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상냥이 Apr 22. 2021

그날, EP02-08화

그날, 파괴가 시작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콰아앙! 구르르르릉!"

"후드득"

"으아아아아아!"

"조금만 더 버텨요! 바닥에 배를 붙이지 말고요!"



천지가 흔들렸다. 요동치는 바닥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흔들렸고 30cm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대피소는 무너질 듯 벽면에 금이 갔다. 지진 같은 흔들림이 2분 정도 지속되었고 대피소에 있던 모든 물건들도 모두 바닥에 뒹굴었다.


"헉, 헉, 끝났나 봐요."

"휴. 지독하군요. 모두들 괜찮나요?"

"네. 아저씨 괜찮아요. 샤비도 괜찮은 거 같아요."


나는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마치 몇 기의 핵폭탄이라도 터진듯한 느낌이었다. 살아남은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였다.


"이, 이게 무슨. 핵을 쓴 걸까요? 밖은 나가보지 않아도 아수라장이겠어요."

"아마 핵은 아녔을 것입니다. 핵을 썼다면 도시 재건은 몇십 년 동안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어떤 탄을 썼기에 이 정도로.."




박 상사도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지하 12층 정도의 대피소에서도 이 정도의 위력이 확인될 정도면 도대체 어떤 폭탄을 쓴 것이란 말인가.


"혹시 베가톤 폭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베가톤은 뭐예요? 메가톤까지는 들어봤는데 베가톤은.."

"미국에서 개발했던 폭탄이죠. 수소폭탄의 1,000배의 위력이 있어요. 이걸 실제로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지상에 있는 모든 건물들이 파괴되었다는 건가요? 그럼 그놈들도 모두.."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저희 말고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요! 그런 건 상관없는 건가요?"

"모든 시민을 구하면 좋겠지만 시간적으로 급박할 때 혹은 최종 저지선까지 완전히 밀렸을 때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위험한 폭탄을 자국에 떨어트리는 결정을 내렸을 때에는 그렇지 않았을 때의 리스크가 더 크다는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는 건 남한 전체가 밀렸다는 이야기이고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나갈 시도를 해야 할까요?"

"지금은 나갈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 생존자가 있다는 신호만 내 보내고 저희는 이곳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이곳을 정비하시죠."



대피실 내부는 벽면에 금이 간 곳이 있었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작은 방이 몇 개 있었고 화장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곳과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샤워시설도 구비되어있었다. 자가발전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고 대피 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필수 품목들이 쌓여있었다. 잘 조절한다면 당장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야전 침대도 있네요."


나는 대피 물자를 뒤적이며 말했다. 모포도 있었고 물이라고 적혀있는 스틸 캔도 있었다. 민수 씨 말대로 제대로 관리했던 것 같았다.



"수연아, 네가 이 방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야전 침대를 펼쳐주며 말했다.


"네 아저씨. 아저씨 근데 우리 살아남을 수 있는 거 맞을까요??"

"나도 잘 모르겠다. 우선은 이곳까지 피해 왔고 그다음은 어떻게 할지 이제 생각을 해 봐야겠지."

"알았어요. 고마워요. 아저씨."


수연은 자신이 가져온 더플 백을 내려놓으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는 수연에게 모포 하나를 덮어주고 샤비에게도 모포를 바닥에 깔아주었다.  샤비도 잠시 모포의 냄새를 맡고 몸을 동글 말아 자리에 엎드렸다.



박 상사는 중앙 홀에 마련된 커다란 식탁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나는 그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아 메고 있던 샷건을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거움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많이 지치기도 했고 우리가 나갈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거 같아요."

"아마 이 정도가 폭발이면 한 달 이상의 낙진이 있을 것입니다. 그전에 나간다면 죽으러 간다는 말 밖에 되지 않아요. 제가 기회를 봐서 한번 나갔다 오겠습니다. 제게 방독면도 있고 이곳에는 군용 방진복도 있으니 괜찮을 것입니다."

"네. 그럼 일단 이곳을 정리하죠."


그렇게 우리는 대피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 상사와 나 그리고 수연이 살 공간을 마련했고 가지고 왔던 물자를 정리했다. 전기는 다행히 들어왔지만 언제 끊길지 몰랐다. 그리고 당연히 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 같은 며칠을 겪고 곤한 잠에 들었다.






서울 및 수도권 폭파 작전 돌입 한 시간 전. 이글 5 팀.



"이글 5팀. 이글 5팀. 새로운 명령 하달한다. 항로를 바꾼다. 33.510418,126.4891647,17로 항로 변경하여 이동하기 바람."

"다시 한번 전달한다. 이글 5 팀은 33.510418,126.4891647,17로 항로 변경하여 이동하기 바람. 이상."

"이글 5, 이글 5 롸저. 항로를 33.510418,126.4891647,17로 변경하여 이동하겠다. 이글 5 아웃."



김 소장은 항로를 전달받은 대로 변경하였다. 서울공항에서 긴급 이륙을 한 후 부산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긴급 소집이 되고 아이들과 아내에게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못하고 나왔던 것이 몹시 후회되었다. 그것은 모든 팀원들도 마찬가지였고 현재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모든 인원들이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평화로웠던 한 날이 악몽으로 변했고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 죄스러웠다. 아직도 긴급 이륙을 하며 보았던 서울 공항의 모습이, 자신이 투하했던 폭탄에 순식간이 파괴되는 모습이 떠올라 괴로웠다. 최 준장과 나누던 마지막 교신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빨리 폭탄 투하해!'


변경된 항로는 제주공항이었다. 이윽고 김 소장의 헤드셋에 무전이 수신되었다.


"이글 5, 이글 5, 현재 항로 유지하여 접근하기 바라며 고도는 1만 피트로 유지."

"여기는 이글 5, 고도 1만 피트로 수정하겠다. 전 팀원에게 전한다. 고도 1만 피트로 수정."


제주공항에 도착한 최 준장과 팀원들은 격납고에 폭격기들을 넣었다. 대체적으로 컨디션이 좋은 상태를 유지했지만 몇 기는 일부 수리를 받아야 했다. 정비병들이 연료 주입구에 호스를 연결하는 것을 확인하고 브리핑실로 향했다.



"수고했네. 어서 와 앉지."

"필승! 소장 김희상. 의장님을 뵙습니다."

"소식은 들었네. 서울공항은 모두 파괴되었는가?"

"네, 도저히 그놈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최 준장님의 명령이 떨어졌고 이행했습니다. 상황은, 많이 안 좋습니까?"

"음. 지금 부산까지 밀려있네. 이건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니야. 지금 그놈들은 북한 지역을 모두 밀었고 중국과 러시아로 퍼져나가고 있어. 이 속도로 간다면 전 세계가 문제 될 거야. 미군의 도움으로 우리 지역을 먼저 타격할 것이고 이후 연합군과 나토군이 진압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럼, 저희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폭격 시 사용하게 될 탄은 어떤 것입니까?"


함참의장은 살짝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흐음, 베가톤 폭탄이 될 것 같다."

"베가톤 말씀이십니까? 그거 아직 사용 승인이 안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일세."

"아니,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가 너무 큽니다."

"위험한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아직 민간인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정보도 없고 구출팀과의 연락이 끊긴지도 한참이야.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상부에서 전달된 지시사항이다."


김 소장은 말없이 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담배 한 대를 물고 불을 붙인 의장이 말했다.


"휴우, 이렇게 군 생활이 어렵기는 처음이구만. 그동안 목숨 바쳐 지켜왔다고 생각한 조국에 폭격을 해야 한다니 그리고 이 방법이 하나뿐인 조국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니 너무 허망하기도 하네. 자네도 같은 생각일 거야. 그곳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땅 속으로 묻히게 될 것이고 모든 가족들의 생사도 알 수 수가 없어. 직계 가족들이야 나라에서 지켜주겠다고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일 아닌가."

"맞습니다. 저도 제 손으로 이 나라에 폭탄을 떨어트릴 자신이 없습니다. VIP께 다시 생각해 보시라고 상고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몇 번이고 토의하고 토론해서 나온 결론일세. 이러다 나라가 없어질 위기이니 진행해 봄세."

"네. 알겠습니다. 작전 준비하겠습니다. 필! 승!"

"필승."


한참 의장은 잠시 김 소장과 팀원들을 바라보다 브리핑실을 나갔다. 김 소장은 팀원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다들 들었을 거야. 나도 마음이 무겁고 이 작전을 행해야 하는 자네들 마음도 무거울 거야. 다시는 가족을 못 볼 수도 있을 거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것만이 우리가 살아나갈 길이다."


김 소장은 의장이 넘겨준 작전 계획서를 뒤적이며 말했다.


"베가톤 폭탄은 떨어트린 후 상공 500미터에서 터지도록 설계되어있다. 각 비행기에 한 발씩만 장착이 될 것이고 7개의 폭격기는 각기 맡은 도시를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나는 서울, 2호기는 인천, 3호기는..."



최종 작전 브리핑을 받는 동안 모든 팀원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이윽고 김 소장이 브리핑을 마치며 이야기했다.


"사실, 우리도 베가톤에 대한 정보는 없다. 알고 있는 건 수소폭탄의 1000배 위력이라는 것뿐이다. 모두 긴장하고 투하 즉시 전속력으로 탈출해라. 최종 목적지는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 기지 내 착륙하면 된다. 그럼 각자 최종 준비를 하고 23시 30분에 출격 대기를 한다. 이상."


김 소장이 이끄는 이글 5팀이 제주 공항을 날아올랐다. 그들의 뒷모습은 이상하리만치 아련했다. 꽤나 덩치가 큰 폭격기들의 뒷모습이 처량하기는 처음이었다.



이글 5팀은 그렇게 주요 도시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EP02-09화로 돌아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EP02-07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