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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냥이 Apr 14. 2021

그날, EP02-02화

우리가 원했던 시간.

"부우우웅"

"이제 곧 도착합니다."



효종을 잃고 여의도로 향하는 작은 차 안에서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도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했던, 같이 생사를 함께했던 효종과 쉭 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 자고있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오래 전 아내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는 난임임을 이야기했다. 분명 둘 다 이상은 없었는데 아이는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 후 몇년간의 시도 끝에 시험관 아이까지 받아보았지만 결국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아내는 매우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 나에게 오히려 밝게 웃으며 우리 둘이서 더 예쁘게 살자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내는 나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며 나를 감싸 안아주었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잠이들었다.



"끼이익"

"이곳입니다. 꽤나 높은 층까지 올라가야 하지만 군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될것입니다."

"이곳인가요? 여기 자주 왔었던 곳인데.. 이런 곳에 군인들이 있다구요? 그런데 전기가 끊기지 않았을까요? 그놈들 때문에 위험할수도 있을텐데.."

"군사기지는 기밀 사항이니까요. 군용 엘리베이터는 괜찮을 것입니다. 긴급 사용시에도 문제 없어야 하도록 설계가 되어있고 전기도 따로 공급받죠."



"우우웅"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에 수연이 일어났다. 샤비는 수연에게 다가가 괜찮냐는 듯 여기 저기 냄새를 맡았다.


"정신이 드니? 이제 우리 올라가야해."

"네, 아저씨."


수연은 말이 없어졌다. 해맑게 웃던 그 아이만의 밝음도 사라져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여기서 이렇게 지체 할 시간이 없었다.


"빨리 올라가자. 그래야 생존 신고를 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어."

"네."



박 상사는 이미 내려 차 트렁크에서 무기를 챙기고 있었다. 집결지에서 효종이 챙겨왔던 가방을 열어 탄창을 가득 채웠고 수류탄과 유탄등을 챙겼다. 나는 샷건을 챙겼고 예비 탄약도 주머니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카멜백이 적용되어있는 작은 배낭에 샤비에게 줄 육포와 캔 몇개를 챙겨넣었다.


수연은 샤비와 함께 길가에 앉아있었다. 아직 효종과 쉭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고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수연아. 이제 우리 올라가자."



나는 수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직이 말했다. 수연은 내 손을 잡고 일어났고 나와 박 상사를 따라 조용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건물 내부의 상황은 알지 못합니다. 으윽, 조용히 제 뒤를 따라오세요."


아직 가슴에 통증이 있는 박 상사는 진통제를 입 안에 털어넣으며 말했다.



"끼이익"

"지지직 파팟!"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평소 대형 쇼핑몰로 이용되었던지라 광활하리만큼 넓었다. 건물을 밝혀주던 조명은  대부분이 나가 있어 내부는 어둑했고 내리기 시작한 비가 건물의 유리에 맺혀 흘렀다. 아수라장인 내부에 내리는 비로 더욱 분위기는 음침했다.


"식료품 상점에 잠시 들렸다 가겠습니다. 우리도 뭐좀 먹어야 할것 같네요."

"네 그러시죠. 수연이도 뭐라도 먹으면 기운이 날거에요."



스산했다. 다가오는 봄 햇살의 기운을 맞아 따뜻해지던 공기는 내리는 비에 다시 차가워졌다. 이 큰 공간에 스산한 기운까지 감도니 발 끝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조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파팍!"
"펑! 지직!"



간판 하나가 전기 스파크를 내며 펑하고 터졌다. 소리에 놀라 바닥에 바짝 엎드렸던 우리는 다시 발자욱을 움직였다. 이윽고 식료품점에 도착해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딸기 우유 하나를 꺼냈다. 전기는 끊겼었지만 그동안 뿜어져왔던 냉기에 아직은 괜찮은듯 했다.


"이거라도 마셔봐 수연아."


나는 수연에게 딸기우유를 건내었고 샤비에게도 우유를 뜯어 먹였다.


"아저씨, 우리 살수는 있을까요? 예감이 좋지 않아요. 이렇게까지 도시가 조용한건 정부도, 군인들도 포기한거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수연아. 우리, 살 수 있어. 살아야 효종이와 쉭의 죽음도 의미가 있어지는거야. 약해지지 말고 힘을 내자."

"네."



상점을 나온 우리는 다시 군사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내리는 비 때문인지 그놈들도 나타나지 않았고 우리는 조용히 움직일 수 있었다. 집결지에서처럼 단체로 쉬고있는 놈들을 만날수도 있기에 우리는 최대한 조용히 움직였다.


보통 군사용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특성으로 지하 가장 깊은곳에 위치해 있는것이 보통이다. 이 건물은 지하 6층까지 되어있으니 보안요원만이 알고있는 문을 통해 한개 층을 더 내려가야 한다. 그때였다.




"으아악! 저! 저리가!!"


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놀란 우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총구를 향했고 그곳에는 공포감에 사로잡힌 한 남자가 우리에게 물건을 던지며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저, 저기요!"

"으악!! 살려주세요! 사, 살려줘요!"



나는 그 사람을 뒤 쫒아가 잡았고 그 사람은 나를 밀쳐내며 거칠게 저항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공포에 사로잡힌 남자는 시큐리티라고 써 있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이는 한 30대 정도? 이름은 명찰에는 보안요원 김민수라고 되어있었다.



"이것봐요! 민수씨! 정신차려요! 많이 놀랐겠지만 우리도 그놈들에게서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그놈들! 그놈들이 올거에요! 우린 모두 변할거에요! 우리 모두 그놈들에게 먹힐거에요!"

"짝!"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민수에게 나는 뺨을 갈겼다. 나에게 뺨을 맞은 민수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정신차리라구요!"

"그.. 그놈들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저희밖에 아무도 없어요!"


민수는 충격을 많이 받은 듯 했다. 조금 잠잠해진 민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민수에게 물을 건내면서 말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요? 혹시 여기도 그 놈들에게 당했었나요?"

"네. 전 처음에 무슨 코스프레를 하는줄 알았어요. 사람이 털 옷을 입고 있는줄 알았죠. 물 풍선 같은걸 쏘길래 어떤 게임회사 같은곳에서 마케팅을 하는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액체로 변하는걸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도망가겠다고 앞다퉈 뛰기 시작했죠. 전 보안 책임자라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안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제 눈앞에서 사람들은 없어지기 시작했고 서로 뒤엉키며 밟히는 사람들도 많았죠. 힘 있는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살겠다고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밀쳐 엎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그 사람들은 그놈들에게 당했죠. 오히려 그놈들보다 사람들이 더 무서운 상황이 되었던거에요."


"그랬군요. 그럼 결국 모두 당한건가요?"

"그래도 몇몇은 살아나가지 않았을까요? 그거까지 모르겠어요. 전 도망가다 자재실에 숨었고 지금까지 그곳에 있었어요. 그러다 무슨 소리가 나서 살짝 나왔는데 당신들이었구요. 우리, 모두 죽는건가요??"

"그러지 않으려고 지금 노력중에 있는거에요. 민수씨가 우리좀 도와줘요."


민수의 눈은 촛점이 아직 흐렸다. 세상이 멸망하는것 같은 경험을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


"우리 지금 이 건물 옥상에 있는 군사 기지에 가야 해요. 민수씨, 어떻게 가는지 알고있죠?"

"네? 아 네 알고는 있어요. 그런데 지금 갈수 없어요."

"무슨말이에요. 군사기지에 무슨 일이 있어요? 왜 갈수가 없다는거에요!"

"먼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하 주차장 끝까지 내려가야 해요. 그러고나서 저만이 알고있는 문을 보안카드로 열어야 하는데 그건 제가 가지고 있는 보안키로는 작동이 안되요. 제가 보안 팀장이지만 제 위에 있는 보안 책임자용으로만 가능해요.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기지 입구에서에요."

"기지 입구는 왜요?"


"기지 입구 앞에서 군 간부들만 알고있는 출입 번호가 있어요. 이 번호는 간부의 군번과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수 있거든요."

"그거면 제가 가능합니다."


박 상사가 나와 민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김민수씨 말이 맞습니다. 그 번호는 제가 알고있습니다. 문제는 엘리베이터 보안키인데.."

"아! 통제실에 있을수도 있어요! 혹시나 모르는 책임자 부재상황에 긴급용으로 하나 넣어놓거든요! 근데 금고에 있어요.. 그 키가 항상 존재하는지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강화유리로 되어있구요."

"통제실이 몇층이에요! 당장 가요!"


나는 민수를 잡아 끌어 일으켜 통제실로 안내를 요청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 1500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그놈들은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번 더 진화하고 있었다.



- EP02 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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