 용기가 생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바쁨과 지침과 좌절이 뒤섞인 삶 속에서 다정은 점점 증발되고, 나는 회의적이고, 건조한 사람이 되어 갔다.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나만을 믿고 살 수는 없어서.(76P)'
다정이 사라지고 있는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나에게 작가가 다정한 꼰대질을 해주었다.
마지막 책 장을 덮는 순간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제 갓 초6이 된 아이가 원하는 선배 대접이란 것은 어디서 학습했을까? 권위와 위계질서가 스며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이라면 과연 그 아이에게 잘못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길을 가다 그 6학년 아이를 만난다면 말해주고 싶다.
"선배 노릇 힘들지? 그래도 동생들한테 말 너무 무섭게 하지 마. 동생들 잔뜩 쫄아~! 근데 야! 너 엄청 듬직해 보인다! 멋진 선배 되겠어!!"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내가 알게 혹은 알지 못하게 던져진 그런 다정한 순간들이 언젠가 어디선가 또 열매를 맺고 피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지금 나에게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