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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Apr 08. 2021

-가제- 그날 09

결국, 나는 지키지 못했다.

- 8편에 이어-


"쾅! 쾅!"

"위이잉! 붕! 붕!"


박 상사는 문에 기대어 그놈들이 두드리는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빨리 들어가 보라는 박 상사의 눈짓에 나는 안방으로 한달음에 뛰어 들어갔다.


"쿠당탕탕! 컥!"

"퓻! 퓻!"

"크아앙!"

"꾸루꾸루!"


갑자기 밖에서 아까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이내 소란은 잠잠해졌고 박 상사도 기대고 있던 문에서 등을 떼어 문쪽으로 총구를 겨냥했다.


"박 상사님! 저희예요! 밖에 있는 놈들은 저희가 처치했어요!"


박 상사는 이내 총구를 내려 문 옆에 있던 인터폰을 켰다. 인터폰 속에는 1층에 남겨두었던 수연과 효종이 있었고 쉭과 샤비는 복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살짝 연 박 상사는 그들을 들여왔고 동태를 잠시 살핀 후 문을 닫았다.



"어찌 온 것입니까? 위험했잖아요!"

"1층에서는 별 일이 없었어요. 그런데 올라가셨던 쪽에서 큰 소리가 나서 뛰어올라왔더니 공격을 받고 있으시더라고요. 쉭과 샤비가 잘 처치했어요. 얘들 무지 용맹해요! 그렇죠?"

"도와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무전이라도 날리셨어야 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오인사격했으면 어찌할 뻔했습니까?"

"네, 그 점은 죄송하지만 워낙 상황이 급박했어서요. 이 집인가요?"


"아악! 여보!"


안방에 들어온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모두 부서져 버리고 온통 난장판인 방 안은 창문도 깨어져 있었고 바람에 커튼만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는 사람이 쓰러져 있던 흔적만이 남아있고 팔이었던 곳처럼 보이는 곳 끝 부분엔 젖었다 말라 쭈그러진 작은 종이 한 장이 놓여있었다.


- 여보, 미안-


그녀가, 그녀가 그들에게 당한 것 같다. 품에 안아보지도 못하고 그녀를 보내야만 했다. 혼자 두었던 오늘 하루가 너무 미안했고 빨리 오지 못한 나에게 너무 화가 났으며, 그녀를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바닥에 놓여있던 작은 종이를 손에 쥐며 얼굴에 감싸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으헝헝헝! 내가 빨리 왔어야 했는데 미안해! 엉엉!"


박 상사와 아이들은 소리쳐 우는 나에게 달려왔고 수연은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쉭과 샤비는 내 곁으로 와 몸을 비비며 나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위이잉! 삑삑!"


창밖으로 또다시 괴상한 소리가 나며 놈들의 드론이 나타났다! 수익과 샤비는 나의 앞을 가로막고 드론을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었고 수연과 효종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고 나는 그 순간 옆에 놓았던 소방용 도끼를 손에 쥐고 드론을 향해 달려갔다.



"퍽! 꽝!"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드론은 내가 내리 친 도끼에 맞아 폭음을 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어쩌면, 내가 조금 더 빨리 돌아왔으면 그녀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억울한 마음이,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내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괴로운 마음이 나를 집어삼켰다.


"윽."


밖으로 떨어져 가는 드론을 바라보며 아름답게 웃고 있었던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그녀가 느꼈을 공포와 고통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 같아 괴로웠다. 순간 나는 복부에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쓰러졌다.





"여보야~ 밥 먹자~ 일어나야지! 일요일이라고 맨날 이렇게 늦잠이나 자고! 맴매 맴매!"

"아우웅~ 어제 늦게 잤단 말이야! 조금만 더 잘게 응??"

"그러게 누가 밤늦게까지 영화 보래? 또 좀비 영화 봤지! 으이그! 그렇게 징그러운 영화는 왜 그렇게 좋아하나 몰라!"

"한국형 좀비가 얼마나 좀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 외국에서도 더 난리인 거 몰라? 조금만 더 자자 웅?"

"팡팡! 안돼! 일어나! 오늘 어머님 아버님 오시기로 했잖아! 화장실 청소도 좀 하구 응!"

"이렇게 하면 내가 이기지요~"

"하하!"


방 안에 들이우는 아침 햇살에 빛이 나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나를 깨웠다. 일어나라는 사람과 조금 더 자겠다는 사람의 간질거리는 실랑이를 했고 그녀는 나의 등짝을 때리며 일어나라 타박했다. 나는 그녀를 와락 감싸며 그녀를 침대로 올렸고 나는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살내음에 취해 잠에 취해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품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던 나는 얼굴이 점점 차가워져 갔고 축축해졌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그녀는 점차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고 액체로 변해져 갔다. 그녀는 구해달라는 듯 나를 향해 손을 뻗었고 나는 그녀를 잡으려 손을 내밀었지만 도저히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액체로 변해버렸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슬픈 눈망울을 마지막으로 점점 사라져 갔다.




"어, 어, 여보!"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안 깨어나시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괜찮으십니까?"



꿈이었다. 그녀와 보냈던 마지막 일요일 아침. 그날의 풍경이 내 뇌리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그녀가 이제 내 곁에 없다. 나는 정신을 차리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워워, 아직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안 돼요.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제 아무것도 못 드셨죠? 수프를 끓였어요. 조금이라도 드세요. 찬장에 손댄 건 죄송합니다. 이제 우리 또 집결지로 이동해야 하잖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제,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죠?"


"두어 시간 정도요. 괜찮습니다. 아직 집결지까지 갈 시간은 충분하니 휴식을 취하세요. 창문이 깨진 안방 문은 완전히 폐쇄했습니다. 남수 씨가 쓰러진 이후 그 드론이 몇 대 더 왔었어요. 그 와중에 샤비가 조금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리를 약간 접질은 것 같은데 큰 부상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휴식을 취하면 나을 거예요."



허무했다. 이 사태가 일어난 이후 나에게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지켜내려고 했던 그 사람은 없다. 수프가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난 수프가 담겨있는 그릇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무릎을 굽혀 얼굴을 파 묻었다.



"이거라도 드셔야 합니다. 힘이 나야 집결지로 갈 수 있고 살아남죠."

"그러면! 그러면 뭐합니까? 난 그녀를 지키지 못했어요! 우리가, 아니 내가 너무 늦게 왔단 말이에요!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그녀를 그렇게 보내지 않을 수 있었는데요!"

"아니에요. 아저씨. 아저씨는 최선을 다 했잖아요. 자책하지 말아요. 지금 이 상황에서는 누구나 다 후회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잖아요. 마음 다시 잡아요 네?"

"나를 두고 떠나요! 난 그녀를 따라갈 겁니다! 지금까지 와 준건 고마워요! 내가 있으면 방해만 될 뿐이에요."


"퍽!"


박 상사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얼굴을 맞고 쓰러진 나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당신만 힘듭니까! 우리 모두 힘든 상황이에요! 당신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안타깝게 보낸 사람들도 있어요!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었나요? 전 군인이기에 여러분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것입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그들의 생사 조차 몰라요! 상부에서 지키겠다 구출하겠다 하지만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피난처로 가야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아내분이 떠날 때 마음이 어땠을지 모르겠어요? 아내분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약해 빠져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당신을 보면 하늘에서 아내분이 웃을 수 있을까요? 정신 차리세요!"


박 상사에게 맞은 얼굴이 얼얼해 왔다. 그랬다. 이런 모습 그녀가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이 받아주지 않았었다. 응어리가 진 것처럼 가음이 무너지고 욱신거렸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갔다.



"쏴아아 아"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흐르는 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녀와의 기억을 떠내 보내려는 것처럼 흘러 들어가는 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애시절 그녀와의 사랑했던 날들, 꽃을 유난히 좋아해 집 앞마당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모습, 나에게 반찬 투정한다며 꿀밤을 주던 그녀를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그렇게 난 그녀를 떠나보냈다.



-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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