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절망. 우린 희망을 만들기로 했다. 하편.
- EP02-04화에 이음-
"다 도착했네요. 여기입니다."
"띠디딩, 55층입니다."
"철컥."
박 상사는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쪽을 경하며 총을 겨누었다.
"위이잉"
"이상 없습니다. 내리시죠."
"민수 씨, 부탁드립니다."
"아, 네."
민수는 가지고 있던 책임자의 보안 카드를 입구에 대었다. 우리는 열리는 문에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출입문, 열립니다."
"조용하네요. 들어갑시다."
문이 열리자 식당이 눈에 보였다. 너무나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것이 오히려 어색했지만 우리는 천천히 내부로 진입했다.
"너무 깔끔하게 정리된 게 이상한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작전 상황실로 가야겠습니다."
우리는 박 상사를 따라 식당을 지나쳐 문을 열고 나오니 길게 복도가 연결되어 있었다. 군대 특유의 냄새가 군 복무 시절의 옛 향수에 빠지게 했다.
"근데요.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도대체 그놈들은 정체가 뭘까요? 혹시 알고 있으신 거 없어요?"
민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우리를 뒤 좇아오며 물었다.
"네, 저희도 그런 것까지는 알고 있지 않아요. 단지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것은 상부에 생존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못한다면 서울을 폭격할 거예요."
"서, 서울을요? 에이, 설마요!"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저는 서울 도처에 있는 생존자들을 구출해 집결지로 가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하지만 집결지는 모두 놈들에게 당했고 우리는 급하게 상부에 보고할 수 있는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죠. "
"그, 그럼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될 건데 정부에서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이미 서울에 있는 인구 70% 이상이 사망했을 거예요. 어쩌면 모두 당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작전을 잠시라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민수 씨에게 이 모든 상황과 군의 결정에 대한 이해를 구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 그래도 어떻게.."
민수는 이해하기 힘든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도 이런 사실에 대해서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고 살아남아야 했기에 박 상사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윽고 박 상사는 작전 상황실에 있는 빨간 전화를 들어 올렸다.
"본부, 여기 폭스 4 응답 바람."
"지지직"
"본부, 본부, 여기 폭스 4, 민간인을 구출하여 대기 중이다. 응답 바람."
"지지직"
"이 작전을 지휘했던 본부도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모두 당한 것 같네요."
"아! 박 상사님 이거!"
수연이 책상 한편에서 타다 남은 문서 하나를 발견해 들고 달려왔다. 그곳에는 엄청난 사실이 적혀있었다.
[문서 발신 인 : 합동 참모본부]
[문서 수신 인 : 각 예하부대 지휘관]
[내용 : 서울 및 수도권 파괴 작전 전달.]
2033년 2월 29일 본 문서를 수신하는 즉시 모든 부대는 부산으로 이동할 것.
최대한 민간인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바라며, 정체불명의 괴 생명체와 접촉했을 경우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한 후 보고 바람. 접촉이 확인된 민간인 및 군인들은 임시 수용처에서 별도 관리할 예정. 괴 생명체와 접촉이 의심되는 모든 인원은 조사 기간 동안 외부와 격리 수용될 예정이고 신분 예외 없이 진행될 예정.
본 문서 수신 즉시 이동, 24시간 안에 완료 바람.
24시간 이후 서울 파괴 작전이 시작될 예정.
이상.
"이, 이건.."
박 상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박 상사가 들고 있던 문서를 건네어 받아 확인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박 상사님. 우리는 이미 그놈들과 많은 접촉이 있었잖아요. 그럼 수용소에 따로 가는 거예요? 그리고 서울 파괴 작전이라뇨. 구조된 민간인이 확인되면 작전은 지연된다면서요!"
"아무래도 이건 저희가 작전에 투입된 이후에 나온 최종 작전인 것 같습니다. 부산까지 이동을 명령했다면 서울공항은 이미 파괴가 되었다는 이야기이고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파괴작전에 돌입을 했다면 이미 대전 이하까지 방어선이 뚫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예정된 파괴작전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건물 가장 깊은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요?"
"파괴작전은요! 어떻게 진행되는 건데요!"
수연은 샤비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고 민수 역시 이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박 상사의 말이 맞았다. 우리가 아무리 생존 보고를 보낸다고 해도 작전이 늦춰질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부산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생존자에 대한 실험은 어떻게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좋은 의미는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끼리라도 살아남죠."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어떠한 탄으로 폭격을 할지 몰랐지만 이미 서울을 포함한 이남 도시들은 모두 그놈들에게 파괴되었고 방어선도 많이 밀렸을 것이다.
"근데요. 지하로 간다고 해도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폭격이 시작된다면 모든 건물들은 다 무너질 것이고 우리가 외부 지원 없이 몇 날 며칠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수연이 샤비를 안고 우리에게 말했다.
"수연이 네 말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는 데까지는 해 보자."
이미 나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사람들의 욕심과 이기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은 생사를 함께 했고 -아직 민수의 성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들과 함께 한다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이 건물 지하에 대피소가 있어요. 이 근방 주민들이 공습 상황이나 재난상황에 수용할 수 있도록 지어졌죠. 최소 몇 달은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지하 12층까지 연결되어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제가 보았던 매뉴얼에는 지하 3층 이하로 내려가 있으면 핵 공격에도 버틸 수 있다고 봤어요. 그곳에는 마실물도 식료품도 있고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아 그래요! 그럼 빨리 그곳으로 이동합시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이 건물에는 지하 6층까지밖에 연결되어있지 않아 내려갈 수가 없어요. 밖으로 나가 별도의 입구로 들어가야 해요."
"그곳이 먼가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아뇨. 1층으로 나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평소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있어요. 밖에 놈들이 있지 않다면 빨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럼 빨리 갑시다!"
우린 민수의 말 대로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게 조금 리스크가 있지만 달리 방법은 없었다. 무기 상황도 좋지는 않았다. 박 상사와 나는 탄이 다 떨어져 가고 있었기에 그놈들을 공격할 상황이 생기게 된다면 많이 어려워질 것이다.
"박 상사님 이곳에 무기가 좀 남아 있을까요?"
"한번 찾아보도록 합시다."
나와 박 상사는 포가 방열되어있던 곳으로 올라가 탄약고 문을 활짝 열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 6화에 계속-