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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Apr 27. 2021

그날, EP02-11화

희망의 끈을 찾아서.

-EP02-10화에서 이음-


박 상사와 나는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대피소에는 구조용 산소마스크 4 통과 여유분 4통이 있었고 군 복무 시절 보았던 보호복도 4벌이나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보호복을 입고 신발과 장갑까지 착용했다. 산소통을 들쳐 메고 마스크를 목에 걸었다. 그리고 산탄총을 손에 쥐었다.


"박 상사님. 준비 다 되었어요."

"네. 그럼 다녀오시죠."

"수연아, 조심히 잘 있어. 금방 다녀올게."

"네 아저씨. 조심히 다녀오세요."



우리는 대형 문을 열고 나가 힘겹게 닫았다. 이윽고 안에서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후욱, 여기부터 모두 무너져 있습니다. 조금 위험하겠지만 조심히 올라오세요."

"후욱후욱, 네."


와르르, 무너진 계단을 오르는 박 상사의 발에 차여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가 일부 쏟아졌다. 힘겹게 무너진 계단을 오른 나는 폭격 이후 처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사박."


쌓여있는 낙진이 발을 감쌌다. 분진같이 미세한 입자들이 떠올랐고 공기 중에 수많은 분진들이 섞여있어 산소통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아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대피소 입구에는 박 상사가 설치해놓은 스트로보가 깜빡이고 있었다.


"여, 여긴."

"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습니다. 이쪽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아요."


산소통의 압력 게이지는 3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와의 거리는 대략 8km. 방해 요소만 없다면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박 상사는 산소통을 70%만 오픈하고 출발했다. 산소 사용량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아직 놈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너진 벽 쪽으로 최대한 붙어서 따라오십시오. 경계도 늦추면 안 됩니다."

"네. 걱정 마세요."


나는 산소마스크 위에 붙어있는 라이트를 켜며 말했다.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낮이었겠지만 낙진은 태양마저 가려버려 라이트 없이는 다닐 수가 없었다.


"사박, 사박."

"사박, 사박."


앞장 서가던 박 상사가 오른쪽으로 손짓을 했고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빠른 걸음으로 가면 안 된다. 최대한 말하는 것도 줄여야 산소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에 우리는 가능한 한 수신호로 서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대피소에서 나와 걸은지 1km가량 되었을  무렵이었다.


'잠시 멈춰요.'


박 상사가 머리 옆에 손을 들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먼발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마스크의 라이트를 잠시 껐고 콘크리트 더미에 몸을 숨겼다.


"부르르릉 탈탈탈."


자동차 소리였다. 그렇다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인 건가?!


"탈탈탈. 부우웅."


군용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우리 말고도 생존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에 그들에게 손짓을 하며 일어나려 했지만 박 상사가 나를 저지했다.


"왜, 왜요! 저 사람들도 생존자잖아요."

"쉿, 아직 저들의 정체를 모릅니다. 잘못하다가는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그, 그래도."



박 상사와 나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몸을 숨기고 안 보일 때까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타고 있던 군용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박 상사가 말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생존자라고 해서 함부로 다가가서는 안됩니다. 무법 상황에서 그들도 생존하기 위해 어떤 약탈을 벌일지 모르는 일이에요. 조심하세요."

"네 알겠어요."



박 상사의 말을 들어보니 맞는 말 같았다. 사람은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이 속해있는 무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또 다른 무리를 공격하거나 이용하기 마련이다.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되고 다른 우두머리와 싸움을 벌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본질의 기본적인 성향이었다.




"이제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수신호로 대화할 것이고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따라오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상사는 소총을 어깨에 견착 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나는 마스크의 라이트를 켜고 권총을 손에 쥐었다. 우리 이외에 다른 생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목적지까지 빨리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후욱, 후욱"

"헉, 헉. 얼마나 가야 되나요?"

"이제 1킬로 정도 남았습니다."


우리는 빠른 속도로 이동했고 산소통 압력게이지를 보니 52% 정도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타고 남은 나뭇가지에 몸을 숨기고 지도를 꺼내 보았다.


"여기서 작은 언덕을 올라가야 합니다. 문제는 그곳이 다른 생존자들에게 점령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상황은 모른다는 거예요."

"네. 그럼 어떻게 하죠?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일단 몸을 최대한 낮춰서 움직여야 합니다. 가장 가까위질때면 낮은 포복으로 움직일 거고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면 그때 빨리 따라오세요."

"네."

"아. 마스크 라이트는 꺼주세요."



나는 박 상사의 말을 듣고 라이트를 껐다. 우리는 최대한 몸을 낮춘 상태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먼발치에서 어두컴컴한 형채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 상사와 나는 낮은 포복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삐삐 삐삐삐"

"김 소장님! 2번 엔진까지 꺼지려고 합니다!"

"으윽!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김 소장의 폭격기는 필리핀해를 지나고 있었다. 오키나와 군 공항에 내리지 못하고 긴급 발진을 하였고 괌으로 향하고 있었던 중에 기체에 입었던 심각한 데미지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다.



"괌까지는 얼마나 남았어?!"

"이제 20분 정도만 더 가면 됩니다!"

"으윽! 그때까지는 좀 버텨야 하는데!"

"빨리 괌 관제탑과 교신해봐!"

"관제탑! 관제탑! 여기는 대한민국 공군 이글 5팀 이상."

"관제탑! 관제탑! 여기는 대한민국 공군 이글 5팀 이상!"



관제탑에서의 답신이 오지 않았다. 괌도 놈들에게 당한 걸까? 김 소장이 소리쳤다.


"스콱 코드 (Squawk Code) 발송해!"

"네!"


박 대령은 트렌스폰더를 7700번으로 맞추었다. 이제는 괌에서 확인하기만을 기다리며 버텨야만 했다.



"펑!"

"삐삐 삐삐 삐이익 삐이익!"


그나마 버티고 있던 2번 엔진이 터졌다. 폭격기는 오른쪽 날개의 엔진으로만 비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칵핏 안에서는 비상 상황을 알리는 요란한 소리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다급한 박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장님! 고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추락할 것 같습니다!"

"조정 간을 죽으라고 당기고 있어!"

"바람의 방향이 좋지 않습니다! 연료도 이제 거의 다 써갑니다! 비상착륙해야 합니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김 소장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쪽 날개의 엔진이 완전히 망가졌고 연료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바다에 비상착륙을 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올라가 보자. 고도를 최대한 높여!"

"네?"

"최대한 올라간 다음에 엔진을 모두 꺼! 그리고 활공한다."

"그러기에는 덩치가 너무 큽니다! 기류의 도움도 못 받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결론은 같잖아! 마지막에는 바다에 비상 착륙해야 해! 괌 기지까지 최대한 가까이 가려고 하는 거야! 우리 위치는 미군이 파악하고 있을 거야. 코드는 계속 발송 중이니까 GPS 확인하면 금방 구조가 가능해!"

"전 모르겠습니다! 일단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갑니다!"



박 대령은 엔진의 출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고 조정간을 최대한 당겨 기체를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엔진 꺼!"

"삐삐삡"



폭격기가 올라갈 수 있는 최대치로 고도를 올린 박 대령은 이후 엔진을 껐다. 요란한 소리를 내던 경고음이 일순간 조용해졌고 칵핏은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소장님. 그동안 소장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정신 차려! 아직 우리 죽지 않았어! 조정간 똑바로 잡고! 최대한 멀리 가서 바다에 앉으면 돼!"



김 소장과 박 대령이 타고 있던 폭격기에서 흘러나온 스콱 코드 (Squawk Code)를 괌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공군기지에서 파악하고 위치 파악을 시작했다. 괌 군 공항 북서방향 5km에서 이들을 발견했고 이미 폭격기는 수면 위 100m까지 내려앉았다.



"아직 조정간 놓으면 안 된다!"

"으으윽!"

"구르르 릉!"

"으아아아악!"



김 소장과 박 대령은 기체가 수면에 닿는 순간까지 조정간을 놓지 않았고 폭격기는 미끄러지듯이 수면 위에 내리 앉기 시작했지만 엄청난 속도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체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왼쪽 날개 끝이 수면에 닿기 시작했고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다가 부러졌다. 이윽고 기체는 오른쪽 날개쪽으로 기울어졌고 수면에 닿자 오른쪽으로 휘는 힘을 받기 시작했다.


"쿠 콰콰 콰콰!"

"으아아아아 아!"

"고개를 숙여!"

"텅!"

"기이이잉!"


오른쪽 날개도 떨어져 나가며 기체는 두 동강이 났고 칵핏이 있던 폭격기의 앞부분은 따로 떨어져 나가 수면 위를 물 수제비처럼 튕겨나갔고 이 둘에게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김 소장과 박 대령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박 대령. 상관 잘못 만나 고생이 많았구나. 우리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 엄마 정희야. 못난 남편이라 미안해. 고생만 시켰네.'


김 소장은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고 칵핏은 점점 물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김 소장의 눈에 희미하게 누군가가 칵핏을 향해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EP02-12화에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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