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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Apr 05. 2021

-가제- 그날 05

급할수록 돌아가라하지만 너무 돌아가니 급해졌다.

-4펀에서 이음-


"제 뒤에 바짝 붙어 있으세요. 가끔 뒤쪽도 한 번씩은 바라보며 따라오시면 됩니다. 가셔야 하는 목적지가 두 블록 반 정도 떨어진 곳이 맞습니까? 10층이라 이야기 들은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빨리 갑시다. 너무 시간이 오래 지났어요."



박 상사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내 앞으로 나아갔다.


회사에서 우리 집 까지는 거리상 1.5킬로였다. 차로 가면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걸어서 간다면, 아무 일 없었던 날이었다면, 20분~3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 하지만 지금은 그놈들을 피해 움직여야만 했고 거리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차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놈들에게 당한 사람들의 옷가지만 바닥에 마지막 모습을 그리며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지구의 모든 물들을 빨아들이는 것인지 길가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들은 모두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꾸꾹! 꾸르륵!"

"퓻! 퓻퓻퓻!"


"엎드려요!"

"탕탕! 타타탕!"


회사에서 나온 지 300미터쯤 갔을 무렵. 다시 그놈들이 나타났다. 박 상사는 나에게 엎드리라는 수신호를 하며 소리쳤고 즉시 사격을 했다. 그놈이 쏜 물폭탄이 박 상사의 머리를 스쳐 뒤편에 떨어졌고 "팍" 소리를 내며 터졌다.



박 상사는 두세 발을 쏜 뒤 허리를 굽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사격을 했고 다른 놈들보다 덩치가 조금 더 컸던 그놈도 반격이 만만치 않았다.


"퓻퓻!!"

"꾹꾸 룩!!"

"타타 탓! 타탓!"

"끼이익! 쾅!"


그놈은 박 상사와 나를 향해 물폭탄을 쏘아댔지만 여의치 않았는지 길가에 있던 간판을 뜯어 우리에게 던졌다.


"쾅!"

"으윽!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이놈! 반격이 장난이 아닌데요? 내가 저쪽으로 유인할 테니 엄호사격 좀 해줘요!"


박 상사는 그놈을 유인하겠다며 엄호사격을 요청하였고 나에게 권총 한 자루를 넘겨줬다.



"총 쏠 줄은 알죠? 하나 둘 셋 하면 제가 오른쪽으로 뛰어 나갈 거예요. 그때 그놈의 머리를 향해 계속 쏘세요!"

"네? 네!"



제대 한지도 10년이 넘은 나였지만 오랜만에 쥐어보는 권총의 촉감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하나! 둘! 셋!"


박 상사는 나에게 눈짓을 주고 셋을 세고 쏜살같이 오른쪽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엄폐물을 벗어나 그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오랜만에 쏘는 총이라 반동이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권총이라 장탄 개수는 얼마 없었고 이내 탄창은 비워졌다.


"틱!"


탄이 떨어진 난 다시 엄페물속으로 숨었고 박 상사는 뛰쳐나간 후 수류탄 하나를 빼어 그놈에게 던졌다.



"쾅!"

"쿠웅!"



족히 2미터가 넘어 보이는 그놈의 머리를 향해 던진 수류탄은 머리 부근에서 터졌고 가까스로 그놈을 처치할 수 있었다.



"헉! 헉!"


나는 박 상사에게 권총을 돌려주었고 가쁜 숨을 쉬던 박 상사는 군장 어깨 끈에 달려있던 호스를 통해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이놈들 점점 진화하는 거 같아요. 처음엔 분명 키가 150도 안되어 보였는데 저놈은 2미터가 넘네요."

"그런데 도대체 이놈들은 정체가 뭐죠? 왜 갑자기 나타났고 어디서 온 거예요? 외계인인가요?"

"우리도 정확히 알지는 못해요.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 내려왔을 뿐."

"상부의 지시라는 게 뭔데요! 그래도 어느 정도 이야기는 해 줘야 이 상황을 납득하고 정부 지시에 따를 거 아니에요!"

"알고 있는 것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희도 외계에서 온 건지 돌연변인지 알지 못해요. 다만 저희는 서울을 봉쇄하기 전 마지막 시민들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네? 봉쇄요??"

"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요. 아내분을 구출하고 집결지로 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가시죠."



서울 봉쇄, 정부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파악했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서울을 봉쇄한다고 했다. 그리고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한 집결지로 모여야 한다고 했다.



'서울을 봉쇄하고 탈출한다는 건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괜찮다는 의미일까? 왜 하필이면 서울에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그리고 우린 어디로 이동을 한다는 것이지?'


"빨리 갑시다."



재촉하는 박 상사의 뒤를 따르며 난 계속되는 의문에 머리가 복잡해져 왔지만 지금 당장은 아내에게 가는 것이 우선이었고 나지막이 말했다.


"살아있어 줘. 내가 갈게."




박 상사와 난 다시 잰걸음으로 움직였다. 마구 달려가고 싶었지만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움직여야 했다. 최대한 벽에 붙어 박 상사의 뒤를 바짝 좇았고 건물 반쯤을 지나갈 때쯤 하늘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우웅! 위이잉!"

"뚜뚜! 위이잉!"



오전에 보았던 하늘을 나는 그놈들이었다. 한두 대가 날아들더니 아까 처치한 덩치 큰 그놈 위를 선회하며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건물 반대편 골목에서 날아온 그들이라 아직 우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 몰려올 것 같아요."



나는 박 상사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건물을 지나 큰 길가로 돌아나가는 순간이었다.



"부우웅! 삑삑!!"


눈 앞에 방송용 드론보다 조금 더 큰, 날개는 없는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던 그놈이 박 상사와 내 눈앞에 공격하려는 자세로 공중에 떠 있었고 빨간 불빛을 보이며 삑삑 거리는 소리를 냈다.


"으윽, 아니 어, 언제 이곳으로!"


돌아 나가려던 우리는 그놈 앞에 멈춰 섰고 저 멀리 다른 놈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목격했다.

박 상사는 한 손으로 나의 팔을 붙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팍에 있던 연막탄에 손을 천천히 가져갔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우리가 돌아 선 길은 왕복 8차선의 큰 도로다. 아무리 연막탄을 터트린다고 해도 큰 도로를 횡단해서는 답이 없었다. 탈출구는 우리가 돌아온 길 뒤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그곳은 상대적으로 도로의 폭이 좁았고 연막탄과 같은 선상에 있어 눈가림에 용이했다.


"제가 연막탄을 터트리는 순간 뒤쪽으로 돌아 뛰세요. 건물이 열려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네, 알았어요."


난 떨리는 목소리로 박 상사에게 말했고 박 상사는 오른손으로 연막탄을 꺼내어 들었다.



"뛰세요!"


소리치는 박 상사의 말에 난 냅다 뒤돌아 뛰기 시작했고 연막탄은 터쳐졌다.



"팍! 푸 슈슈슈 슈"

"타타탕! 타탕!"



박 상사는 연막탄을 터트림과 동시에 눈 앞에 있던 놈에게 총을 쏘아댔고 기습 공격을 받은 그놈은 연기를 일으키며 도로 중간으로 흐물거리며 날아가 떨어졌다. 신호를 받고 날아오던 그놈들은 더욱 속도를 내며 날아왔고 이윽고 물폭탄을 쏘기 시작했다.


"위이가 잉!"

"퓻퓻퓻! 퓨퓻"


"파파팍! 팍!"



그들에게 계속 위협사격을 하며 박 상사도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고 최대한 내가 그놈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금은 멀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먼저 건물에 들어가 있어요! 내가 잠시 이놈들 따돌리고 들어갈게요!"



"헉헉헉! 흐읍 헉헉! 네!"


30미터도 안돼 보이는 그 길이 300미터는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는 100미터를 13초에 달리던 나였지만 40대를 넘어가는 지금은 힘이 들었다.



운동 좀 할걸,


티브이만 보고 있지 말고 나가서 운동 좀 하라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아내와 내비게이션 말은 들어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가 다시 한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탁탁탁!!"


그렇게 심장이 터져라 뛰어 반대편 건물에 도달했고 강화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아 벌컥 열었다.



그런데!




-6편에 이어집니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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