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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Apr 26. 2021

그날, EP02-10화

절망 속에서 찾은 한줄기 희망

-EP02-09화에서 이음-



"사박. 사박"

"후욱, 후욱"



박 상사는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을 걷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어 어둠 속에 갇혔고 곧고 길게 뻗어있던 아스팔트 바닥은 무너저 버린 건물 잔해와 하늘에서 떨어진 낙진으로 눈이 온 듯 사박거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정화통의 수명이 빠르게 끝나가고 있어. 빨리 본부와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를 찾아야 해.'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하늘에서는 계속 낙진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화통의 정화 능력도 한계치에 다다르는 순간이었기에 박 상사는 다시 대피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거라도 해 놓으면 누가 알아볼지도 몰라.'


대피소 입구에 박 상사는 생존을 알리는 스트로브 라이트를 설치하고 작동시켰다. 이 깜빡거리는 빛이 군사위성이나 정찰기에서 발견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쿠우웅. 헉헉"


엄청나게 큰 대피소의 문을 닫으며 박 상사는 들어오자마자 방독면을 벗어버렸다. 방호장비를 낙진이 최대한 날리지 않게 조심스레 벗었다.


"박 상사님, 괜찮으세요? 밖의 상황은 좀 어떤가요??"

"휴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안 좋습니다. 낙진이 너무 심해서 앞은 보이지 않고 방독면 정화 통도 금세 쓸 수가 없어요. 나가려면 산소통을 메고 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몇 시간 버티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밖에 있는 모든 건물들이 무너졌습니다."

"그럼 무전기도 찾을 수가 없었겠네요."

"네, 아까 나왔던 건물로 가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완전히 무너져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그렇게 박 상사와 나는 스테인리스로 된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고 방 안에 있던 수연이 샤비와 함께 나와 우리 옆에 앉았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래도 먹어야 하니까요."

"네, 아저씨."


나는 비상식량창고로 가 이것저것 꺼내왔다. 미군의 전투식량처럼 팩에 들어있는 음식들이었고 물만 부으면 뜨겁게 데워 먹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샤비에게도 물을 따라주고 가지고 있던 육포 하나를 까서 주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요? 계속 이곳에서 살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식량도 그렇지만 물도 금세 떨어질 거고요."

"일단 제가 입구 쪽에 스트로보 라이트를 설치했습니다. 꽤나 밝은 빛으로 깜빡이니 정찰기나 위성에서도 파악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그리고 이 주변에 군부대가 어디 있었는지 확인을 한번 더 해야겠습니다."

"이 주변에 또 있을까요?"


박 상사는 전술 조끼 안에서 지도 한 장을 펼쳤다. 그리곤 펜을 꺼내어 들고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곳이 저희의 위치입니다. 바로 옆에 있던 건물은 무너졌으니 소용이 없고 이쪽 뒷산 부근에 부대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곳은 높은 건물이 아니었고 작은 산 중턱에 요새처럼 지어놓아 큰 영향이 없을 수도 있어요. 이곳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런데 너무 멀지 않나요?"

"10킬로미터 정도는 됩니다. 저 혼자 가면 빨리 다녀올 수 있습니다."

"혼자는 위험해 안돼요. 이번엔 저랑 같이 가시죠."

"그래도 수연 씨가 위험할 것입니다. 혼자가 편합니다."

"아녜요. 박 상사님. 저는 샤비가 있잖아요. 혼자 있어도 괜찮아요."

"그래요. 박 상사님. 아무리 대대적인 폭격을 했다지만 그놈들이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저희도 살아남았잖아요."

"흐음"


박 상사는 잠시 생각하고는 이내 답했다.


"그러시죠. 다만 이번엔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산소통을 메고 나가야 해서 무게도 나갈 것이고 무장도 가볍게 하고 다녀올 거라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네. 걱정 마세요."


그렇게 박 상사와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여기는 이글 5, 이글 5, 착륙 허가 요청. 북서방향 5킬로미터 접근 중. 이상."

"여기는 오키나와 임시 관제 센터. 확인하였다. 2번 활주로를 이용하기 바람. 이상."

"롸져."



김 소장은 서울을 폭격한 후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오키나와 공군 기지에 다 달았다. 아직 임무를 맡았던 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무전이 끊긴지도 오래였다.


"쿵! 쿠우웅!"


활주로 옆에 빛나고 있던 관제탑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연기가 피어올랐고 관제탑이 폭파되었다.


"으윽! 뭐, 뭐야!"


김 소장은 코 파일럿인 박 대령에게 소리쳤다.


"빨리! 기수를 올려야 해! 엔진 풀파워!"

"네! 으으윽!"

"기이히 잉!"


하강 중이었던 김 소장의 폭격기는 힘겹게 하늘로 다시 날아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공군기지가 놈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었다.


"쿠쿠쿵!"

"애애애애앵!"

"투투퉁! 투투투퉁!"

"으윽, 저놈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김 소장님! 빨리 기수를 돌려야 합니다! 앞에!"



김 소장의 폭격기 앞에 놈들이 쏜 물 폭탄이 날아오고 있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지 않는다면 모두 당할 수도 있기에 김 소장과 박 대령은 있는 힘껏 기수를 끌어올렸다.


"으으으으아아!! 올라가!"

"왼쪽으로!"

"펑!"

"으악!"



폭격기는 아슬아슬하게 물 폭탄을 벗어났지만 뒤쪽 날개 부분에서 터진 물폭탄의 위력이 기체에 그대로 전달됐다.


"젠장! 떨어트릴 폭탄도 없는데!"

"펑! 퍼펑!"


놈들은 지나쳐버린 폭격기가 아쉬운 듯 계속해서 물폭탄을 쏘아댔지만 이미 사거리를 벗어난 김 소장의 폭격기는 더 이상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자 놈들의 드론이 좇아오기 시작했다.


"위이잉!"

"펑!"



드론에서 쏜 폭탄이 폭격기 근처에서 터졌다.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고 김 소장과 박 대령은 몸이 오른쪽으로 쏠릴 만큼 충격이 가해졌다.



"삐삐 삐삐, 기체 이상. 삐삐삐 기체 이상."

"소장님! 왼 날개쪽 엔진에 이상인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일단 2번 엔진이 살아있으니까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그런데 저 드론들이 계속 뒤에 붙어있습니다!"

"최대한 방향을 틀어! 날개가 부러지기 전까지 한번 해 보자!"

"네!"

"우우 우웅! 덜거덕! 핑!"


폭격기는 높이 그리고 멀리 날 수 있는 대신 날개의 길이가 길어 빠른 회전을 할 수가 없게 설계되어있다. 하지만 김 소장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붙은 드론을 떨쳐내기 위해서 기수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돌렸고 엄청난 힘을 받은 오른쪽 날개에 이상이 생기 시작했다.



"소장님! 날개가 부러지겠습니다!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조금만 더!"

"투툭! 툭!"

"위이이잉! 펑!"


힘겹게 돌고 있는 덩치 큰 폭격기를 향해 드론들은 계속해서 폭탄을 쏘아대고 있었다. 마침대 폭격기는 기수를 90도로 틀었다.


"플레어!"

"투투툭! 퍼퍼펑!"


플레어는 보통 유도미사일을 교란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하지만 지금 김 소장에게는 플레어밖에는 없었다. 김 소장이 쏘아 올린 플레어는 천사 모양으로 퍼져 밝은 빛을 냈다.


"지금이야! 최고 속도로!"



폭격기는 이윽고 엔진의 모든 동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그곳을 빠져나갔다. 드론들은 김 소장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그런데 소장님. 오키나와까지 당한 것입니까?"

"그런 것 같다. 문제가 커지는 듯하다. 섬까지 놈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면 내륙지역은 이미 모두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 저희 군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김 소장은 제주도 공항에 무전을 해 봤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제주도 역시 이미 당한 듯했고 이제 돌아갈 수 있는 곳은 괌밖에는 없었다.


"괌으로 가자.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소장님. 그, 그래도.."

"모르겠어? 이미 모두가 당했어! 그리고 우리 팀 모두 연락이 끊긴지도 오래잖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착륙을 해서 다음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이야!"



김 소장의 말 대로였다. 서울과 수도권에 폭탄을 퍼부어 일시적으로 놈들을 막아냈지만 이미 놈들은 충청 이남으로까지 번졌고 북한을 넘어 대륙으로까지 진출했다. 제주도가 당했고 일본까지 놈들에게 모두 점령당했다. 김 소장의 폭격기는 하얀빛을 깜빡이며 밤하늘을 날아가고 있었고 박 상사가 설치해 놓은 스트로브 라이트는 밤하늘을 향해 힘차게 깜빡이고 있었다.


미국의 군사 위성이 한국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EP02-11화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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